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5 07:14최종 업데이트 24.07.1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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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장 (자료사진) ⓒ Unsplash


인권운동 단체의 활동가가 그리 흔한 직업은 아니다 보니 종종 다양한 인터뷰를 요청받고는 한다. 인터뷰라 하면 보통 언론사를 많이 떠올리겠지만 과제나 교내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를 찾는 학생들도 있다.

특히나 근래에 들어 성소수자를 둘러싼 이슈들에 대해 주목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인터뷰 요청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도 한 고등학교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성소수자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것부터 활동가로서의 삶에 관한 것까지 질문이 꽤나 포괄적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의 비중이 컸는데 처음에는 다른 인터뷰에 비해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방문이 예정된 학생들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가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이 당사자임을 밝히며 누군가 인터뷰를 요청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학생들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부러 말한 경우는 없어서 크게 그럴 가능성조차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별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를 시작하자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차별과 혐오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성소수자로서 같은 당사자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게 없는지를 질문받았을 때 특히 더 그랬다. 돌이켜보니 나는 지금껏 다른 인터뷰를 하면서는 그저 친절한 외부인들을 대하듯이 말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불평등과 배제를 직접 겪을 일은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성소수자 당사자를 마주하고 발생한 딜레마
 

지난 6월 1일 서울 남대문로 및 우정국로 일대에서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도심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 복건우

 
하지만 언급한 그 인터뷰에서 나는 같은 당사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언급할 사회적 문제들이 미래에 현실로 다가올 사람을. 10대부터 지금까지 성소수자로 이 사회를 살아오며 겪거나 목격했던 각종 부조리와 차별들이 떠올랐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일단 사람들과 섞여서 살기 시작하면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 관계, 가족 등 여러 영역에서 차별로 인한 차이가 생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고 권리인데 나는 성소수자라서 안 되는 것들이 꽤 많다. 여기에 뉴스를 보며 느꼈던 암울함은 어떤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만으로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꾸역꾸역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고 또래 성소수자 친구들의 부고를 끊임없이 접해온 시간들은.

이 모든 것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평온을 유지하기까지의 시간은 그야말로 죽거나 미치거나와 같다. 분노와 슬픔이 지나치게 빠른 주기로 돌아가며 사람을 찾아온다. 여기에 무너져 사람이 완벽히 무기력해지면 살아갈 의지가 점점 깎여나가게 된다. 아니면 견디기 위해 세상 모든 것에 분노와 우울을 투사하거나.

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 경우는 좋게 봐야 '감정 기복이 심한 것' 정도로 여겨진다. 보통은 분노한 미치광이로 취급된다.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 취직을 하고 어느 정도 자원을 확보한 나와 성소수자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상담을 받고 처방 약을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수자이기에 겪는 스트레스에도 점차 익숙해졌다. 우울과 분노와 자해와 자살 시도가 뒤엉킨 긴 시간을 건너.

세상의 변화가 여전히 체감되기 어려운 일상
 

2020년 8월 3일에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 ⓒ 박정훈


이상한 마음의 정체는 막막함이었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당신의 인생 앞에는 소수자가 아니라면 겪지 않을 고난과 역경이 놓여 있고 거기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나는 어려웠지만 당신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을 줘야 할까.

그러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는커녕 이미 만들어진 조례조차 폐기되고 어떤 집단들은 매우 당당하게 혐오를 전시하는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여전히 부재하고 도서관에서 성교육 도서들이 쫓겨나는 현실에서 '당신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는 약속은 허황된 것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말해 앞으로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니 자신을 잘 돌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찾을 수 있는 최선의 절충안이었다.

내가 성소수자임을 처음 자각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도 이전보다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증가했고 당사자들이 겪는 차별이나 배제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들은 기사나 영상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부딪히고 겪는 사회도 그런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활동가로서 나는 내 성적 지향을 밝히고 살지만 세상에는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는 당연한 듯 이성애자로 전제될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할 수 없다.

성소수자인 우리도 좋은 이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례로 나는 몇 년째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인사도 별로 나누지 않는다. 그룹 운동이라 같은 수업을 오래 듣다 보니 사람들은 서로 꽤 친밀해진 느낌이다. 개인적인 대화도 다들 잘 나눈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가까워지면 결국 서로에 대한 대화도 나누게 될 텐데 실수로라도 내가 동성애자인 걸 알리거나 그렇다는 의심조차 받고 싶지 않다. 그들이 동성애자와 같은 샤워장과 화장실을 쓰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고 다른 여타의 이유로 그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조용히 사람들과 떨어져 관망하게 된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여러 인식 조사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특이한 흐름이 있다. 한국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이웃이 되는 것에는 큰 불편함을 보인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를 이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55.9%를 기록했다. 함께 조사가 실시된 다른 소수자 그룹보다 눈에 띄게 높은 수치였다. 나를 인터뷰 했던 역시나 성소수자 당사자인 그 사람은 언젠가 학교를 떠날 것이다. 어쩌면 집도 떠나 독립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성소수자인 우리가 좋은 이웃이자 동료로 함께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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