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일에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
박정훈
이상한 마음의 정체는 막막함이었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까. 당신의 인생 앞에는 소수자가 아니라면 겪지 않을 고난과 역경이 놓여 있고 거기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나는 어려웠지만 당신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을 줘야 할까.
그러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는커녕 이미 만들어진 조례조차 폐기되고 어떤 집단들은 매우 당당하게 혐오를 전시하는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여전히 부재하고 도서관에서 성교육 도서들이 쫓겨나는 현실에서 '당신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는 약속은 허황된 것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말해 앞으로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니 자신을 잘 돌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찾을 수 있는 최선의 절충안이었다.
내가 성소수자임을 처음 자각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도 이전보다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증가했고 당사자들이 겪는 차별이나 배제를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들은 기사나 영상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부딪히고 겪는 사회도 그런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물론 활동가로서 나는 내 성적 지향을 밝히고 살지만 세상에는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는 당연한 듯 이성애자로 전제될 것이다. 거기에서 오는 긴장감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할 수 없다.
성소수자인 우리도 좋은 이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례로 나는 몇 년째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인사도 별로 나누지 않는다. 그룹 운동이라 같은 수업을 오래 듣다 보니 사람들은 서로 꽤 친밀해진 느낌이다. 개인적인 대화도 다들 잘 나눈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가까워지면 결국 서로에 대한 대화도 나누게 될 텐데 실수로라도 내가 동성애자인 걸 알리거나 그렇다는 의심조차 받고 싶지 않다. 그들이 동성애자와 같은 샤워장과 화장실을 쓰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고 다른 여타의 이유로 그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조용히 사람들과 떨어져 관망하게 된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여러 인식 조사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특이한 흐름이 있다. 한국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이웃이 되는 것에는 큰 불편함을 보인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성소수자를 이웃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55.9%를 기록했다. 함께 조사가 실시된 다른 소수자 그룹보다 눈에 띄게 높은 수치였다. 나를 인터뷰 했던 역시나 성소수자 당사자인 그 사람은 언젠가 학교를 떠날 것이다. 어쩌면 집도 떠나 독립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성소수자인 우리가 좋은 이웃이자 동료로 함께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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