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지 뒤지는 하루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한 편의 시와 에세이> 2008 대한민국, '백수'+'반백수'=317만1천명

등록 2008.12.22 15:18수정 2008.12.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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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살자', 두 글자 라면 면발로 불어터지는 연말연시
라면'살자', 두 글자 라면 면발로 불어터지는 연말연시 이종찬
▲ 라면 '살자', 두 글자 라면 면발로 불어터지는 연말연시 ⓒ 이종찬

하루가 퉁퉁 불어터졌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에서 꼬들꼬들 익어가는 라면에 찬밥 한 덩이 미련 없이 던져 넣는 어머니. 푹푹 개죽처럼 끓어 가난이 쟁반 위로 오르면 우리들의 그 절제된 여인은 오목한 국자로 침묵을 퍼올렸다. '살자'는 두 글자가 길게 올랐다가 그릇에 담겨졌다. 주둥이를 내밀고 당겨 앉아 도대체 얼만큼 살아야 제대로 된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 권선희, '라면' 모두

 

정보지 뒤지는 하루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촌이 금융위기를 맞아 그 어느 해보다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서럽고 아프게 가슴을 후벼 파는 12월입니다. 마주치는 사람들 얼굴 표정도 마네킹처럼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합니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가난한 서민들 삶은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조심 내딛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합니다. 아차,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그대로 살얼음판이 깨져, 내 가정과 내 가족을 지키려는 자그마한 꿈조차 송두리째 깨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가다가는 개인파산은 물론 가정파탄 등 우리 사회 모두가 파탄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난해보다 16만7천 명이나 늘어 317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백수' 혹은 '반백수'라 낙인찍힌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이들 하루하루는 더욱 춥고 배고프기만 합니다.

 

지난 10월, 사용주가 내놓은 월급 강제 삭감에 반발해 회사를 그만 둔 노아무개(45)씨는 "일자리를 잃고도 아내에게 말을 하지 못해 지금까지 퇴직금을 쪼개 집에 보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노씨는 "출근한다며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오면 갈 곳이 없어 공원이나 지하철 의자에 앉아 정보지를 뒤적이며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IMF 때 사업에 실패한 뒤, 한동안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공사판을 떠돌며 겨우 생계를 이어왔다는 박아무개(49)씨는 "지난 3월부터 택배회사 배달 일을 하고 있지만 나이 때문에 젊은 애들한테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 좌판 행상을 하려 해도 마땅한 자리가 없다"라며 한숨을 포옥 내쉽니다. 

 

2008 대한민국, '백수'+'반백수'=317만1천명 '백수' 혹은 '반백수'라 낙인찍힌 사람들
2008 대한민국, '백수'+'반백수'=317만1천명'백수' 혹은 '반백수'라 낙인찍힌 사람들 이종찬
▲ 2008 대한민국, '백수'+'반백수'=317만1천명 '백수' 혹은 '반백수'라 낙인찍힌 사람들 ⓒ 이종찬

11월 말 현재 신규 일자리 수는 7만8천 명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돌입하면서 고용 한파는 내년에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11월 말 현재 신규 일자리 수는 7만8천 명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돌입하면서 고용 한파는 내년에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종찬
▲ 11월 말 현재 신규 일자리 수는 7만8천 명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돌입하면서 고용 한파는 내년에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 이종찬

2009 기업 고용 인원, 올해보다 10만 명 줄어든 4만 명

 

"11월 말 현재 신규 일자리 수는 7만8천 명에 불과해 필요한 일자리의 4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경기 침체에 돌입하면서 고용 한파는 내년에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도 실업률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6%를 돌파, 금융위기 발 실업 공포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4일(일) 밝힌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1월 통계상으로 나온 공식 실업자 수는 75만 명입니다.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교해보면 실업자가 1만7천명(2.3%)이 더 늘어난 수치이며, 이 또한 적극적으로 취업을 할 뜻을  밝힌 사람만 집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자료에 나와 있는 실업자는 공식 실업자를 포함해 구직 단념자 12만5천 명, 취업준비자 55만2천 명, 그냥 쉬는 사람 132만7천 명(275만4천 명)입니다. 여기에 11월 기준 36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취업 희망자 41만7천 명을 더하면 모두 317만1천 명이나 됩니다. 이는 지난 해 11월 실업자 수 300만4천명에 비해 16만7천명 늘어난 수치입니다.

 

한국은행도 "내년 취업자 수는 소비부진 심화, 수출증가세 둔화, 기업의 인력운용 보수화 등의 영향으로 올해 14만 명보다 10만 명 줄어든 4만 명 내외에 그치고 실업률은 3.2%에서 3.4%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3.6%), 삼성경제연구소(3.5%), LG경제연구원(3.4%) 등도 "내년 실업률이 0.3∼0.4% 가량 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가지지 못한 쪽에서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취직을 하지 못해 발버둥을 치고 있고, 가진 쪽에서는 다음 해에는 올해보다 더욱 소비가 줄어들고 수출이 줄어들 것이라 호들갑을 떨며 반드시 고용해야 할 인원을 깡그리 줄이고 있습니다. 대체 이 나라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실업자, 지난 해보다 16만7천명 늘어 금융위기 발 실업 공포 전 세계적으로 확산
실업자, 지난 해보다 16만7천명 늘어금융위기 발 실업 공포 전 세계적으로 확산 이종찬
▲ 실업자, 지난 해보다 16만7천명 늘어 금융위기 발 실업 공포 전 세계적으로 확산 ⓒ 이종찬

백수와 반백수들이여 '2009 취업 촛불' 하나 밝힙시다
백수와 반백수들이여'2009 취업 촛불' 하나 밝힙시다 이종찬
▲ 백수와 반백수들이여 '2009 취업 촛불' 하나 밝힙시다 ⓒ 이종찬

라면에 찬밥 한 덩이 미련 없이 던져 넣는 어머니 

 

지금 오랜 실직에 지친 '백수'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반 실직이나 다름없는 '반백수'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 힘겹고 서글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쫄쫄 굶고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들은 달랑거리는 돈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퉁퉁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면서도 취직이란 끈을 절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왕따' 당한 백수와 반백수들은 아무리 힘겨워도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에서 꼬들꼬들 익어가는 라면에 찬밥 한 덩이 미련 없이 던져 넣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삶에 대한 의지를 활활 불태웁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려울 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라면과 찬밥 한 덩이로 가르쳐 주시는 어머니가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라면이 찬밥과 함께 "푹푹 개죽처럼 끓어"도, "가난이 쟁반 위"로 올라도, "우리들의 그 절제된 여인"인 어머니가 "오목한 국자로 침묵"을 퍼 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꿉니다. 어쨌든 이 모진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취직을 할 수 있고, 어머니와 가족들 고생길도 끝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북 포항에서 살고 있는 권선희(43) 시인은 '라면'이라는 시에서 찬밥 한 덩이와 함께 푹푹 끓다가 칼국수 가락처럼 불어 터진 라면을 바라보며 어머니 모진 삶을 떠올립니다. 어머니께서 살아온 삶은 꼭 두 글자 '살자'였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살자'라는 두 글씨처럼 퉁퉁 불어터진 라면을 "주둥이를 내밀고 당겨 앉아" 먹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백수와 반백수들은 "도대체 얼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제대로 된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요. 이들이 주어진 직장에 다니며 스스로 능력을 맘껏 뽐내고, 그에 대한 임금을 맘껏 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쯤 올까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서로 기대며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까요.

 

'살자', 두 글자 라면 면발로 불어터지는 연말연시, 백수와 반백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백수이자 반백수입니다. 저도 쌀이 떨어져 갈 때면 라면을 끓여 찬 밥 한 덩이 말아먹으며 반듯한 직장에 다니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추운 마음과 추운 마음을 서로 부대끼며 백수와 반백수가 없는 세상, 양극화가 없는 그런 세상을 위해 '2009 취업 촛불' 하나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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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2 15:18ⓒ 2008 OhmyNews
#시인 권선희 #라면 #백수 반백수 #실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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