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범죄로 이끄는 욕망은 무엇일까

[불멸의 탐정들 24] 아치볼드 맥널리

등록 2008.02.28 11:22수정 2008.02.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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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맥널리의 비밀> <맥널리의 행운> 맥널리 시리즈 1, 2편

<맥널리의 비밀> <맥널리의 행운> 맥널리 시리즈 1, 2편 ⓒ 김준희

▲ <맥널리의 비밀> <맥널리의 행운> 맥널리 시리즈 1, 2편 ⓒ 김준희

미국의 추리작가 로렌스 샌더스가 창조한 또 한 명의 명탐정은 바로 아치볼드 맥널리다. 로렌스 샌더스는 <대죄 시리즈>를 통해서 완고하고 강직한 형사 에드워드 델러니를 만들어낸 경력이 있다. 델러니가 데뷔하고 20여 년이 지난 1992년, 로렌스 샌더스는 <맥널리의 비밀>을 통해서 맥널리를 처음으로 등장시킨다.

 

이 맥널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델러니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우선 사는 곳부터가 다르다. 델러니가 사는 곳은 온갖 흉악한 범죄가 판을 치는 뉴욕의 한복판이었다. 맥널리가 사는 곳은 낭만적인 플로리다의 팜 비치 해변이다. 집 밖을 나서면 대서양을 볼 수 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델러니가 보수적이고 원칙에 충실한 형사였던 반면에, 맥널리는 유쾌하면서 진지하지 못한 젊은이다. 맥널리 스스로도 자신을 가리켜서 진지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진지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해서조차도 진지하지 않다. 맥널리는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 중반의 노총각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법률회사 <맥널리 앤드 선(McNally & Son)>에서 조사부장으로 근무하는 친구다.

 

이 조사부에는 오직 직원이 맥널리 혼자다. 그러니까 맥널리 혼자서 부장 겸 사원 겸 사환까지 다 해먹고 있는 셈이다. 맥널리는 예일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진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뉴욕 필하모니가 공연하고 있을 때 벌거벗은 채 리처드 닉슨 마스크만 쓰고 무대에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쫓겨나자 맥널리는 다시 그의 고향인 팜 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맥널리를 위해 '조사부'를 신설하고 그에게 그 부서를 떠맡긴 것이다. 맥널리가 있는 법률회사는 꽤 크고 팜 비치 일대에서 잘 알려진 회사다. 부자 고객들도 많고 새로 고객이 되려고 하는 부자들도 상당수다.

 

아버지의 법률회사에서 근무하는 맥널리

 

맥널리는 키가 크고 늘씬한 외모에 매력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애인이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결혼에 따르는 필연적인 구속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맥널리 부모의 집은 대서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변가의 3층짜리 단독주택이다.

 

맥널리는 이 주택 3층에 있는 침실과 욕실, 거실을 혼자 사용한다. 회사에서 자신을 간섭하는 특별한 상사도 없기 때문에 거의 매일 늦잠을 즐긴다. 오후에는 대서양에 뛰어들어서 매일 3.2km 정도 수영을 한다.

 

엄격한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와 함께 저녁마다 칵테일 시간을 갖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고 포커를 친다. 잘나가는 법률회사 사장의 외아들이기 때문에 돈 걱정도 별로 없다. 집에는 요리사와 하인이 있어서 매일 색다르고 맛좋은 음식을 먹는다. 이 정도면 정말 즐거운 인생을 사는 노총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팜 비치 해변은 언뜻 보기에 무척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는 인간들의 더러운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아치볼드 맥널리가 법률회사에서 하는 활동은 여러가지다. 조사부에 속해 있는 만큼, 고객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조사를 맥널리에게 의뢰한다.

 

도난당한 물건을 찾아달라고 하는가 하면, 외지에서 온 낯선 인물의 뒷조사를 맡기기도 한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이런 일의 뒷면에는 언제나 추악한 인간들이 있다. 맥널리의 조사는 곧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변하고 그는 그 살인사건의 한복판에서 경찰을 도와서 수사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맥널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수사과정에서 다양한 인간들과 마주친다. 재미로 물건을 훔치는 백만장자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고 잔인한 범죄에 가담하는 아들도 있다. 바람난 부모 밑에서 버림받는 어린아이가 있고, 부유한 남자에게 한밑천 뜯어내기 위해서 신분을 위장하고 접근하는 매춘부도 있다.

 

맥널리는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맥널리의 표현에 의하면, 이 세상은 돌봐줄 의사 하나 없는 거대한 정신병원이나 마찬가지다. 맥널리가 결혼하지 않고 노총각으로 버티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맥널리를 돕는 두 친구, 코니와 앨

 

a <맥널리의 모험> <맥널리의 덫> 맥널리 시리즈 3, 4편

<맥널리의 모험> <맥널리의 덫> 맥널리 시리즈 3, 4편 ⓒ 김준희

▲ <맥널리의 모험> <맥널리의 덫> 맥널리 시리즈 3, 4편 ⓒ 김준희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지만, 맥널리에게도 애인은 있다. 백만장자 밑에서 개인 비서로 있는 콘수엘라 가르시아가 바로 그 애인이다. 맥널리는 그녀를 '코니'라고 부른다. 애인이 있지만 맥널리도 꾸준히 바람을 피운다. 그때마다 코니에게 죄책감을 갖고 미안해 하면서도 그의 바람기는 잠들 기미가 없다.

 

코니의 성격도 만만치 않다. 코니가 혼자 밥먹고 있는 식당에 맥널리가 다른 여자와 함께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코니는 절대 조용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먹던 국수를 통째로 맥널리의 머리에 쏟아붓기도 한다. 맥널리의 허리띠를 풀고서 접시에 남아 있는 음식을 모조리 바지 속으로 쏟아넣은 적도 있다.

 

맥널리는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코니와 싸우거나 헤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피우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코니에게 돌아간다. 그것은 코니가 가지고 있는 당당하고 밝은 매력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코니는 대단한 정보통이기도 하다. 맥널리가 어떤 인물에 관한 조사를 시작할 때면 항상 코니에게 묻는다. 그때마다 코니는 자신의 주변에서 떠도는 소문을 모아서 맥널리에게 알려준다.

 

맥널리를 돕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팜 비치 경찰서에 근무하는 앨 로고프 경사다. 앨은 맥널리의 친구이면서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이 두 명은 힘을 합쳐서 함께 사건을 풀어간다. 앨은 경찰의 권력과 조직력을 이용하고, 맥널리는 경찰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정보를 얻어낸다. 팜 비치 해변을 흔들어놓는 잔인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맥널리와 코니, 앨은 서로 역할을 나누어서 사건을 풀어가는 것이다.

 

그 사건의 뒤에는 항상 금전에 대한 인간들의 추한 탐욕이 있다.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것이 돈이라고 하던가? 맥널리가 상대하는 인간들도 돈 욕심 때문에 온갖 음모를 꾸민다. 결국에는 발각될 것이 뻔한 음모인데도 이들은 어리석은 열정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맥널리와 그 주변의 친구들은 가볍고 유쾌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인간들의 내면은 어둡고 추악하다. 맥널리는 그런 인간들의 모습을 씻어내려고 매일 대서양에 뛰어들어 수영했을 것이다.

 

금전을 노리는 인간들의 어두운 욕망

 

아치볼드 맥널리를 창조한 작가 로렌스 샌더스는 '미스터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로렌스 샌더스가 태어난 해가 1920년이니까, <맥널리 시리즈>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세가 넘어 있었다. <맥널리의 덫>을 발표한 것은 1994년이고, 로렌스 샌더스가 사망한 것은 1998년이다.

 

그러니까 아치볼드 맥널리는 작가가 만들어낸 마지막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작가의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로렌스 샌더스도 여유 있게 세상을 돌아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맥널리라는 젊고 유머러스한 인물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닐까?

 

맥널리에게도 완고한 면은 있다. 그것은 범죄를 바라보는 그의 자세다. 범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증거가 없어서 기소할 수 없고, 체포해도 곧 풀려나는 범죄자들이 있다. 맥널리는 절대로 그들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찾아가서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어야 맥널리의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간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이런 맥널리를 달래주는 것은 그의 친구 앨 경사, 그리고 맥널리의 아버지다. 앨은 맥널리에게 '자네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야'라고 말한다. 선인은 상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세상이 꼭 그렇게 굴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타협을 통해서 절반의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앨 경사는 절반의 승리에 어느 정도 만족하지만, 맥널리는 항상 절반의 패배 때문에 마음 아파한다. 오랫동안 경찰 생활을 해온 앨에게는 이렇게 타협점을 찾는 것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그리고 오랜 인생을 살아온 맥널리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악한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은 맥널리의 아버지에게도 혐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힘만으로 세상을 바로잡지는 못할 것이다. 맥널리가 '그럼 정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그의 아버지는 '정의는 희망이지 확신은 아니란다'라고 대답한다. 맥널리의 표현처럼 미쳐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정답일지 모른다.

2008.02.28 11:22ⓒ 2008 OhmyNews
#추리소설 #탐정 #로렌스 샌더스 #아치볼드 맥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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