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와 대통합신당, 운명공동체"
"대통령 되어서도 문 걸어 잠글텐가"

[박형숙의 대선 진맥⑫] 손학규의 '칩거' 효과, 광주에서 통할까?

등록 2007.09.27 20:55수정 2007.09.2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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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광주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손학규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불끈 쥔 주먹으로 추켜 올리며 화답하고 있다.
27일 광주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손학규 후보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불끈 쥔 주먹으로 추켜 올리며 화답하고 있다. 강성관

'광주’는 괴롭다. 다들 광주, 광주 노래를 부른다. “광주가 대통령 결정한다” “광주에 운명이 달렸다” “광주 대첩에 사활 걸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세 번째 경선지인 광주·전남 투·개표를 이틀 앞둔 27일, 광주는 또 들썩였다.

서울 정치인들과 서울 언론들이 불러대는 ‘광주 세레나데’에 정작 광주 사람들은 무덤덤, 무관심했지만 이번에도 정치적 부담은 광주의 몫이 되었다. 왜 그런가?

지난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 4연전(제주.울산.강원.충북)에서 예상을 깨고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뒤집었다. 여파는 계속됐다. 범여권 후보 지지도에서 줄곧 앞서왔던 손학규는 여론조사에서도 정동영에게 밀렸다. 손학규에게 비상이 걸렸다. 이틀 동안 경선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했다. 본인은 ‘고뇌’와 ‘결단’이었다고 표현했지만 ‘가출정치’ ‘기획잠행’ ‘소동’ ‘돌출행동’으로 비쳤다.

어쨌든, 손학규가 빠진 경선은 재미가 없었다. ‘반쪽짜리’였다. ‘말의 귀재’ 정동영도 손학규가 빠진 이해찬과의 양자 토론회에서 페이스를 잃는 모습을 보였다. 보는 사람도 빈자리에 눈이 갔다. ‘내가 빠진 경선이 어떤 것인가 한번 봐라’라는 심사였을까? 확실히 손학규의 존재감은 드러났다.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경선 완주’를 약속했다. 대신 ‘캠프’를 해체하는 배수진을 쳤다. 의원 조직을 해체하고 자원봉사자들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선언이었다. 정동영에겐 ‘동원선거’의 굴레를 씌우면서 ‘국민경선’의 의미를 선점하는 효과를 냈다. 손학규의 가출이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는 대목이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의 말을 들어보자.

“손학규의 선택이 사심에서 비롯되었고 당혹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한나라당 때와는 다르다. 손학규의 위기는 손학규만의 위기가 아니다. 신당의 위기이기도 하다. 손학규의 운명과 당의 운명이 연동되어 있다. 신당의 경선이 이대로 가도 좋은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진 것이다. 당이 나서야 하는 이유다. 손학규가 살면 신당이 살고 손학규가 죽으면 신당이 죽는 상황이다.”

돌아온 손학규, 신당 살릴 수 있을까


 27일 오후 광주에서 합동연설회를 연 손학규·정동영·이해찬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왼쪽부터).
27일 오후 광주에서 합동연설회를 연 손학규·정동영·이해찬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왼쪽부터).전라도닷컴 김태성

손학규는 정확히 이 대목에 승부를 걸었다. 통했다. 정대철, 문희상, 유인태 등 당 중진들이 움직였고, 정균환, 이낙연, 김효석 등 민주당 출신들이 움직였다. 손학규를 신당으로 모셔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중진들은 범여권의 ‘판’을 판들어준 손학규에게 부채감이 있었다. 손학규가 신당행을 최종 결정하기 직전에 만난 한 중진은 “당시 손학규에게 ‘다준다’는 심정으로 만나 설득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있으면서 손학규 모시기 경쟁에 나섰던 인사들 역시 손학규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손학규는 추석 연휴 내내 광주에서 살았다. 5.18 묘역을 두 번이나 갔다. 광주 정신에 읍소했고 민심에 호소했다. 동시에 서울에선 중진들의 손학규 지지설이 돌았고, 광주전남에선 동교동계 인사들이 움직인다는 얘기가 들렸다. 분위기도 뜨고 조직도 움직였다. 공중전과 지상전이 동시에 이뤄졌다. 손학규는 비로소 표정을 되찾았다.


27일 오전 10시 광주 MBC가 주최한 토론회. 손학규는 선두인 정동영을 겨냥해 “당의장 선거가 아니다”라며 조직선거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또 정동영, 이해찬 두 후보를 싸잡아서는 “참여정부의 주역, 노무현의 대리인”이라며 ‘도로열린우리당’ 프레임에 가뒀다.

대신 지역 발전 공약을 언급하면서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박광태 광주시장이 추진하고 있는…”이라며 호남 유력 인사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두 후보의 공격은 상대적으로 무뎠다. 정동영은 “(경선 복귀)결단을 내려줘서 감사하다”며 여유를 보였고, 이해찬은 “공격하려고 했는데 또 나가실까봐 공격은 안하겠다”며 비꼬는 수준에 그쳤다.

오후 2시 염주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연설회. 응원전에서 손학규 지지자들은 ‘소리’로 세를 과시했다. 유일하게 막대 풍선을 사용했다. ‘머릿수’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되레 정동영쪽은 자제하는 눈치다. 팬클럽을 이끌고 있는 이상호(일명 미키루크)씨는 “추석 내내 부산에서 살았다. 정동영의 바람은 부산에서 불 것”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손학규는 연설에서 “상처를 드렸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광주정신에 온몸을 바치겠다… 이명박에게 가 있는 중도개혁세력 다시 끌어와야 한다… (내가 후보가 되면) 민주당, 국민중심당, 문국현씨와 함께 선진민주대연합을 이루도록 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장외에 나와서도 즉석에서 “29일 광주시민들이 최후의 심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바닥에서 반응이 일고 있는 것 같다”(이호웅)
“‘4연전’ 쏠림현상의 방향은 일단 바꿨다.”(우상호)
“해볼 만하다. 박빙으로 가고 있다”(조정식)
“내일 하루 남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송영길)


손학규 캠프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의원들은 일제히 이날 광주로 내려와 후보를 수행했다. 하지만 확신에 찬 낙관은 아니었다. 정동영의 상승세에 ‘일단 멈춤’의 효과는 냈지만 바람이 일고 있다고 판단할 순 없는 상황이다. 광주 지역신문사의 한 기자는 “일단 바닥 표심을 깨우는 효과는 냈다”고 평가했다.  

'칩거', 바닥 표심 깨우는데는 성공... 바람 몰이는 두고봐야

 21일 이틀간의 칩거와 잠행을 마친 손학규 후보는 '선대본 해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후 첫 행보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광주정신을 계승해 돈선거 부정선거를 물리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구묘역을 먼저 참배했다. 묵념을 하고 있는 손학규 후보 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습니다'라는 한 사회단체의 플래카드 내용이 손 후보와 오버랩 돼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21일 이틀간의 칩거와 잠행을 마친 손학규 후보는 '선대본 해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후 첫 행보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광주정신을 계승해 돈선거 부정선거를 물리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구묘역을 먼저 참배했다. 묵념을 하고 있는 손학규 후보 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습니다'라는 한 사회단체의 플래카드 내용이 손 후보와 오버랩 돼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강성관

손학규의 칩거가 가져온 정치적 효과는 여기까지다. 리더십에 치명적인 흠집을 남기는 자충수가 되기도 했다.

광주역에서 만난 양해만씨(53·건설업)는 "툭하면 칩거인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청와대 문 걸어 잠그고 안 나올 건가. 초등학생이나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역에서 2년째 스낵바를 운영하고 있는 김기열씨(49). 그는 추석 전날 손학규 후보가 광주역에서 귀향객들을 상대로 이른바 '민생 투어'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복잡한 통로를 막아가면서 사진기자들 앞에 놓고 아이와 사진 찍고 그러는 게 큰 정치인가"라고 힐난했다.

손학규 캠프에서도 자인하는 바다.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호웅 전 의원은 "그 점이 나도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칩거가) 없었다면 정치의식 높은 광주에서 (4연전 패배를) 확실히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광주 북구 동림동에서 왔다는 정성업씨(65)는 "사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광주는 소외되었다. 속고 또 속아왔다. 이번에 또 속을지 몰라도 (손학규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연설회장 밖, 조용히 웅성이고 있는 20여명의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버사랑'이라는 봉사단체의 어머니들이다. 손학규를 지지해서 왔단다. 고점례씨(56)는 "저쪽(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면 안 되는데 손학규는 경기도 출신이니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지 않겠냐"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서울 가 있는 자식들이 푸대접을 받을까가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 어머니들이 정당에 가입하고 지지활동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크다"고 덧붙였다.

'다음 단계' 기다리는 광주

광주의 거리는 조용했다. 전 같았으면 연설회장으로 마음과 발걸음이 쏠렸을 터. 경선관리를 맡고 있는 최성 의원은 "사실은 광주가 더 난리가 나야지"라며 이날 연설회장 분위기에 대해 "각 캠프가 동원한 규격화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각 후보가 던지는 메시지가 과거에 갇혀 있다"며 "전국으로 확산될만한 내용이 제시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선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회자됐다. 택시기사 차아무개씨(34)는 "(신당 후보 중에는) 여문 사람이 없다. 전부 어리버리하다"며 "도둑질을 하든 말든 밥을 먹여주진 않겠나"라며 이명박을 지지할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택시기사 신아무개씨(49)도 마찬가지였다.

"광주가 지금쯤 되면 입만 벌리면 정치 얘기가 나오고 두세 명이 모이면 열변을 토하게 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 신당에 대해선 얘기가 안 나온다. 지금 심정으로는 솔직히 욕을 먹더라도 이명박을 찍고 싶다."

이명박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 후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신씨는 여운을 남겼다.

"전라도는 들어가 봐야 알지. 나중에 그 안(투표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랑가 몰라…. 짠헝께…."

광주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풍'(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였다. 울산에서 1등한 노무현을 다시 1등으로 만들어주며 전국으로 노풍을 확산시켰다. 4~5%대의 노무현이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40~50%대로 껑충 뛰어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2007년 경선에선 그럴 것 같지 않다. 이들은 누구의 대세론도 만들어줄 것 같지 않다. 누구도 '광주'를 사유(私有)할 수 없는 선택의 유보. 아무래도 체면치레 수준으로 후보 3인에게 3분할이 될 것 같다.

광주에는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끝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후보단일화 과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때마침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입에서도 문국현씨의 이름이 처음으로 거론됐다. 방미 중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흘러가는 양상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신당의 후보와 민주당, 문국현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누구에게도 힘을 실어주진 않았다.

DJ가 광주 민심을 따르는 것인지, 광주가 DJ를 따르는 것인지 몰라도, 그 둘은 정확히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손학규 #칩거 #광주경선 #이해찬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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