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으로 촬영한 충남 부여군 장암면 점상3리 덕림병사
오창경
"우리 동네 좀 와보셔유. 마을 회의도 해야겠고 마을 계곡도 정비하는데 오시면 좋겠네유."
반딧불이 마을 축제를 소개한 기사 "
여기로 오세요... '반딧불이'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https://omn.kr/28uvd)를 쓴 이후 축제추진위원장과 이장의 전화를 자주 받았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 덕림마을은 반딧불이가 나오는 덕림병사와 아기자기한 마을 길, 1급수가 흐르는 아담한 계곡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런데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사는 부여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도 비 폭탄이 피해 가지 않았다. 뒷마당에는 토사가 흘러내려 낯선 땅처럼 변했고 현관 앞은 황토 얼룩으로 밤새 물이 찼다 빠진 흔적이 역력했다. 하룻밤 사이에 집중호우로 부여 전 지역이 산사태와 토사 유출, 시설 하우스 침수 피해 등으로 난리가 났다.
덕림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과 통화했던 그날 밤 쏟아진 폭우로 마을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토사가 논을 덮쳤고 마을 안길이 꺼지기도 했다. 생활 공간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가는 곳마다 일거리가 생기는 사람을 두고 '일복이 많다'고 한다. 휴가를 계획 중이었는데 빗물 폭탄이 터져버렸다. 휴가는 개뿔, 조짐이 불길했다. 이제부터는 산비탈 농가 뒤뜰에서 삽질을 하거나 흙 부대를 나르고 하우스에서 흙탕물 뒤집어쓴 농작물을 걷어내는 모습이 많아질 것이다. 휴식과는 거리가 멀고 가는 곳마다 일이 생기는 일복 많은 내 팔자를 극한 호우가 여지없이 증명했다.
덕림병사 계곡에 모인 마을 사람들
"워쩐대유? 별일은 없슈? 워쩔 수 없지유. 하늘이 하는 일인디... 다행히 덕림병사 쪽은 비 피해가 없으니께 우리는 계획한대로 진행할규."
덕림마을 이장의 전화였다. 수해 피해가 있어도 한번 잡은 날짜를 변경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덕림병사 계곡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니 원시림 같은 곳이다.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가 있고 반딧불이들이 산란하고 유충들의 숙주가 되는 다슬기며 달팽이들이 풍부한 계곡이다.
그곳에 중장비를 동원한 개발은 반딧불이를 비롯한 생물자원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을 잘 아는 마을 사람들이 수작업만으로 반딧불이 탐방로를 내기 전에 계곡 탐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덕림병사 계곡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덕림산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조신의 묘가 있는 곳이다. 태종이 무학대사를 보내 스승이었던 조신의 묫자리를 잡아주게 했다는 역사가 전한다. 그 바람에 마을 안쪽에 있던 조신의 묘를 명당터라는 덕림산으로 이장하고 덕림병사를 지어 후손들이 기리게 했다.
옥녀직금(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짜는 형국)의 명당이라는 조신의 묘를 쓴 후에 풍양 조씨들은 조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의 업적을 남겼다. 21세기에도 밤하늘에 선녀가 짜 놓은 옷감 같은 은하수 궤적이 보이고 반딧불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덕림산은 명당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