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전사' 공영방송 기자... 솔까, 어른이 더 나댄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35] 아이들이 말하는 '일베'의 현재와 미래

등록 2015.04.06 20:43수정 2015.04.07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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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교시가 끝났을 뿐인데, 목이 따끔거리며 아프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을 깨우려니 목소리를 크게 할 수밖에 없다. 말귀 다 알아먹는 아이들을 때리거나 벌을 세울 수 없으니 말이다. 아예 책에 얼굴을 파묻은 채 잠든 아이가 있어, 다가가 흔들어 깨우려니 아이들이 손사래를 친다. 어떻든 다시 잘 거라면서.

작년 말만해도 그는 이렇지 않았다. 공부를 썩 잘하진 않았어도, 수업시간 딴청 피우거나 대놓고 엎드려 자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가 아예 딴 사람으로 변한 건 지난 겨울방학을 보내면서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일간 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 때문이라도 했다. 올 초부터 무슨 검색포털인 양 일베를 들락거리며 시나브로 '일베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르는 법이다. 지금은 수업시간 일베 이야기만 나오면 친구들 모두가 고개 돌려 그를 쳐다보는 대표적인 '일베충'이 됐다. 그도 머리를 긁적이며 쭈뼛거릴지언정 부인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끼리 가장 심한 욕설이 '일베스럽다'였는데, 요즘엔 '일베한다'고 말하는 데 별 스스럼이 없다.

얌전했던 아이가 '일베충'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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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회원들이 지난 2014년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민 미술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세월호특별법제정 반대와 종북척결을 주장하며 특정 손모양으로 '일베인증샷'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희훈


그가 일베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고 한다.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때도 그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신문은커녕 TV 뉴스조차 보지 않는단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그 즈음, 공부도 잘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해 친구들 사이에 인기를 독차지하던 아이와 친하게 됐고, 일베가 그에게 일상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까지 그는 공부 못하는 문제아들만 일베를 하는 줄 알았단다. 딱히 학원도 안 다니는 그가 공부를 잘하는 이유가 일베 때문인가 싶을 정도로, 말투는 물론,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대개 '일베스러웠다'고 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욕설인 듯 욕설 아닌 욕설 같은' 그들만의 은어들은 대개 일베를 통해 배운 것이다. 공부 잘 하는 아이와 친하게 지내 나쁠 것 없다고 여긴 그는, 모르는 친구 하나 없는 '일베충'으로 거듭났다.

바로 이어진 수업시간, 진도를 나가는 대신 그와의 대화를 핑계 삼아 아예 일베를 주제로 아이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졸거나 멍한 표정의 아이들의 눈빛에 순간 생기가 돌았다. 수업 내용 질문에는 다짜고짜 모르겠다며 귀찮아하던 아이들이 물 만난 고기떼처럼 앞 다퉈 한마디씩 했다. 그들에게 '일베'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재미'와 동의어였다.

아이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쏟아졌다. '짤방에 드립을 쳐서' 조회 수 5000을 찍었다는 아이, 자기가 '일간 베스트'에 세 번이나 올랐다며 우쭐해하는 아이 등 다들 무용담 뽐내듯 자랑했다. 이곳의 '정베(정치 일간베스트)'를 통해 뉴스를 듣게 된다는 아이도 있었다. 여하튼 불과 몇 분 만에도 수십 개의 '드립이 빵빵 터지니' 다들 웬만한 게임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솔직히 아이들의 대화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 곁에서 데면데면하게 서 있으니, 한 아이는 비웃기라도 하듯 '문어'와 '구어'의 차이라고 눙쳤다. 정말이지 일베를 모르면 대화에 끼기 어려울 듯했다. '일베충'이든 아니든,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일베의 언어'로 표현하고, '일베식'으로 이해한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일상용어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수업시간, 특유의 말투를 트집 잡아 영문 모르는 교사들을 당혹케 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예컨대, 할아버지뻘인 교사가 소란 피우는 아이들을 불러다 '이 놈의(노무) 녀석들' 하고 나무라면, 곳곳에서 선생님도 '일베 용어'를 쓴다면서 키득거린다고 한다. '노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일베의 대표 단어다. 순간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건 당연지사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일베가 어떻게 진화해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온갖 사회적 지탄 속에서도 일베는 음험한 '배설구'를 넘어 학교생활 속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들 '일베충'을 향해 저급하다며 손가락질하면서도, 한편으론 시나브로 '일베스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일베, 관심 받을 '깜냥'이나 되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지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일베에는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거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아이들만 모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급수가 높은' 진짜 '일베충'은 내로라는 모범생들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들을 '외유내강형'이라 빗대면서, 일베의 확산은 실제 그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지금은 발을 끊었지만 한때 '개드립'의 쾌감을 느꼈다는 한 아이는, 일상생활에서는 감히 내뱉을 수 없는 온갖 '쌍욕'을 마구 퍼부을 수 있다는 몇 안 되는 곳으로 일베를 규정했다. 입에서 나온 욕설을 받아주는 곳이 '벽'이라면, 손가락에서 나오는 욕설을 품어주는 곳이 바로 일베라는 것이다. 더욱이 맞장구쳐주는 이들이 바글거리니 더욱 통쾌하다는 거다.

또, 그는 자신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면서 '홍어' 운운하며 '짤방'에 혐오사진을 올린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그냥 재미 삼아 한 일인데, '일베로(추천)' 수가 늘어나자 되레 깜짝 놀랐단다. 그땐 아무런 죄의식이 없었는데, 작년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일베에서 벌어진 끔찍한 패륜 행위들을 보며 깊이 뉘우쳤다고 말했다.

포털을 검색하다가 느닷없이 일베에 들어가 봤다는 한 아이는 일베를 되레 '어른들의 막장 놀이터'로 규정했다. 대개 철없는 중·고등학생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글들은 어른들의 소행으로 본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때 댓글로 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들처럼, 분명 아이들 '코스프레' 한 어른들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다.

막장 어른들이 어느 한 곳을 타깃 삼아 자극적인 문구와 영상으로 공격하면, 철없는 아이들이 퍼 나르고 또래들끼리 낄낄거리며 유행시키는 악순환이 일베의 본질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그는 이따금 글들 사이에 올라오는 '야짤(야한 사진)'과 '야동', 저질 유머들을 '양념'이라고 표현했다.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그런 글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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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구성원 "일베 수습 임용 결사 반대" KBS 기자협회와 아나운서협회 등 11개 직능단체 구성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일베 수습 임용 결사 반대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지역과 특정이념을 차별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조롱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몰상식과 부도덕은 KBS의 정체성과 전혀 맞지 않다"며 해당 기자의 임용을 반대하고 있다. ⓒ 유성호


그의 말에 아이들은 대체로 동의했다. 다른 한 아이도 '솔까(솔직히 까놓고 말해), 일베충 아이들보다 일베하는 어른들이 더 나댄다'며 맞장구쳤다. 철부지 아이들에게 일베는 가장 돈이 안 드는, 그러면서도 정말 재미있는 오락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학급 실장이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이 땅 어른들을 향한 죽비였다.

"솔직히 '일베'가 관심 받을 깜냥이나 되나요? 여기저기서 '사회적 여론' 대우를 해주니까 '일베충'들이 더 신나하는 거예요. 그냥 요즘 아이들 저렇게 노는구나 하고, 혀 한 번 끌끌 차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죠. 무슨 이슈인 것처럼 분석하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니까, 막장 어른들까지 나서서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겠어요?

요즘 아이들끼리는 욕설이 들어가야 대화가 자연스러워진다고들 해요. '말세'라고 손가락질해댈 뿐, 이토록 품성이 거칠어지고, 감성이 메마른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사회의 노력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일베' 사진을 은근슬쩍 가져다 쓰는 TV 방송과 '일베' 사이트에 깜빡이는 스폰서 광고들을 보노라면, 제가 다 창피해요.

하긴 얼마 전 '일베충'을 넘어 '일베 전사'로 활약한 이를 공영방송의 기자로 채용하는 걸 보고는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허구한 날 욕지거리나 해대는 아이들보다, 정말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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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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