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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안 좋아?" 이 질문에 영국인들이 당황하는 이유

돌려 말하느냐, 직설적으로 말하느냐... 고맥락-저맥락에 따른 언어 사용의 온도차

등록 2021.07.24 18:56수정 2021.07.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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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pixabay

 
'미국인들의 속마음 해석'이라는 표가 많이 공유되면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대단해/굉장해/놀라워!"(Awesome/Fabulous/Amazing)는 "좋아"(Good)의 뜻, "좋아"(Fine/OK)는 "나빠"(Bad)의 뜻, "어렵지만 도전할 만해"(Challenging)은 "미쳐버리겠다"는 뜻, "연락하고 지내자"는 "잘 가라, 난 너 별로 안 좋아해"의 뜻, "내 친구"(My friend)는 "그냥 지인", "내 절친"(My best friend)는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라고 한다.

'영국인들의 속마음 해석'도 있었다. "최대의 존경을 담아..."(With the greatest respect...)의 속뜻은 "너 멍청이 같아"(I think you are an idiot), "매우 용감한 제안이군요"(That is a very brave proposal)의 속뜻은 "너 미쳤구나"(You are insane), "아주 흥미롭군요"(Very interesting)의 속뜻은 "확실히 헛소리야"(That is clearly nonsense), "거의 동의합니다"(I almost agree)의 속뜻은 "전혀 동의하지 않음"(I don't agree at all), "약간 지적할 부분이 조금 있어요"(I only have a few minor comments)는 "전체 다시 써와"(Re-write completely)라는 뜻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긍정적인 쪽으로 과장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깎아 들어야 한다는 해석, 영국인들은 변죽을 울리며 돌려 말하기 때문에 예의를 걷어냈을 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해석이 폭넓게 공감을 얻은 것이다.

초기 미국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민자들이 많아서 서로 오해를 사지 않으려 크게 미소 짓는 문화가 생겼다고도 한다. 영국은 섬나라인 데다가 한 귀족 집안이 같은 영지를 오래 통치하는 환경에서 완곡화법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천 년이나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서 완곡화법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미국의 월마트가 독일에 진출했을 때,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밝게 미소지으며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인사했더니, 독일 사람들(특히 남자들)이 사적으로 연애 신호를 던지는 것으로 오해해 문제가 많이 발생했고, 결국 그 밝은 미소 정책이 철회된 바 있다.

미국에 살기 시작한 한국인은 매번 밝게 안부를 묻는 문화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그 인사가 좀 어색해. 너네 미국인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왜 안부를 물어? 내가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진지하게 각 잡고 내 사정을 털어놔도 돼? 아니면 그럴 때도 그냥 'Good' 하고 넘어가는 게 미국식 예의야?"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진심이지만, 그렇게 묻다 보면 하루가 다 갈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왜 처음 보는 사람이 왜 내 안부를 묻는 걸까, 어디까지 대답해야 하는 걸까, 왜 미국 사람들은 항상 '엄청 잘 지낸다'고 답하는 걸까, 등의 실존적인 고민을 포기하고(?) 그냥 영혼 없이 "How are you?"와 "Extremely good"을 남발하는 가면무도회에 참여하는 기분으로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미국식 영어를 쓰는 페르소나를 하나 새로 장착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왜 많은 한국인들이 "밥 먹었어?"라고 묻는지 난감해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이러한 한국어 담화 화용에 적응하여, "밥 먹었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묻고 안 먹었어도 "응, 먹었어"라고 대답하게 되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갖게 된다.

고맥락-저맥락의 차이

누군가 일을 못한다고 평을 했을 때 충청도에서는 "그래도 애는 착해"라고 말하는데, 이 말의 속뜻을 '맞아. 그 사람 무능해'라고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지둘려 봐아, 다아 쓸 데 있겄지"라는 말은 무능할 뿐 아니라 못됐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최악의 품평은 "갸 원래 그랴"로, 도저히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 말종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존에 공유하는 맥락이 많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뜻뿐 아니라 숨어 있는 뜻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문화를 고맥락 문화,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액면가로 전해지는 문화를 저맥락 문화라고 한다. 서울은 충청도에 비해 저맥락 사회, 충청도는 서울에 비해 고맥락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고맥락 문화는 '눈치로 감을 잡다', '알아서 긴다', '이심전심', '척 하면 삼천리'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저맥락 문화는 제품 설명서처럼 오해의 여지가 없게 직접적이고 상세하게 명시하는 의사소통법을 쓴다.

고맥락 문화로 분류되는 일본에서는 애매하고 은유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それはちょっと...'(그건 좀...)은 거절의 뜻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일본어 번역으로 '달이 아름답네요'가 적당하다는 일화가 있기도 하다(거절할 때에는 '저에게는 달이 안 보여요'라고 역시 돌려서 말한다고 한다).

'달이 아름답네요'의 숨은 뜻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해야만 이를 '사랑합니다' 대신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달 이야기를 사랑 고백으로 착각하거나 사랑 고백을 달 이야기로 오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공유하는 맥락이 없는 외부인들과의 교류가 많아지고 사회가 개방될수록 의사소통에서 저맥락 성향이 강해진다.

프랑스어 교재가 준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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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사용에서 고맥락-저맥락 차이가 발생한다. ⓒ pixabay

 
일본에서 은유적인 의사소통이 발달했다면, 프랑스에서는 직설적인 의사소통이 발달한 편이다. 프랑스어 교재에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직면하는 'Je déteste ça!'(나 이거 싫어!), 'Quelle horreur!'(끔찍해!) 같은 표현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늘 점잖은 영어 교재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문장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대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따라서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단지 프랑스어 단어와 문법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인 표현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페르소나를 갖춰야 한다.

영어로는 못 하던 '담배 연기가 끔찍하게 싫으니 내 앞에서 피우지 마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프랑스어로 소통할 수 있다. 한국어를 할 때의 페르소나, 영어를 할 때의 페르소나, 일본어를 할 때의 페르소나와는 또 다른 페르소나가 필요한 것이다.

일 대 일 대응되는 표현들이 사실은 일 대 일 대응이 아니란 점은 음계의 조옮김과 비슷하다. 같은 '도' 표시라도 샾이 적용된 조에서는 반음 높은 소리가 나고, 플랫이 적용된 조에서는 반음 낮은 소리가 난다.

직역했을 때의 '끔찍해!'를 프랑스어에서는 깎아 들어야 한다. 직역했을 때의 '그건 좀...'을 일본어에서는 의미를 추가해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각 언어가 가진 온도 차 때문에 이 언어 저 언어로 옮겨다닐 때마다 자신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Donald W. Klopf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저맥락 문화를 가진 사회는 스위스, 그 다음은 독일, 스칸디나비아 국가 순이다(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스위스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나 솔직하고 명시적인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도긴개긴이지만, 스위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독일 사람들이 속에도 없는 빈말을 하고 변죽을 울린다고 느껴질 수 있다!).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고맥락 문화이지만, 구체적인 상황마다 저맥락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온 영국 사람들은 "어디 몸이 안 좋아? 너 아파 보여" 같은 말을 들으면 당황해한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누군가 아파 보일 때 간접적으로(고맥락적으로) 물어보기 때문이다.

다만 고맥락-저맥락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교일 뿐이다. 모든 미국인이 긍정적인 쪽으로 과장하거나 모든 영국인이 돌려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나 터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돌려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고 생각하는 성격과 '말을 안 하면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하는 성격은 서로를 답답해한다. 또한 어느 사회라도 권력자는 손끝 하나, 눈빛 하나, 한숨 한 번만으로도 편하게 의사소통을 한다(ex.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걸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돌려 말하는 완곡화법은 모든 사회에 존재할 것이다. 20년 넘게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는 서로 상처주지 않으려 돌려 말하다가 오해가 생기는 에피소드가 아주 자주 등장한다.

이 드라마 제작진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사는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런 완곡화법은 지구의 어느 언어권에서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짐을 알 수 있다(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외계인 포드 프리펙트가 지구인의 완곡화법을 전혀 몰라서 지구인이 비꼬는 태도로 말해도 그 뉘앙스를 눈치채지 못하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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