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그 끝은 어디일까

[장르소설의 작가들 ⑤] '해리 보슈' 시리즈 작가, 마이클 코넬리

등록 2015.12.23 15:35수정 2015.12.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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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그중에서도 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을 대표작품 위주로 한 명씩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주로 영미권의 작가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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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겉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미국 작가 마이클 코넬리(1956~ )는 자신의 1996년 작품인 <시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계에 관한 이론이다.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에게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거기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체에 관한 이야기다. 형사가 보고 견뎌낼 수 있는 시체의 수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숫자는 사람마다 다르다. 살인사건 수사를 1년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년 동안 시체를 봐 와도 끄떡없는 사람이 있다.

그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그 한계를 넘어서면 그때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시체를 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부서를 옮기던지 심리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은퇴하거나 알코올에 의존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자신의 입안에 총알을 박아넣을 수도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람마다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글의 분량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 이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원고지 1000장이고 어떤 사람은 원고지 100만장이고.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분량을 넘어서서 글을 쓴다면 뭔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이 아니라, 억지로 쥐어짜낸 듯한 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 출입기자 출신의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을 읽을 때면 '이 작가에게 허용된 글의 분량은 얼마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만큼 마이클 코넬리는 굉장한 다작형의 작가다. 그것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992년부터 현재까지 15편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다. 다른 하나는 작품마다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흔히 말하는 '스탠드 얼론(Stand Alone)' 작품들이다. <시인>이나 <보이드 문>, 2011년에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원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역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다. 해리 보슈의 본명은 '히에로니머스 보슈(Hieronymus Bosch)'다. 약간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이것은 중세 네덜란드의 화가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품에서는 무조건 '해리 보슈'로 지칭된다.

마이클 코넬리는 'LA 타임스'에서 경찰청 출입기자로 일을 하면서 이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러면서 해리 보슈에게 베트남전에서 '땅굴쥐'로 복무했던 경험을 부여했다. 베트남의 지하 땅굴들을 헤메고 다니며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워하며 군생활을 한 것이다.

해리 보슈의 과거를 이렇게 독특하게 만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이클 코넬리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 앞에는 낡은 터널이 하나 있었다. 높이 150㎝에 길이 12m 정도의 터널이다. 그 안은 진흙과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회반죽 부스러기와 벽돌들로 차 있었다. 천장에는 온갖 식물뿌리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일종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 동네에서, 열 살이 넘는 남자아이라면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그 터널을 혼자서 통과해야했다. 안그러면 겁쟁이 취급을 받거나 왕따가 된다. 마이클 코넬리도 때가 되자 그 일을 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악몽으로 남았다.

그 터널에서 해리 보슈가 탄생한 셈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또 해리 보슈에게 그만의 원칙을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사건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라는 것이다.

조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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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드래곤> ⓒ 알에이치코리아

해리 보슈는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블랙 에코>에서 마흔 살의 나이에 LA 경찰국 소속의 형사로 등장한다. 다혈질인 해리 보슈는 수사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에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상사와도 걸핏하면 부딪힌다. 경찰국 다른 부서의 직원들과도 자주 마찰을 일으킨다. 자기의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그래서인지 보슈는 시리즈의 8번째 편인 <유골의 도시>에서 경찰국에 사표를 던지고 자유의 몸이 된다. 일종의 사립탐정 비슷한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보호를 받던 사람이 계속 혼자서만 활동하기는 쉽지 않을 것. 보슈는 시리즈의 11번째 편인 <클로저>에서 다시 경찰국으로 복귀한다. 원만한 조직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보슈로서는 꽤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국내에 출간된 15번째 편인 <나인 드래곤>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이 작품에서 보슈는 LA 차이나타운의 한 주류상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담당한다. 그러다가 이 사건이 중국범죄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슈는 그들에게 협박을 받는다. 사건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보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하지만, 홍콩에 있는 이혼한 부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신변의 위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범죄조직이 보슈의 혈육에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보슈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 홍콩으로 날아간다.

해리 보슈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시리즈의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진화하기 마련이다. 해리 보슈도 마찬가지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나이를 먹으면서 보슈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총알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남자에게 이제는 약한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조직 내의 '정치'에는 젬병이지만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자신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타락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약한 모습에 대해서 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경찰국에서 상사에게 대드는 일도 적어졌다.

작가 마이클 코넬리가 어린 시절에 통과했던 그 터널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렇더라도 그때의 기억은 아직 가지고 있다. 작가는 그 터널 덕분에 자신의 용기를 시험해볼 수 있었던 것에 고마워하고 있다.

해리보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베트남 땅굴쥐로 땅굴을 헤메고 다녔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 안에서 느꼈던 공포와 그 안에서 발휘했던 용기에 대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인>에 나왔던 '한계 이론'을 보슈에게 적용해보면, 그의 한계는 얼마나 남았을까. 운이 좋다면 땅굴을 뚫고나온 그 생명력만큼이나 오래 갈 것이다.
#해리 보슈 #마이클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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