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장수조이월드
김대홍
아이들은 '금사빠'다.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식는다. 금세 좋아하고 금세 잊어버린다.
놀이동산에 간 날 일행이 3가지를 탈 수 있는 이용권을 사서 나누었다. 장마철에 흐린 날이라 한산했다. 아이들은 줄도 서지 않고 놀이동산을 이용했다. 한 가지를 타는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고, 놀이기구 3가지는 대략 15분 만에 끝났다. 아시다시피 놀이기구 타는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엄마들은 본인들이 이용하지 않은 표를 아이들에게 몰아줬고 그것도 금방 끝나 다시 3가지 이용권을 추가로 끊었다.
그래도 1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식사 시간까지 1시간 이상 남았다. 놀이기구라는 단맛을 본 아이들은 '더더더'를 외쳤고 돈은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내가 아이들과 지금껏 지내는 동안 놀이동산을 간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아이들 만족감이 참 짧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아이들에겐 돈 드는 놀이나 돈 안 드는 놀이나 비슷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 다섯 명을 보고 다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자, 지금부터 '얼음땡'이다. 아저씨가 술래야. 열 셀 테니 어서 도망쳐."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도망쳤다. 여기선 적당히 잔기술이 필요한데, 잡을 듯 말 듯 쫓아가야 한다. 그 중 지쳤거나 술래가 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는 아이를 잡는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슬슬' 딴 놀이가 하고 싶다는 눈빛을 보낸다.
"자, 이제 꼭꼭 숨어라다. 열 셀 테니 빨리 숨어." 그렇게 또 시간을 보냈다. 마무리는 비눗방울을 꺼냈다. 다이소에서 제일 싼 걸로 항상 차에 갖고 다닌다. 뛰어다니느라 지친 아이들은 비눗방울 서로 하겠다며 손을 내밀었다. 놀이에는 항상 징검다리가 필요하고, 아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잡기놀이'를 좋아했다. 시간이 남았을 때를 대비해 가방엔 풍선도 있었다. 지금껏 풍선을 싫어하는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
▲ 경북 영주 장수조이월드 :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놀이동산일 듯. 80년대풍으로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인기.
[#5] 아이의 질투 조심
아이들은 질투가 많다. (시)샘이 많다고도 표현한다. 질투와 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고 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그 두 가지가 많고 그런 감정들을 투명하게 표현한다.
아이들은 비교 놀이를 즐긴다. "내 장난감이 더 좋아." "내 광선검이 더 강력한 거야." "우리 차가 더 좋아." "우리 집이 더 넓어." "우리 아빠가 더 힘이 세." 그러고 보면 자본주의적인 비교가 많다. 부모들 영향인가 싶어 가슴 한편이 뜨끔하다.
몇 년 전 아는 지인네랑 해외에 놀러 갔다. 지인 쪽 엄마는 놀라웠다. 아내와 난 '뽀미언니'(아동 프로그램 '뽀뽀뽀' 진행자로 '유쾌발랄'의 대명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엄마는 하이텐션 목소리로 동물 흉내를 내는가 하면, 만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림을 '슥슥슥' 그리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 우스꽝스럽게 꾸몄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은 '뽀미언니' 주변을 떠날 줄 몰랐다. 다음 날 지인네 아이가 엄마 옷을 유난히 더 꽉 잡는 게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다가서려 하자 은근슬쩍 틈을 막는 것도 보였다. "얘들아" 부르면서 아이들 손을 붙잡았다. 아이들은 빛과 같은 속도로 재미있는 어른을 찾아낸다. 모든 아이들은 그쪽에 달라붙는다. 인기를 독차지한 어른 쪽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는 어느 순간 'n분의 1'이 돼버린다.
우리 아이들은 괴물 놀이를 좋아한다. 아빠가 괴물이 되고 아이들은 도망친다. 가끔씩 그 모습을 보고 몇몇 아이들이 "저도 하고 싶어요"라며 찾아온다. 그렇게 도망치는 아이들이 넷이 되고, 다섯이 되고, 그 이상이 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걸 느꼈다. 여러 아이 중 하나가 돼버린 우리 아이들 마음이 상한 것이다.
이건 사실 자기반성이다. 우리 아이들은 질투나 샘을 부리기보다 조용히 구석으로 사라진다. "같이 하자"고 불렀을 때 아이들이 돌아온 적은 없다. 마음 다치지 않고 잘 놀 수 있게 만드는 지혜가 아직 나에겐 없다. 아이들이 드러내는 질투나 샘은 엄마 아빠가 잘 읽어야 하는 고급 신호다.
[#6] 안전 또 안전
여행을 함께 가기 전 지인네 취향을 고려했다. 층간소음에 민감했다. 단독 건물에 복층을 택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걸 좋아했다. 자쿠지(기포가 나오는 욕조)가 있는 숙소를 골랐다.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이 있는 걸 원했다. 숙소엔 대형 트램펄린과 모래 놀이터가 있었다. 아내 취향도 고려했다. 아침 조식이 깔끔했다. 과일과 토스트, 주스가 숙소로 배달됐다. 풀장이 있었다. 가격이 적당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3살, 5살 아이를 둔 지인네는 오자마자 자쿠지에 들어가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트램펄린도 잘 이용했다. 조식에 대해서도 '엄지척' 표시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숙소는 2층에 침대가 있고, 1층엔 소파와 주방, 바닥으로 움푹 빠진 자쿠지가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활동성이 좋은 3세가 자면서 구르다 자쿠지에 '쏙' 빠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이불과 요로 차단을 했지만 아이는 그사이를 뚫고 자쿠지에 다시 '쏙' 빠졌단다. 그런 소동을 벌이느라 밤새 잠을 못 잤다는 후문이었다.
침대에서 자다가 아이들이 떨어지는 건 다반사다. 지인네는 복층 침대에서 자질 못했고, 1층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잤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온돌을 선호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절대 안전을 지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7] 서로를 의식하고 시대에 적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