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간 빨래하지 않는 남자

[장르소설의 작가들 ④] 수상한 해결사 캐릭터 '잭 리처' 만들어낸 작가, 리 차일드

등록 2015.12.15 10:35수정 2015.12.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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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잭 리처>가 국내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영국작가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 9번째 편인 <원 샷>이다. 소주를 '원 샷'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총을 쏴서 한 발에 한 명씩 명중시킨다는 의미다.

이 영화에서 약간 의외였던 점은 주인공인 잭 리처를 톰 크루즈가 연기했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잭 리처는 키 195센티미터에 몸무게 113킬로그램의 거구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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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 영화 스틸. ⓒ CJ 엔터테인먼트


원작과 영화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거구의 인물을 톰 크루즈가 연기했다는 점이 의외였던 것이다. 하긴 그렇게 커다란 체격에 연기력 있는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잭 리처는 온몸이 근육질인 데다가 군 수사관 출신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잭 리처는 리 차일드가 1997년에 발표한 <추적자>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리 차일드는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한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가 해고당했다. 그러자 그는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쇼핑몰에 가서 노트 세 권과 연필 한 자루, 연필깎이 하나, 지우개 하나를 샀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 물건들을 가지고 수년에 걸쳐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 것이다.

리 차일드는 살던 곳을 떠나 정처없이 떠돌며 사는, 소외된 인물에게 관심이 있었다. 특히 군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제대해서 민간인의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쓰기 시작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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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퍼스널> 겉표지 ⓒ 김준희

그 결과 잭 리처가 나타났다. 독자들은 리 차일드가 '왜 잭 리처를 이런 거구의 인물로 만들었을까'라고 궁금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리 차일드는 다윗이 아닌 골리앗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계속 지다가 마지막에 역전시키는 승부가 아니라,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이기는 경기의 주인공을 원한 것이다.

동시에 리 차일드는 '캐릭터가 최고다'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캐릭터를 기억하지 스토리를 기억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잭 리처를 엄청난 거구에 그만큼의 완력을 가진 캐릭터로 만든 이유다. 그래서 잭 리처는 항상 이긴다.

첫 작품인 <추적자>에서 그는 군 생활을 그만두고 미국 전역을 떠도는 여행자로 등장한다. 결혼하지 않았기에 처자식도 없고 머물 집도 없다. 가진 짐도 별로 없다. 빨래도 안 한다. 옷을 입다가 더러워지면 버리고 새옷을 사서 입는다. 어찌보면 참 편안한 생활을 하는 셈이다.

잭 리처가 가는 곳마다 이상한 사건들이 터지고 그는 군 수사관 출신의 경험과 추리를 바탕으로 그 사건들을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여성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후에는 또 정처없이 다른 곳으로 떠난다.

지난 10월 발표된 리 차일드의 신작 <퍼스널>에서도 잭 리처는 여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휴대폰도 없고 가진 짐도 없다. 승용차도 없다. 그냥 버스를 타고 떠돌다가 잠시 캘리포니아에 머물고 있다. 그곳에서 시애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가 한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된다.

그 신문의 광고란 중앙에 잭 리처의 이름이 박혀있었다. '잭 리처, 릭 슈메이커에게 연락바람'이라고. 릭 슈메이커는 잭 리처의 예전 상사였던 인물이다. 잭 리처는 릭 슈메이커에게 나름대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중전화로 그에게 연락한다. 그때부터 커다란 일에 휘말려 들어간다. 바로 며칠 전 프랑스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범인은 흔히 볼 수 없는 50구경 소총으로 1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저격을 시도한다. 다행히 대통령을 감싸고 있던 방탄유리를 깨뜨리지 못해 암살은 실패로 끝났다. 이 사건 때문에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미국, 러시아까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13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저격을 시도할 정도의 인물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수사진은 용의자의 범위를 몇 명으로 좁히고 수사를 시작한다. 잭 리처에게도 그 수사에 참여하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신문에 광고를 낸 것이다. 잭 리처는 군 수사관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한 경험이 있다. 잭 리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미국을 떠나서 파리와 런던 등을 오가며 수사를 시작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잭 리처 시리즈

<퍼스널>은 '잭 리처 시리즈'의 19번째 편이다. 리 차일드가 처음 잭 리처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얼마나 긴 시리즈를 구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단일 주인공으로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시리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작품 속에서 잭 리처는 1960년생으로 묘사된다. 그러니 발표년도(1997년 당시 37세)를 기준으로 하자면 이미 50세도 넘은 나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옷을 버리고 사서 갈아입으며 떠도는 생활을 한다.

대신에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인지 작품 속의 한 인물은 잭 리처를 가리켜서 '셜록 홈리스(Sherlock Homeles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잭 리처 시리즈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60살이 넘더라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잭 리처를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잭 리처의 하드웨이

리 차일드 지음, 전미영 옮김,
오픈하우스, 2012


#잭 리처 #리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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