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6·25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6·25 한국전쟁 특집 1] 김경현 지음 <민중과 전쟁 기억>

등록 2008.06.22 12:01수정 2008.06.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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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포화에 좇기는 피란민 한 가족(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좇기는 피란민 한 가족(1950. 7. 29. 경북 영덕). ⓒ NARA


현대사에 가장 큰 비극, 한국전쟁
a  <민중과 전쟁기억> 표지

<민중과 전쟁기억> 표지 ⓒ 선인

우리나라 현대사 가운데 가장 큰 비극은 6·25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까지도 휴전 중이기 때문이다.

3년 1개월간 계속된 이 전쟁은 우리 겨레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 주었다. 수많은 사람(피아 약 500여 만명)들이 죽거나 다치고,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 대부분 산업 시설이 파괴되었다. 이와 동시에 남한과 북한 간에는 적대적 감정이 더 커지고 한반도는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그로부터 58년이 지났다. 그새 총소리는 멎었으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155마일 휴전선에서는 이 순간도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다. 그토록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도 여태 남북간에는 체제 논쟁이나 백성들간 색깔논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휴전선은 국토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 속에도 도사리고 있다. 국내에 사는 겨레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조차 분단의 선은 그어져 있다. 이 마음 속 분단의 선은 국토를 자른 휴전선보다 더 무섭다. 한쪽에서는 촛불을 켜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가스불로 이에 맞불을 지르고 있다.

a  기총소사에 목숨을 잃은 피란민이 들길에 쓰러져 있다(1950. 8. 25.).

기총소사에 목숨을 잃은 피란민이 들길에 쓰러져 있다(1950. 8. 25.). ⓒ NARA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꾸짖었다.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남한은 북한을 소련·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놀음이었다."
"전쟁이 지나간 후 서로 이겼노라 했다. 형제 싸움에서 서로 이겼노라니 정말은 진 것 아닌가?"


나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여섯 살 난 소년으로, 피란길에 할아버지는 "네가 어른이 될 때는 남북통일이 되어 군에 가지 않아도 될 꺼다"라고 말씀하신 걸 들었다. 하지만 내가 군에 다녀온 지 40년이 가까워 오고, 그때의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지만 나라의 앞날(조국통일)은 그제나 이제나 별반 다름이 없이 아득하기만 하다.

a  수로에 엎드려 죽은 인민군 병사(1950. 7. 29. 경북 영덕)

수로에 엎드려 죽은 인민군 병사(1950. 7. 29. 경북 영덕) ⓒ NARA


한국전쟁 중의 진주


이즈음 나는 1950년 6·25 한국전쟁 기간 중에 경남 진주시 민중들의 생존 이야기를 쓴 김경현 지음 <민중과 전쟁 기억 -1950년 진주>라는 책을 소름끼치도록 뼈저린 아픔 속에,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은 제1부 전쟁과 지역사회, 제2부 전쟁발발과 전선도시가 된 진주, 제3부 인민군 점령기간 진주의 전시생활, 제4부 인민군 퇴각 후 빨치산 투쟁과 부역자 처벌, 제5부 복구와 전쟁기억 등으로 엮었다. 학살과 폭격, 부역자 처벌 편에서는 '소름끼치도록 뼈저린 아픔 속에' 읽었고, 지은이가 숱한 문헌을 통해 6·25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라는 공간을 그대로 재현시켜 놓은 점은 대단히 감명 깊었다.

a  진주 부근에서 유엔군이 민간인을 부역 혐의로 연행하고 있다(1950. 7. 29.).

진주 부근에서 유엔군이 민간인을 부역 혐의로 연행하고 있다(1950. 7. 29.). ⓒ NARA


전쟁을 이유로 적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자의적 판단 아래 비무장 민간인들을 무차별하게 대량 학살로 몰아간 행위는 결과적으로 진주시민들에게 충격과 공포와 원한을 심어주었다. 보도연맹원 학살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가학성을 극단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도대체 인간의 집단적인 광기가 어디까지 올 수 있는가를 반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인민군 점령기간 동안 우익세력에 대한 좌익의 보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 제2부 전쟁발발과 전선도시가 된 진주 95쪽

a  진주시 인민위원회가 빨치산 지원을 호소하는 선전 전단.

진주시 인민위원회가 빨치산 지원을 호소하는 선전 전단. ⓒ NARA


인민군은 어린 학생들에게 호기심과 신기함의 대상이 되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민군 병사가 교과서를 찢어 말아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당시 국민(초등)학생이던 제정구가 울상이 되어 "아저씨, 그거 내 교과서인데…"라고 입을 열자, 그 인민군은 "임마,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이런 교과서는 안 배워도 돼"라고 하면서 계속 담배를 피웠다. - 제3부 인민군 점령기간 진주의 전시생활 205쪽

어처구니없게도 2개월 전 시민들을 버리고 떠났던 군경이 오히려 자신들을 환영 나온 시민들까지 서슬이 시퍼렇게 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가리지 않고 진주에 남아있던 시민들을 모두 부역자 혐의로 간주하고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경찰서로 끌고 왔다. - 제4부 인민군 퇴각 후 빨치산 투쟁과 부역자 처벌 375쪽

사실 인민군 점령지역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길거리도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전선도시 진주지역에서의 폭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시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불바다를 이룬 시가지를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특히 시가지를 가로지른 유일한 교량이었던 진주교가 폭격당할 때마다 끊어진 교각을 다시 잊는 작업은 시민들의 목숨을 건 부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진주시민의 6·25 전쟁에 대한 기억은 폭격·학살·동원·약탈 등으로 점철된 아픈 상처였다. - 제5부 복구와 전쟁기억 456쪽

전쟁을 치른 민중들의 삶은 한반도 어디서나 비슷했다. 전쟁을 체험한 세대는 이 책을 통해 다시 그날의 참상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며, 전후 세대는 한국전쟁의 실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a  한 소년이 시레이션(전투비상식량)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다(12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시레이션(전투비상식량)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다(12950. 9. 30. 진주). ⓒ NARA


a  총구 앞에서는 사람도 짐승이 된다. 수풀에서 기어나와 투항하는 인민군 병사(1951. 9. 20.).

총구 앞에서는 사람도 짐승이 된다. 수풀에서 기어나와 투항하는 인민군 병사(1951. 9. 20.). ⓒ NARA


a  학살 현장(1950. 9. 29. 전주)

학살 현장(1950. 9. 29. 전주) ⓒ NARA


a  학살 현장에서 아버지가 자식의 시신을 찾고 있다(1950. 11. 14. 함흥 덕산).

학살 현장에서 아버지가 자식의 시신을 찾고 있다(1950. 11. 14. 함흥 덕산). ⓒ NARA

덧붙이는 글 | 여기 실린 사진은 눈빛출판사의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 3>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6 ‧ 25 한국전쟁 특집 기사는 2회까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여기 실린 사진은 눈빛출판사의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2, 3>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6 ‧ 25 한국전쟁 특집 기사는 2회까지 이어집니다.)

민중과 전쟁기억 - 1950년 진주

김경현 지음,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2007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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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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