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이틀간의 칩거와 잠행을 마친 손학규 후보는 '선대본 해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후 첫 행보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광주정신을 계승해 돈선거 부정선거를 물리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구묘역을 먼저 참배했다. 묵념을 하고 있는 손학규 후보 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습니다'라는 한 사회단체의 플래카드 내용이 손 후보와 오버랩 돼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강성관
손학규의 칩거가 가져온 정치적 효과는 여기까지다. 리더십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기는 자충수가 되기도 했다.
광주역에서 만난 양해만씨(53·건설업)는 "툭하면 칩거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청와대 문 걸어 잠그고 안 나올 건가. 초등학생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역에서 2년째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는 김기열씨(49). 그는 추석 전날 손학규 후보가 광주역에서 귀향객들을 상대로 이른바 '민생 투어'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복잡한 통로를 막아가면서 사진기자들 앞에 놓고 아이와 사진 찍고 그러는 게 큰 정치인가"라고 힐난했다.
손학규 캠프에서도 자인하는 바다.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호웅 전 의원은 "그 점이 나도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칩거가) 없었다면 정치의식 높은 광주에서 (4연전 패배를) 확실히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광주 북구 동림동에서 왔다는 정성업씨(65)는 "사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광주는 소외되었다. 속고 또 속아왔다. 이번에 또 속을지 몰라도 (손학규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연설회장 밖, 조용히 웅성이고 있는 20여명의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버사랑'이라는 봉사단체의 어머니들이다. 손학규를 지지해서 왔단다. 고점례씨(56)는 "저쪽(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면 안 되는데 손학규는 경기도 출신이니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지 않겠냐"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서울 가 있는 자식들이 푸대접을 받을까가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지지활동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크다"고 덧붙였다.
'다음 단계' 기다리는 광주 광주의 거리는 조용했다. 전 같았으면 연설회장으로 마음과 발걸음이 쏠렸을 터. 경선관리를 맡고 있는 최성 의원은 "사실은 광주가 더 난리가 나야지"라며 이날 연설회장 분위기에 대해 "각 캠프가 동원한 규격화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각 후보가 던지는 메시지가 과거에 갇혀 있다"며 "전국으로 확산될만한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회자됐다. 택시기사 차아무개씨(34)는 "(신당 후보 중에는) 여문 사람이 없다. 전부 어리버리하다"며 "도둑질을 하든 말든 밥을 먹여주진 않겠나"라며 이명박을 지지할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택시기사 신아무개씨(49)도 마찬가지였다.
"광주가 지금쯤 되면 입만 벌리면 정치 얘기가 나오고 두세 명이 모이면 열변을 토하게 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신당에 대해선 얘기가 안 나온다. 지금 심정으로는 솔직히 욕을 먹더라도 이명박을 찍고 싶다."
이명박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 후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신씨는 여운을 남겼다.
"전라도는 들어가 봐야 알지. 나중에 그 안(투표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랑가 몰라…. 짠헝께…."
광주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풍'(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였다. 울산에서 1등한 노무현을 다시 1등으로 만들어주며 전국으로 노풍을 확산시켰다. 4~5%대의 노무현이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40~50%대로 껑충 뛰어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2007년 경선에선 그럴 것 같지 않다. 이들은 누구의 대세론도 만들어줄 것 같지 않다. 누구도 '광주'를 사유(私有)할 수 없는 선택의 유보. 아무래도 체면치레 수준으로 후보 3인에게 3분할이 될 것 같다.
광주에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끝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후보단일화 과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입에서도 문국현씨의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됐다. 방미 중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흘러가는 양상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신당의 후보와 민주당,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누구에게도 힘을 실어주진 않았다.
DJ가 광주 민심을 따르는 것인지, 광주가 DJ를 따르는 것인지 몰라도, 그 둘은 정확히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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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와 대통합신당, 운명공동체""대통령 되어서도 문 걸어 잠글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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