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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장관
ⓒ 공동취재단
정동영 장관이 6·15 행사 차 방북했을 때 많은 언론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를 두고 오락가락 했었는데 행사 마지막 날인 17일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단독면담에서는 1시간30분 정도 북핵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으며, 나머지 1시간 정도는 정치·경제·군사분야 현안문제와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단독 면담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중 북핵문제만 1시간 30분을 할애하였다. 따라서 이번의 면담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를 진척시켜나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일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풀려갈지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이번 면담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극히 일부만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장관과 남측 대표단에게 전한 말들에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려고 하는지가 잘 담겨있다. 이 글에서는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며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따로 분석할 것이다.

아직은 섣부른 판단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6자회담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을 내놓고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정동영 장관의 브리핑 내용 중에 들어 있던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이었다.

정동영 장관은 브리핑에서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유효하며 이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밝혔다. 둘째 북한은 6자회담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거부한 적도 없다. 셋째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 보기 때문에 맞서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우리를 인정,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과 좀 더 협의해 봐야하겠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을 좀더 신중하게 따져보면 꼭 6자회담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예측하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궁극적으로는 비핵화가 목표이지만 미국이 북을 업수이 보기 때문에 맞서보려고 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미국이 북을 대화의 상대, 공존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업수이' 본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계속 핵무기고를 늘리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핵실험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 즉, 미국이 북을 인정한다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은 특별히 이번에만 언급한 것이 아니다. 북은 미국이 대북적대정책만 철회한다며 당장이라도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고 늘 말해왔다.

나아가 이번 면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을 포기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다고 분명히 언급함으로써 지금 6자회담을 가로막고 있는 장본인은 미국이며 미국 때문에 6자회담이 파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북이 6자회담장에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은 미국측에 가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다. 16일(현지시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유럽과 중동 순방을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전망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복귀 여부에 대해 여러 말이 무성하지만 회담은 열려야 열리는 것"이라며 "공은 북한 쪽에 넘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은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도록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미국은 북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장 6자회담에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추측은 섣부르다.

북-미 물밑 대화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대화가 계속 이어지고는 있다는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번 면담에서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우리를 인정, 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과 좀더 협의해 봐야하겠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라는 정동영 장관의 브리핑 내용은 미국과 북이 지금 6자회담을 놓고 협의 중에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물 밑에서 진행된 북-미 간 대화가 잘 풀려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번 정동영 장관 면담에서 부시 대통령에 대해 말한 것도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부시 미 대통령을 평가해 보라는 정동영 장관의 질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 대통령 각하라고 부를까요?"라며 "부시 대통령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김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에 대해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수학을 잘하는 존 캐리와 같은 영리한 엘리트가 아니라 공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솔직하고 화끈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런 부시의 기질을 염두에 두고, 6자회담을 넘어 부시 대통령과 직접 만나 북미 대타협을 해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유머를 가미한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부시 대통령이 북을 인정할 의지가 있다면 사나이답게 화끈하게 만나서 풀어보자는 뜻을 피력한 것이 아닐까.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이번에 정동영 장관을 만나 미국과 우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이렇게 북은 미국과 확고하게 평화공존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나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동영 장관에게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깨끗하게 폐기할 의지도 피력하였다고 한다.

정동영 장관은 17일 저녁 평양에서 귀국한 뒤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3층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가 원하는 체제를 보장하는 게 관철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도 받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소개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 기자가 "김 위원장이 '비핵화는 유효하다'고 했다고 장관이 말했다. 그런데 비핵화는 핵무기가 없고 농축우라늄을 재처리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이는 지난 2월에 이미 파기된 사항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정동영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체제를 보장하는 게 관철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다 내놓겠다,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사찰도 다 받겠다'고 말했다. 핵 보유가 목적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기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비핵화이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미국이 북에 대한 체제 보장과 안전을 담보한다면 북은 핵무기를 폐기하고 사찰을 받을 용의가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정동영 장관은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유효하며 이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일부에서 제기되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노태우 정권 시절 남북합의서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답을 준 것이며 미국의 부시 정권과 6자회담 관련국과 유럽 등 온 세계에 다시 한번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부시정권이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만 남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시 정권이 진정으로 북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6자회담은 당장이라도 재개될 것이며 북미 관계도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이 파탄나면 북은 핵보유국으로 갈 수도

그러나 이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의지는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였을 때 실현 가능한 일이며 역으로 6자회담이 파탄나고 북-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갈 의지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수석의 유훈이며 북의 확고한 의지이다. 그래서 미국이 북을 인정해주면 핵무기를 깨끗하게 폐기하고 국제기구의 사찰도 받겠다. 그러나 미국이 계속 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에 매달려 남한에 핵무기를 가져다 놓고 북을 위협한다면 북은 어쩔 수 없이 핵보유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의지일 수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에서'핵무기를 폐기할 것인지', '핵사찰을 받을 것인지' 등등 미국의 우려를 씻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북은 더는 미국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런 약속을 공개적으로 확약한 것은 그 결정적인 대책을 취했을 때 국제사회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우려를 미리 불식시키기 위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 면담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쌓은 셈이다.

벌써부터 국제사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면담 내용을 긴급하게 타전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북한과 긴장 관계에 있는 일본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사찰 약속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 언론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꿈에 부푼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제 부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북핵보유선언으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있는 미국이 여기서 계속 머뭇거리거나 대북적대정책을 강화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던진 비핵화의 약속과 대화의지 표명을 무시한다면 한반도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자주민보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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