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느낄 만한 매력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미국이 북한 통해 잡을 수 있는 두 마리 토끼

등록 2019.01.21 11:11수정 2019.01.21 11:11
8
원고료로 응원

미국 시각으로 1월 18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건네는 모습. 댄 스카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의 트위트에 실린 사진 ⓒ 댄 스카비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구체화되고 있다. 2월 말 베트남에서 열릴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겸직)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 받았다. 또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스웨덴에서 3박 4일의 합숙 협상을 벌이고 있다.
 
북한이 핵 폐기를 단행하지 않는데도 대화 국면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 보수진영은 현 상황의 종착역이 과연 북한 비핵화가 될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전직 외교부 장관들의 발언이 1월 20일자 언론보도들을 통해 전해졌다.
 
곧 창간될 계간지 <한미저널>과 전직 외교부 장관들의 인터뷰를 소개한 보도들에 따르면, 공로명 전 장관은 "정체 상황이 오래 갈 경우 미국 내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관리해 나가는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승주 전 장관도 "정치적 궁지에 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문제뿐 아니라 핵우산·종전선언·평화체제 등 한미동맹과 관련된 문제도 협상 대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염려했다.
 
한미동맹을 철석같이 믿었던 보수 언론들도 불안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일례로, 1월 18일자 <조선일보> '강천석 칼럼: 다른 차표 들고 같은 곳 가는 척한 남과 북'은 남한 정부(아래 인용문 중 첫째)와 미국 정부(둘째)에 대한 불만을 각각 이렇게 표출했다.
 
"북핵 폐기를 논하는 외교 무대에서 '북핵 폐기'라는 용어는 퇴출 신세다. 그 자리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수상한 단어(의) 차지가 됐다."
 
"북한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짜기 위해 17일 워싱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때를 맞춘 듯 '대통령으로서 제1의무는 미국 수호다. 미국을 향해 언제 어디서 어떤 미사일이 발사돼도 반드시 탐지해 파괴하겠다'고 했다. 과녁이 핵무기에서 미사일로 슬그머니 이동했다."
 
지난 1월 1일 김일성·김정일 사진 아래의 쇼파에 앉아 발표한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생산한 핵무기를 폐기하겠다고 하지 않고 '시험하지도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만 했다. 이랬는데도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서두르고 있으니, 보수진영으로서는 미국의 의도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년간의 행동패턴을 관찰해보면 미국의 태도 변화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70년간 행동패턴을 알면 보이는 것들
 

트럼프와 김영철. ⓒ 댄 스카비노

 
미국은 이스라엘·중국·인도·파키스탄의 핵실험을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다 눈감아주었다. 중국의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승인해주고, 나머지 3국에 대해서는 사실상 묵인했다.
 
스스로 비핵화 원칙을 무너트리기는 했지만, 미국 지배층으로서는 나름대로 원칙을 지켰다고 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의 제1의무는 미국 수호'라는 트럼프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든 미국이 끝까지 견지한 원칙은 '핵이 미 본토를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향해서만큼은 비핵화를 관철시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국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 실용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게 'Made in USA 비핵화'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국을 향해 핵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이 핵 보유를 묵인한 것은 아니다. 그에 더해, 추가적 이유가 있을 때만 미국은 그렇게 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경제권을 쥔 유대인들과 동족이다. 거기다가 이스라엘 핵은 중동을 통제해야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베트남전 패배 뒤에 미국의 아시아 패권 추락을 지연시키려면 이 나라와의 제휴가 필요했다. 인도의 경우에는, 이 나라의 핵을 용인하는 게 중국 견제에 이로웠다.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이 나라 핵을 묵인하는 게 소련의 아프간 점령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핵 보유국은 아니지만, 베트남과의 수교에서도 그런 고려가 작동했다. 베트남은 1975년에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끝낸 직후부터 베트남·미국 수교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시를 당했다. 냉담하던 미국이 1990년대 들어 적극성을 띤 것은 일차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 필요성 때문이었다. 독일 통일 및 소련 붕괴로 탈냉전이 가속화되는 틈을 타서 영향력 팽창에 나선 중국을 견제하자면 베트남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경제적 동기도 작용했다. 베트남 진출을 희망하는 미국 기업인들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1996년에 한국국제정치학회가 발행한 <국제정치논총> 제36집 제1호에 실린 권경희의 '베트남-미국 관계정상화 과정에 관한 연구(1975-1995)'에 이런 대목이 있다.
 
"베미관계 또한, 베트남 내부의 개혁과 캄보디아 완전 철수 및 세계적인 탈냉전의 움직임과 더불어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1990년 12월 부시 행정부가 관계정상화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선언한 후, 다음 해 양국 회담이 5차례나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 의회나 기업가 집단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조속한 관계정상화를 촉구하기 시작하였다."
 
미국 기업인들이 베트남에 관심을 가진 것은 동남아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었다. 그들의 인식이 아버지 부시 행정부(1989~1993년)와 클린턴 행정부(1993~2001년)의 동남아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미국이 동남아 경제에 대해 가진 인식을 백창재 서울대 교수의 '오바마 행정부의 동남아 정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의 경제적 가치를 중시했다. 탈냉전 이후 별다른 안보적 위협이 없는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경제성장이 가장 빠른 지역이었고, 미국은 이 시장에 대한 접근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지속시켜줄 수 있는 안보 상황의 조성, 동아시아 경제의 에너지 수송로로서 동남아 해역의 접근성, 미국의 시장 접근 확대, 그리고 클린턴 시기에는 '관여와 확장'의 일환으로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추구되었다."
- 2011년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한 <동북아 연구> 제16집에 수록.
 
베트남에서 당장의 이윤을 예상하기 힘들었는데도 미국 기업인들이 수교를 촉구한 것은, 베트남과의 수교가 미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에 미칠 영향과 그로 인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예측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Made in USA 비핵화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이 매력을 느낄 만한 이유들이 없지 않다. 세계 최강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세계전략에 맞서 중국의 인도양 및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겠다는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북한이 긍정적 작용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동맹국 내지 협력자로 끌어들인다면, 동아시아·태평양에서의 미·중 경쟁에서 이익을 보면 봤지 손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또 북한과의 교류가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 경제에 순기능을 할 것이라는 학술적 예측도 있다. 니콜라스 에버슈타트(Nicholas Eberstadt) 미국기업연구소 아시아연구국 수석고문이 집필하고 한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행한 <통일한국 초기 단계에서 미국의 대한반도 경제협력: 기회와 제약>은 통일 후 10년까지는 미국이 북한 지역과의 상품무역에서 큰 이익을 얻기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글로벌 가치 사슬을 통해 북한 지역이 미국과 연결될 것이며, 이 네트워크는 북한 지역과 중국, 대한민국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지역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간접적 또는 역동적 부가가치적 이점은 단순히 양자 무역의 규모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 한국과 중국의 중간인 북한 지역과의 경제 교류에서 얻게 될 미국의 이익이 상품무역 규모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에버슈타트는 '통일 뒤 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북한 지역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에서 미국 자본의 비중이 6분 1 또는 5분의 1 정도가 될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미국 자본이 장래 이익을 기대하고 북한 쪽으로 진출하는 일이 그 정도로 많아질 거라고 본 것이다.
 
북한 경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일례로, 김정은 신년사를 들은 뒤에 올린 1일자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그는 북한이 엄청난 경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고 말했다. 자신이 북한 경제의 잠재력을 김정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 때부터 주택건축업을 해온 트럼프의 눈에는 북한이 광대한 '신축 부지'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18년 7월 29일 하노이에서 열린 미국 기업인들과의 모임에서 "베트남이 지나온 길을 북한이 따른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자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한 것처럼 북한에도 진출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많다.
 
지금 진행되는 남북 철도연결 사업을 놓고, 한국 내에서는 남한이 철도를 통해 북한은 물론이고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과의 경제 교류가 가져올 이 같은 가능성을 미국이라고 해서 모를 리 없다. 트럼프나 폼페이오의 발언은 북한과의 경제교류에 대한 미국 기업인들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북한과의 관계 증진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 경제의 폭을 새로운 차원으로 넓혀줄 수도 있는 일이다. 북한 핵무기가 미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면, 미국으로서는 비핵화를 'Made in USA 비핵화'로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을 가까이 할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중국·인도·파키스탄 핵에 대해 보여준 행동 패턴을 보면,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최우선시할지도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다. 그간 미국의 한쪽 면만 봐온 보수진영을 당혹케 할 만한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공산이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AD

AD

인기기사

  1. 1 서울시내 골목에서 경찰이 벌인 참극
  2. 2 전문가들 "코로나19 소독제가 새로운 재난 부를 수도"
  3. 3 램지어 교수 뒤통수 치는 건 결국 일본? 결정적 증거들
  4. 4 "이 여자들, 목숨 걸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5. 5 [차기 대선주사 선호도] 이재명 23.6% 1위... 이낙연·윤석열 15.5% 공동 2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