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2 07:02최종 업데이트 24.08.0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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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철을 맞아 친환경 여행, 도시 탐방, 반려동물과 함께 보내는 휴가, 오토바이 여행, 숨겨진 명소 등 다양한 형태의 여름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국민휴가위원회'가 나섭니다. 무더위와 고물가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된다는 건 삶의 일상성이 파괴되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는 게 아니라 아들이 어렸을 때 그랬다는 얘기다. 남들 다 하는 외식 한 번, 여행 한 번 가는 게 공포이자 두려움이었다.

첫 가족여행을 떠난 게 아이들(남매 쌍둥이, 비장애인 딸과 발달장애인 아들)이 10살 때다. 큰마음 먹고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갔는데 택시도 없는 우도 안에서 아들이 텐트럼(분노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정말 죽다 살았다.


아들 때문에 버스도 탈 수 없자 남편이 선착장까지 아들을 업고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탈진해 버렸다. 나는 눈물 흘리며 지나가는 경찰차에 '살려주세요'를 외쳤고 고마운 경찰 덕분에 무사히 제주 시내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왜 돈 내고 고생을 사서 하나. 내 인생에 여행이란 사치인가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전에 세계 일주라도 다녀올걸. 속절없이 과거에 대한 후회만 일었다.

그랬던 내가 또 여행이 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첫 여행 때 '진상의 끝'을 보여줬던 아들이 지금은 땅끝마을 해남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어디 그뿐이랴. 수시로 안방에서 여행 가방을 끌고 와 현관 앞에 내어놓는다. 또 여행 가고 싶다는 뜻이다. 

지금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동안 전국 곳곳을 여행하고 다녔다. 처음엔 낯선 곳을 간다는 불안감에 긴장하던 아들이 지금은 번쩍거리는 좋은 호텔에서든 거미줄이 난무하는 펜션에서든 머리만 대면 잘 자고 전국 어느 식당에서도 밥을 잘 먹는다.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건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과의 동반 여행 덕분이다. 아직도 여행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가족이 있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를 먼저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함께'하는 여행 속에서 즐거움을 알게 되면 그다음부턴 가족만의 여행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함께 떠나는 단체여행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류승연
 
시선에서의 자유로움

발달장애인 가족 단체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녀가 장애 진단을 받은 지 오래되지 않을수록 부모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는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선뜻 휴가 계획을 못 잡았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동네에서의 시선도 감당이 안 되는데 낯선 곳에 가서까지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가족 단체여행을 떠났던 날, 아이들을 바닷가에 풀어놓고 어른들은 모래밭에 앉아 쉬고 있는데 순간 내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의 남다른 행동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들이 이쪽에서 "아갸갸갸"라고 하면 저쪽에선 다른 아이가 "끼야약~" 했다. 여섯 가족이 함께 여행 갈 땐 6명의 발달장애인이, 세 가족이 함께 여행 갈 땐 3명의 발달장애인이 저마다의 '다름'을 마음껏 표출했다.

함께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아들과 단둘이 외출할 땐 스치는 시선에도 신경이 쓰이지만 남편까지 같이 외출하면 왠지 모르게 든든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 보라. 든든한 한 팀이다. 사람들 시선이 꽂혀도 타격감이 전혀 없다. 그래서 '세상의 시선' 때문에 선뜻 여행 갈 용기를 못 내고 있다면 친한 가족들과 팀을 이뤄 단체여행을 먼저 떠나보라고 권하는 것이다. 
 
단체로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은 가족끼리 떠났던 제주도 여행과는 달랐다. 류승연
 
아빠 모임의 중요성

친한 발달장애인 가족끼리의 단체 여행, 좋다. 그런데 난관이 있다. 아빠들의 협조가 적극적이지 않다면 아빠 모임을 먼저 권한다. 아들이 4학년이었을 때 남편이 아빠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모여서 술이나 먹는 모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진짜였다. 아빠들도 마음 편하게 수다 떨 공간과 관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빠 모임 초기에 번개가 수시로 잡히기에 대체 만나서 뭔 얘기들을 하느라 그렇게 자주 모이냐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엄마들 욕해".
"무슨 욕?"
"엄마들은… 자기만 힘들대".

그 말엔 웃을 수 없었다. 그래. 아빠들에게 필요했던 건 바로 이런 것이었겠구나.

아빠들끼리 친하니 여행계획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다음 달에 대부도나 갈까?" 아빠들이 여행 제안을 했을 때 거부하는 엄마들은 없었다. 그렇게 처음엔 여섯 가족이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비장애 형제자매가 있는 세 가족만 모여 단출하게(?)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함께 떠나는 단체여행에서는 아이들끼리의 친밀함도 커진다. 류승연
 
장애 친화 장소

내가 속한 여행 가족 모임엔 '인간 내비게이션'이 한 명 있다. 그 덕에 전국 곳곳에 은밀히 숨어있는 명소, 맛집, 숙소 등을 두루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가족 모임에 '인간 내비게이션'이 있지는 않을 터. 그럴 땐 발달장애 자녀들이 마음껏 소리 지르거나 뛰어다니거나 심지어 텐트럼을 일으켜도 눈치 보이지 않을 '안심 숙소'에 머무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보통 발달장애인 가족이 휴가를 갈 땐 남들과 분리된 독채 펜션을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대부분 말만 독채지 독채끼리 따닥따닥 붙어있어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런 눈치에서 자유로운 대표적인 공간으로 제주도 '삼달 다방'이 있다. 장애계 사람들이 제주도에 갈 때면 삼달다방에서 머문다기에 나는 처음엔 왜 다방에서 머무나 싶었다.

아들 5학년 때 간 제주 여행에서 '인간 내비게이션'이 삼달다방을 숙소로 잡았다고 했다. 다방이니 씻을 곳도 없이 불편하게 자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웬걸. 진짜 다방이 아니라 이름만 다방인 게스트하우스였다. 그것도 장애인과 지원하는 사람들의 쉼을 위해 특화된 게스트하우스. 밤마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 먹었고 그럴 때면 다른 방에 머무르는 장애운동 활동가, 특수교사 등과 합석해 얘기도 나눴다.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입을 막지 않아도 됐고 상동행동을 제지하지 않아도 됐다. 아이들은 자유로웠고 어른들은 더 자유로웠다. 여태까지 간 3번의 제주 여행에서 2번을 삼달다방에서 머물다 왔다.

비슷한 공간으로는 경남 양산의 오봉살롱이 있다. 이곳 역시 살롱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다. 발달장애계에선 유명한 곳인데 아쉽게도 나는 아직 못 가봤지만 조만간 꼭 가볼 생각이다.
 
부모들끼리 마음 편하게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류승연
 
가족휴식 지원사업


내 돈으로 가는 여행도 좋지만 지자체마다 발달장애인 가족휴식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신청하길 권한다. 지자체는 사업 예산을 편성하고 장애인복지관과 같은 개별 기관이 사업 운영을 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복지관별로 사업 내용과 지원금 내역이 약간씩 차이가 있어 잘 알아봐야 한다.

나는 아들이 6학년일 때 집 근처 복지관 가족휴식지원사업에 당첨됐는데 먼저 여행비를 쓰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추후 입금을 받는 형식이었다. 그때 4인 가족이었던 우리는 96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도 있고, 아예 버스를 대절해 단체여행을 떠나는 방식도 있고, 테마별 여행을 모집하는 방식도 있다.

굳이 가족휴식지원사업이 아니더라도 장애인복지관 등에선 자체 사업으로 가족여행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기에 복지관 소식도 꾸준히 확인하면 좋다. 또 장애 관련 많은 재단에서 다양한 형태의 여행사업을 추진할 때가 많아 이 또한 수시로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좋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대한작업치료사협회,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등 세 기관이 협력해 진행하는 'Stay Strong Together'(함께 견뎌내자) 캠프도 있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제공한 숙소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모여 캠프를 하는 것인데 발달장애인 자녀에겐 1:1로 작업치료사가 따라붙는다.

작업치료사는 작업치료실이 아닌 캠프장 곳곳의 대자연을 현장으로 삼아 당사자와 함께 여러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비장애 형제자매를 위한 프로그램도 따로 운영된다.

놀러 와서 자녀를 '안심할 수 있는 대상'에게 맡긴 부모들은 처음엔 둘만 남은 상황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계속해서 눈을 뗄 수 없는 '할 일'이 있어야만 했던 게 가족여행이었는데 자연 한 가운데서 부부만 덜컥 남으니 이게 꿈인가 싶은 것이다.

몇 년 전 SST 캠프에서 남편과 둘만 남은 게 어색해 숙소 밖으로 나오니 다른 방 부모들도 전부 숙소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그때 저마다 했던 말이 대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다른 가정들은 부부 둘만 여행 다니는 게 일상일 텐데 우리는 부부 사이에 항상 자녀가 함께 있다보니 이 상황이 이상하기만 하다며 웃었던 게 기억난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여름휴가란 마음 먹었다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 여행을 즐기고 휴가를 즐길 방법은 있다.

부모가 고립된 채 생활하면 발달장애인 자식도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다. 혼자서 용기가 안 나면 함께 나가면 된다.

여행은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나도 전국을 여행해 보고 나서야 그 즐거움을 알게 됐다. 모든 발달장애인 가정이 여행의 즐거움을 당연하게 아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자녀들도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길 바란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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