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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고등학교에서 상상할 수 없는 '민주광장', 아우성이 터졌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우리 학교의 1학년 총회 '살레시오 민주광장'

등록 2022.05.13 11:59수정 2022.05.1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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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광장'에서는 교사도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야 한다. 사회자에 의해 호명되어 무대에 선 교사의 모습. ⓒ 서부원


시작은 한 대안학교에서 매주 열리는 총회의 모습을 접한 뒤다. 작은 학교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전체 학생과 교사 모두가 강당에 모여 학생 대표의 사회로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펼쳐졌다. 논의할 안건은 있었으되 격식이나 위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학칙 개정에 대한 안건부터 민감할 수밖에 없는 동급생 처벌 문제나 특정 교사의 수업 비판까지 다루어졌다. 언뜻 추궁하는 듯한 아이들의 온갖 질문에 교사는 성실하게 답했고, 교사의 반론에 재반론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여느 고등학교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연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는 아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개는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학생이 교사의 편에 서기도 하고, 반대로 교사가 학생 편에 서서 동료 교사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곳에서 학생과 교사는 동등한 존재였다.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존재라는 기존의 낡은 인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상충하면서도 보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아이들의 가감 없는 비판이야말로 교사가 매너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 

젊은 교사들은 물론, 나이 지긋한 교장 선생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대안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교사인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입으로는 늘 아이들을 위해 살겠노라고 떠들어댔지만, 정작 그들의 지적에는 귀를 닫았다. 지금껏 그들의 입을 막아왔으니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적확하겠다. 

교사는 입을 여는 대신 귀를 닫았고, 아이들은 입을 닫은 채 오로지 귀만 열어야 하는 존재였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는 그것이 정상이었고, 학교에서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이 입을 열 수 있는 때라곤 분풀이하듯 노래하고 춤추는 학교 축제가 사실상 전부였다. 

올해 초 고1 학년부장이라는 소임을 맡게 되면서, 무모할지언정 '학년 총회'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을 때, 동료 교사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대안학교처럼 학생 수가 몇 안 되는 소규모 학교에서나 가능한 교육 활동이라는 것이다. 

대의원 대회는커녕 학급 회의조차 정례화되지 못하고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는 마당에 아이들 수백 명이 한데 모여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쏟아졌다. 자칫 학습 시간을 빼앗겼다며 항의할지도 모른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말하자면, 인문계고 학생에게 필요한 건 회의나 토론이 아니라 대입을 위한 시험공부라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기도 전에 이름만 듣고 찾아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느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대입에 도움이 되면 참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시간에 자습이나 하겠다는 뜻이다. 학교 내 모든 교육 활동이 대입에 연관되는 현실에서 그다지 놀라울 게 없는 반응이다. 

여담이지만, 수업이든 비교과 활동이든 명문대 진학 실적 등 대입에 대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면 예외 없이 취지가 퇴색되고 '변질'된다. 따지고 보면, 학생부종합전형이 불공정한 '금수저 전형'이라며 뭇매를 맞는 것은 그래서다. 대입이 학교 교육과정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다. 

그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계기가 된 대안학교의 총회와 단순 비교해봐도 우리 학교에서 못해낼 이유는 없었다. 학교는 달라도 아이들은 같은 나이다. 전체 학생 수로 치면 예닐곱 배나 많지만, 1학년만 대상으로 할 계획이니 대략 두 배 정도다. 총회 시간이 애초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게 부럽긴 해도, 매주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면 된다. 

더욱이 우리 학교에는 '야외학습장'이라는 특별한 건물이 있다. 10여 년 전 로마 원형극장을 본떠 만든 것으로, 무대와 객석에 지붕까지 씌워져 있다. 대규모 야외 수업도 가능하고, 아주 가끔 음악 공연도 여는 다목적 건물이다. 학교를 찾은 외부인들은 콘서트장인 줄로 안다. 

그런데 학교 내 행사가 시나브로 줄어든 데다 코로나로 인해 집합 행사가 원천적으로 금지되면서 오랫동안 방치돼왔다. 객석의 플라스틱 의자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화석처럼 굳었고, 무대 곳곳의 페인트 자국이 벗겨졌다. 이 공간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로서도 '학년 총회'가 제격이라고 여겼다. 

행정실의 협조로 '야외학습장'은 봄맞이 대청소하듯 단장을 마쳤고, 시간도 확보됐다. 매월 한 차례 그곳에 모여 '학년 총회'를 열도록 9명의 학년 담임교사들과 의기투합했다. 당장 아이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프로그램의 이름부터 지었다. 이어 사회자를 물색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름은 '민주광장'으로 정해졌다. 아이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취지인 만큼 교사들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기로 했다. 욕설과 근거 없는 비방이 아니라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고, 교사도 아이들과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참여한다고 약속했다. 

아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사회자 두 명을 뽑았고, 그들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안건 상정과 진행 절차, 발언자 지정, 발언 횟수와 길이 제한 등 행사의 모든 사항을 결정하도록 했다. 다수의 지지로 선출된 만큼 그들의 통제에 아이들도 자발적으로 협조하리라 생각했다.

처음 그들과 만나 행사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들과 함께 미리 대본을 마련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사회자 둘 다 자신들이 알아서 진행하겠노라며, 입을 맞추자는 내 제안을 단박에 무질러버렸다. 난장판이 될 것 같으면 몸을 던져 막겠고, 썰렁하면 개인기라도 보여주며 분위기를 띄울 거라고 장담했다. 

학년 전체 아이들 앞이라 다소 긴장은 되겠지만, 마이크를 쥐여주면 잠재된 끼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될 거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둘 다 중학교 때 교내 행사를 진행해본 경험이 있어선지 긴장하는 낯빛이 전혀 없었다. 순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색다른 경험이자 진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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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교내 행사 '제1회 민주 광장'의 진행 모습 ⓒ 서부원


지난 12일 오후, 드디어 '제1회 민주광장'이 열렸다. 가히 두 사회자는 능수능란했다. 사전 준비한 음악과 즉흥 발언을 섞어가며 200여 명의 웅성거림을 제압했다. 잠시의 어색함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발언권을 얻기 위해 아이들은 앞다퉈 손을 들었다. 마스크를 쓴 채 후텁지근한 날씨였음에도 두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화제는 중구난방이었지만, 선을 넘진 않았다. 언뜻 거칠고 황당한 주장에는 어김없이 반론이 나왔고, 합리적인 두 주장이 충돌할 때는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즉석 표결이 이뤄졌다. 그길로 학교에 대한 건의 사항이 수렴되는가 하면, 몇몇 학년 공통 규칙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약속한 대로 그 자리에 함께한 교사들은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주장 등에는 반박이 필요했지만, 진행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꾹 참았다. 사회자에 의해 답변을 요구받을 때만 무대에 나가 해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대안학교에서나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 건, 말 그대로 기우였다. 오로지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행사였지만, 두 시간 내내 발언과 경청, 주장과 반론 등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교실에서와는 반대로 교사들이 귀를 열고 아이들이 입을 여는 색다른 경험이자 진짜 수업이었다.

사회자가 폐회를 선언하자, 여기저기서 다음 '민주광장'은 언제 열리느냐고 아우성쳤다. 고등학교에 와서 가장 즐겁고 유익했던 시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예 오늘부로 '야외학습장'이라는 이름을 '민주광장'으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반신반의하던 교사들도 이젠 다음 '민주광장'을 기다리는 눈치다. 아쉬운 마음으로 '민주광장'을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본 한 동료 교사는 혼잣말하듯 이렇게 읊조렸다. '이렇듯 자기주장이 강하고 활달한 아이들인데, 온종일 교실에서 수업받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분명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2회 민주광장'은 6월 중순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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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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