출퇴근길에 만난 거지소년

마음이 따뜻해지는 벙어리 장갑의 추억

등록 2014.06.24 11:59수정 2014.07.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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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그시절에 안양에서 전철을 타고 시청근교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녔다.

그 당시에 출퇴근 길 전철안은 사람들로 꽉 들어찬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였다. 특히 아침에는 사람들끼리 몸이 부딪히고 서로 떠밀려서 전철을 타고 내릴 정도였다. 그나마 퇴근길은 시간대가 조금 달라서인지 덜했던 기억이 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나는 추위에 대비해서 목도리와 앙고라 벙어리 장갑 한켤레를 샀다. 회사에 갈때마다 목도리로 목을 두르고 장갑을 끼고 다녔다.

어느 추운 겨울 주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를 떠나 집으로 오는 안양행 전철을 탔다. 그날은 콩나물 시루에서 벗어나 전철안이 조금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그래도 앉을 좌석이 없어 서서 집으로 오게 되었다.

전철을 타면 희안한 광경을 더러 보게 된다.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는 힘들게 서서 전철을 타고 오다가 얼마나 힘든지 염치 불구하고 커다란 엉덩이 부터 들이밀었다. 그 당시 20대였던 나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안좋았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되면 절대로 저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했다.

또 한가지는 자리에 앉은 아줌마들이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 모습이다. 저렇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중년이 훌쩍 넘어서고 있는 나는 그런 행동들을 자제하고 산다.

시청에서 전철을 타고 안양에 다다르기 전  석수 관악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한 거지 소년이 전철 문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옷은 넝마주위처럼 너덜너덜 거렸고 언제 빨아 입었는지 지저분했다. 얼굴도 때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데 손을 보니까 시뻘겋다 못해 마치 동상 걸린 손처럼 푸르둥둥 부어 있었다.

순간 나는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끼고 있던 앙고라 벙어리 장갑을 쳐다보는 소년을 의식한 나는 장갑을 벗었다.

벙어리 장갑을 주고 싶은데 미리주면 그 소년이 자존심이 상할까바  내가 내릴 역인 안양역에 다다르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안양역이라고 방송을 한다. 나는 내리기전에 장갑을 소년에게 건내주며 "이 장갑 끼고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세요"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전철을 얼른 내렸다. 그날 나의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출퇴근길의 추억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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