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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들은 한마디, 어머니와 내가 폭발한 이유

가족도 아닌 남인데 아버님, 할머님... 꼭 이런 호칭으로 불러야 할까요?

등록 2021.04.04 20:24수정 2021.04.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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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병을 얻으셨습니다. 남은 가족이라 해봐야 천지 간에 당신과 나, 둘 뿐입니다. 병중의 어머니를 홀로 둘 수는 없어 제가 모시거나, 혹은 어머니가 절 데리고 살거나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실로 30여 년 만에 다시 한 지붕 아래 살게 됐습니다. 어머니와 곧 이순을 앞둔 아들이 삐걱대며 사는 이야기를 통해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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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병원에 갔다. ⓒ pixabay


아름다운 우리말, 호칭은 좀

지난달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큰 수술 받으시느라 잔뜩 미룬 끝이었다. 주치의께서 이제 어느 정도 기력을 찾으셨으니 그 정도 수술은 괜찮다고 허락해 주셨다. 우리 동네엔 전국적으로 유명한 안과병원이 있다.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여느 병원이라도 좀처럼 미더워하지 않는 어머니도 거기만은 믿을 만하다고 인정하셨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병원은 출입구부터 삼엄했다. 체온을 재고 방문 기록을 쓰고 출입증을 받는 절차가 마치 제3제국 입국 심사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뭐가 자꾸 귀에 거슬렸다. 그건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범인은 그곳 직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출입구뿐이 아니었다. 접수창구나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간호사며 직원들은 죄다 나를 그리 불렀다. '난 댁들 같은 아들, 딸 둔 적 없소이다'라고 점잖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노인네가 별 트집을 다 잡는달까 봐 꾹 참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수술실에 들어가시고 대기실에 앉으려 할 때, 저쪽에서 간호사가 버럭 소리쳤다.

"아버님, 거기 폐쇄했어요, 얼른 나가요."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였다. 아버님이라 부르지 말든지, 명령조로 얘기하지 말든지 해야지, 그건 아니었다. 거기서 그만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접수창구로 내려가 고객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가 느낀 불만사항을 조목조목 적고, 그보다 '고객님'이나 '보호자님' 등으로 부르면 어떻겠냐 대안도 제시했다. 지나치게 예민하다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오, 그런데 점심시간 후 바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원무과장이라 소개했다. 그는 자신도 중년에 접어드는 남자로서 그 같은 불만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동의부터 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시정하겠고 약속도 했다. 과연 최고의 명성에는 그럴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의 불쾌감이 시나브로 풀렸다. 그렇게 알아주고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흐뭇했다.


우리말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게 또 없지만 사람 부르는 호칭이 다양하지 못한 건 아쉽다. 본연의 뜻이 변질된 단어들 때문에 더 그렇다. '아저씨', '아줌마'가 대표적이다. 괜히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그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욕처럼 들린다. 식당 등에서 직원분들을 그렇게 부르기 뭐해 '저기요', '이모님' 하다가 이젠 아예 '띵똥(bell)' 하며 벨을 눌러 부르지 않는가.

그래서 그 병원에선 '어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 것 같은데, 그 또한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렇게 불려 본 사람은 그 기분 안다. 게다가 나는 아직 슬하에 아이가 없다. 내 간절하고도 영원한 소망이 '아버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아버님'이란 소리는 진저리칠 만큼 싫었다. 그 과장님은 그런 심정을 충분히 알아주신 것이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날이 조금 풀려 어머니를 모시고 엊그제 처음 동네 내과에 갔다. 어머니가 2년 전 큰 수술을 하신 병원에선 더 이상 검진하러 오란 말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은 초기지만 뇌경색에 심장수술까지 하셨고 당과 혈압수치도 위험한 수준이다. 혈압이나 혈전, 당, 심전도 검사 등은 필수다. 그 정도 검사야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근데 검사받는 어머니 안색이 처음부터 영 안 좋았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말을 담아두지 못하신다. 할 말은 꼭 하셔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에게 무슨 불만이 있으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살얼음 걷듯 위태롭게 모든 검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신 그 병원에 가지 않으련다."

내 눈치대로 무언가에 단단히 화나셨던 게 있었던 거였다. 그 자리에선 그걸 꾹 눌러 참으셨던 거였다. 어머니를 그리 화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내가 굳이 묻지 않았는데도 당신은 혼잣말처럼 그 이유까지 말씀하셨다.

"자기도 한 일흔(70)은 돼 보이더만. 그러면서 날 꼬박꼬박 할머니, 할머니라고 부르니 원, 기분 나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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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는 어머니에게 '할머니 어서 오세요',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했다. ⓒ pixabay

 
아, 생각해 보니 의사선생님께서 그랬다. 그는 어머니에게 '할머니 어서 오세요',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했다.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될 말에도 그는 굳이 그 말을 붙였다. 당신 말씀대로 그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면서 그리 부르니 거슬릴 법도 했다.

나는 두말 않고 적극 동조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몹시 거슬려 한마디 할까 하다 참았어요, 다음부턴 다른 병원으로 옮겨요."

그제야 어머니는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전의 나 같으면 그냥 무심하게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는데 왜?' 했을 터였다. 그러지 않았기를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어머니는 드라마 속 시어머니들처럼 뒷목 잡고 쓰러지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냉큼 어머니의 편이 되어 주었다. 얼마 전 생뚱맞게 '아버님'이라 불리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억울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심정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사선생님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버린 건 그 덕(?)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아들은 전사의 손에 들린 화살'이며 '그것으로 화살 통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적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시편 127.4-5)'고 하셨다. 아, 그런데 나는 '아버님'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화살'이 아니라 '적들의 화살'이었던 거였다. 그렇게 누군가로부터 된통 당해보고 나서야 당신의 편임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빙충맞은 화살이 또 있을까.

요즘 우리 사회는 편 가르기 때문에 시끄럽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생각은 참 무섭고 위험한 발상이긴 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가족은 언제나 한 편이다. 무조건 그의 편이 되어야 한다. 가족을 지키고 옹호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성이자 의무다. 운명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이제야 알았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족 #같은편 #할머니 #아버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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