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도 못 치르고 죽다니... 아들아 미안하다"

[인터뷰] '훈련' 받다 사망한 용인대 신입생 고 강장호군 어머니

등록 2008.03.20 13:09수정 2008.03.2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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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누가 이 젊은이를 사지로 몰았나 동수원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고 강장호군의 영정사진이 있다.

누가 이 젊은이를 사지로 몰았나 동수원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고 강장호군의 영정사진이 있다. ⓒ 이호영


"갈수록 우리 아들이 보고 싶어요. 정말 편안하게 마무리 못해줘서 미안해요. 이번 일 끝나면 집에 가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두려워요. 우리 애 놔두고 가기가…."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동수원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미숙(43)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벌써 보름 가까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희비 엇갈렸던 2박3일

박씨의 둘째아들인 강장호(18)군은 2월 12일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동양무예학과 합격 통지를 받았다. 추가 합격자여서 가족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박씨는 아들의 합격 사실을 확인한 당시 "기쁨도 기쁨이지만 좋은 대학에 보내니까 학비와 생활비 걱정이 우선이었다"고 떠올렸다. 첫째아들 강준호(20)군이 이미 대학에 다니는 중이어서 앞으로 부담해야 할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강군 아버지 강고현(50)씨는 우리들이 늘 볼 수 있는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다. 요즘 서민들이 자식 두 명을 대학에 보내면 얼마나 많은 부담이 가는지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터.


a 자식 잃은 마음 고 강장호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아들이 생전 가지고 다니던 휴대폰을 소지하고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식 잃은 마음 고 강장호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아들이 생전 가지고 다니던 휴대폰을 소지하고 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 이호영


합격이 발표된 즉시 강군 가족들은 전주에서 용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3일 아침 강군 부모는 등록금을 납부하고 강군이 거처할 방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군은 신입생 훈련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 간 상태였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강군의 몸 상태는 예사롭지 않았다. 강군은 어머니 박씨에게 다리를 절면서 "왼쪽 엄지발톱이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박씨는 당시 애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일단 쉬게 했다고 회상했다. 엉덩이에는 방망이로 맞은 자국이 선명했다.


그러나 강군은 14일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또 학교에 나섰다. 생활용품과 반찬을 챙기던 강군 부모가 학교에서 연락을 받은 시각은 오후 4시 15분 무렵. 수화기에는 "장호가 후방 낙법을 하다가 다쳤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내용이 전해졌다.

뇌가 터지고, 상처가 붓고, 싸늘한 시신이 되기까지

박씨는 "머리에 피가 고여 호흡이 안 된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들었을 때 부모로서 너무도 절박하고 걱정돼 "피말리는 시간"을 보냈었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현장에서 본 강군의 상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눈이 돌아가고, 혀가 말리고, 떨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강군을 접했던 어머니 박씨의 증언이 그 심각성을 대변해준다. 머지않아 강군은 뇌출혈로 인한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3일의 짧은 시간이 강군 가족에게 희비를 동시에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희(喜)보다 비(悲)가 훨씬 컸지만.

강군과 강군 부모에게는 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강군은 일시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벗어낼 만큼 회복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무엇보다 이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어머니 박미숙씨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장호가) 뇌가 부어올라터지고 상처가 붓고도 또 터졌어요. 그래서 머리에 망을 씌워놨고요. 정말 이렇게 고통스럽게 있는 걸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어떻게 죽는 날까지…."

가족들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군은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의식 자체도 불분명해져 갔다. 급기야 3월 들어서는 사경을 헤맸다. 결국 쓰러진 지 보름여만인 3월 4일 오전 11시 30분. 강군은 싸늘한 주검으로 부모 앞에 나타났다. 강군의 회복을 간절히 바랐던 가족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비극도 없었다. 박씨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했던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고 말했다.

사망 보름째, 왜 장례식장에서?

a 누구의 잘못일까 유족들은 고 강장호군이 생전 병원에서 치료중일 때 사진을 모아 항의 피켓을 만들었다. 강군 빈소에는 이 피켓이 정면에 자리잡고 있다.

누구의 잘못일까 유족들은 고 강장호군이 생전 병원에서 치료중일 때 사진을 모아 항의 피켓을 만들었다. 강군 빈소에는 이 피켓이 정면에 자리잡고 있다. ⓒ 이호영



a 학교측 사과문 강군 사망 이후 용인대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띄웠다.

학교측 사과문 강군 사망 이후 용인대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띄웠다. ⓒ 이호영


강군이 고인이 된 지 보름이 다 되감에도 불구 가족들은 여전히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경찰 조사에 의해 강군의 사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강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사인 규명도 규명이지만 학교 측의 은폐와 축소가 유족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학교를 대표하는 총장의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총장님이 오셔서 유족들을 만나 사과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학교 사람들이 '원래 총장님은 그런 것 안 한다'고 말했어요. 빈소에 들른 학교 사람들도 웃고 마시고 놀고…. 오죽하면 제가 학과 교수님들을 쫓아내기까지 했겠어요. 윗분들도 그렇지. 잘못했으니 주의를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 거기만 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용인대는 강장호군이 사망한 다음날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총장 사과문을 게재했다. 지역 신문에도 이번 일과 관련한 사과문을 싣기도 했다.

이를 두고 박씨는 "학교가 진심으로 책임을 질 요량이라면 총장님이 직접 빈소에 찾아와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자꾸 '죄송하다'고만 하는데 학교 측이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의혹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18일 용인대의 한 관계자는 필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무성의한 사과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학교 측이 이번 일로 크게 반성하고 있고 유족 측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문제가 없도록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되풀이되는 신입생 가혹행위

지난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보도에 의하면 용인대 체육대학에서는 지난해에도 뇌출혈을 일으킨 신입생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강장호군의 사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용인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18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부검 결과를 확인했다"며 "조만간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강군의 사인이 단순한 '후방 낙법으로 인한 후유증'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학교 측이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단 입학식을 치르지 않은 강장호군이 교내에서 사전 훈련을 통해 사고를 당했으며 사고 발생 전날 학과 선배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점이 <PD수첩> 보도를 통해 사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교 측의 관리·감독 소홀을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장호가 얼마나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애였는지 몰라요"라며 "연휴 때도 도장 열쇠를 받아 하루만 쉬고 운동에 전념했어요"라고 말했다. 박씨의 말에 의하면 일반인보다 훨씬 건강한 운동선수였던 강군이 정상적인 낙법 훈련을 통해 식물인간, 사망까지 이를 가능성은 낮다는 것.

<PD수첩>에서도 유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낙법을 수년간 해왔던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착지 때 고개를 들게 되어있다"며 "정상적인 훈련 도중 뇌출혈을 일으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강군이 전날 가혹행위를 당해 하체가 불완전한 상태여서 정상적인 낙법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씨는 "부모로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절대로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면서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져서 다음에는 이런 일이 절대 없어졌으면 해요"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일로 '너무 열심히 살아도 정말 억울할 때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며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가르치면 된다고 살아왔는데 아들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네요"라고 탄식했다.

a 어머니의 일기 강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아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기록했다.

어머니의 일기 강군 어머니 박미숙씨는 아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며 기록했다. ⓒ 이호영

덧붙이는 글 | 스포츠 관련 제보나 인터뷰 신청 받습니다.
http://aprealist.tistory.com
toberealist@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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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장호 #용인대학교 #박미숙 #강고현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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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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