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 좌파(左派)

스무 살 무렵부터 나는 좌파

하지만 언제나 오른손이 먼저 나가는

오른손잡이 좌파

젓가락질을 처음 배울 때

오른손에만 젓가락을 쥐어준 할머니 탓이라고

훗날 편하게 살아가려면

오른손잡이 세상에 맞춰야 한다고 가르친 학교 탓이라고

남 핑계 대는 변명은 하지 않겠다

그 흔한 가투(街鬪) 한번 나가본 적 없고

남들 다 가는 농활(農活)도 빠졌고

주말에만 잠깐 하는 야학(夜學)도

이런저런 이유 달고 꽁무니를 뺐으니

그래도 총선(總選)과 대선(大選) 때에는

보수도 어설픈 좌파도 모두 안 된다며

민주노총 후보 찍고

양김씨 모두 제쳐 놓고

백기완, 권영길 찍었었는데

한번도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 되지 못한 걸 보면

나처럼 오른손으로 찍은 사람이 많았나 봐

좌파라고는 해도 오른손잡이 좌파가 더 많았던가 봐

내 왼쪽 어금니 아래 하숙하는 풍치처럼

내 왼쪽 발바닥 굳은살 아래 세 들어 사는 티눈처럼

겨우 왼쪽에 빌붙어 사는 삶이

속으로 골병 들까 두려워서

지난 세월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좌파가 당당하다는

먼 남쪽 섬나라로 떠나왔더니

비로소 고국에도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민주노동당도 국회에 진출하더군

하지만 오른팔을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왼팔처럼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영 신통치 않고

오히려 못 살겠다 원성 높은 걸 보면

그들도 오른손잡이 좌파인가 봐

왼손으로 악수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왼손이 없어

늘 오른손을 내밀어야 하는

오른손잡이 좌파

<시작 노트>

좌파는 악수할 때 어느 손을 내미나?

나는 오른손잡이 좌파여서 늘 오른손을 내밀었지.

오른손을 내밀어 우파의 오른손을 잡고 악수를 했지.

왼손을 내밀어 왼손을 잡고 악수하고 싶었지만

받아주는 왼손이 없어서 오른손을 내밀었지.

그러다보니 좌파이지만 갈수록 오른손잡이가 되어갔지.

아, 왼손은 왼손을 잡고 악수하고 싶고

좌파는 왼손을 내밀어 우파의 왼손을 잡고 싶지만

왼손들은 각자의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나오지를 않는구나.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도가 혹시 이런 형국은 아닐까?

기대를 모았던 노무현 정권이 이토록 욕을 얻어먹고 있는 것도

혹시 이렇게 좌파의 어려운 입지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좌파든 우파든 가리지 않고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내밀어 두 손을 함께 붙잡는 것.

두 손을 함께 포개어 뜨겁게 악수하는 것.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이게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