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 로비
정누리
첫째는 충청남도 부여다. 수도권에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좋다. 고속도로도 뻥 뚫린다. 안개 자욱한 논밭을 통과한다. 난 해외여행을 가면 항상 박물관에 들렀다. 종일 문화재를 보며 상상하는 것이 내 즐거움이다. 이곳에도 박물관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부여 사람들이 다 여기로 온 것 같다.
여기서 첫째로 놀란다.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온다. "5분 뒤 백제금동대향로 레이저 쇼가 펼쳐집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돌덩이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 로비에서 무슨 쇼가 펼쳐진다고? 무리에 섞여 바닥에 앉는다. 이윽고 천장 틈새가 움직이더니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둘째로 놀란다. 암실이 되자, 천장에 붙어있던 몇 대의 빔프로젝터가 작동하면서 로비가 상영관이 된다. 금동대향로에 새겨진 문양들을 소개한다. "물고기, 사람 얼굴을 한 새, 코끼리를 탄 사람!" 아래에 뜨는 글자를 아이들이 외친다. 쇼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난 라스베이거스 오쇼를 봤을 때의 감정으로 얼떨떨하게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실물 금동대향로를 보러 박물관 안쪽으로 들어가고 없다. 나도 따라간다. 저 멀리 빛나는 금동대향로가 있다. 탄성이 나온다. 머릿속에 이 조형물 제작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흙으로 형상을 만들고, 밀랍을 5~6mm 두께로 바르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는다. 역사학도인 아빠가 지겹게 말하던 과정인데 왜 이제 와서 이해되는 것일까. 내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열정적인 해설사께서 사람들을 이끌고 금동대향로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이 깨끗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진흙에 묻혀 산소가 차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1993년에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내 생각엔 부여 자체가 금동대향로 같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깨끗한 곳이 아직도 넘친다. 내가 부여를 만난 것도 여행 슬럼프가 가져다준 '우연'이리라.
다음날 신동엽 작가 생가에 들렀다. 요즘은 신동엽 하면 개그맨부터 떠올리지만, 1960년대만 해도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달리 매번 파격적인 민중 시를 발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작가가 있다고 했다. 시 '껍데기는 가라'는 나도 잘 안다.
작은 초가집 앞에 도착했다. 햇빛이 사방에서 내리쬐어 작은 힘이 느껴진다. 남의 집 문지방을 넘듯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 본다. 작은 방 두 칸의 실내가 우리 할아버지 살던 곳과 다를 바 없다. 신동엽 시인이 살아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오는 길에 처마 아래 글귀를 발견한다.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 여사가 쓴 글이라고 한다.
옆 신동엽 문학관에는 카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어른들이 보인다. 손님이 들어오면 데스크 직원은 꾸벅 인사하고 다시 자기 할 일을 한다. 방문객은 시인의 생애와 편지를 읽고 조용히 걷다가 길을 나선다. 화려한 문패도, 요란한 음악도 없다.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 그야말로 껍데기는 없는 알맹이의 현장이었다.
[부산] 한국의 정이 섞여 있는 바캉스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