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57)

― ‘생활의 터전’, ‘생활의 안정’, ‘생활의 장소’ 다듬기

등록 2009.02.09 20:31수정 2009.02.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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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됐다

 

.. 농장 대부분을 군대가 주둔해 버려서 졸지에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  《정운현-임종국 평전》(시대의창,2006) 97쪽

 

 “농장 대부분(大部分)”은 “논밭이란 논밭에는”으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주둔(駐屯)해’는 ‘머물러’로 다듬고요. ‘졸지(猝地)에’는 ‘얼결에’나 ‘하루아침에’로 다듬습니다.

 

 ┌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

 │(1)→ 생활할 터전을 잃게 되었다

 │(2)→ 삶터를 잃게 되었다

 │(2)→ 살아갈 터전을 잃게 되었다

 └ …

 

 ‘생활(生活)’을 그대로 두고 싶으면 “생활할 터전”으로 고쳐 봅니다. ‘생활’도 좀더 나은 말로 다듬고 싶다면 “살아갈 터전”으로 고치거나, 단출하게 ‘삶터’라고 적어 봅니다.

 

 자기 말투를 생각하면서 쓰면 됩니다. 남들이 이리 말하건 저리 떠들건 아랑곳하지 말고, 자기 느낌과 생각을 가장 알맞고 살가이 담아낼 수 있는 깨끗한 말을 찾아서 쓰면 됩니다. 그래야 자기 말솜씨가 늘고, 좋은 생각을 두루 나눌 수 있어요.

 

 

ㄴ. 생활의 안정

 

.. 마을 사람들은 파괴된 집을 다시 짓고 농사를 하며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159쪽

 

 ‘파괴(破壞)된’은 ‘무너진’이나 ‘부서진’으로 다듬습니다. “찾기 시작(始作)했다”나 “찾고 있었다”나 “찾게 되었다”로 손봅니다.

 

 ┌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

 │→ 살림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 살림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 살림을 다독이고 있었다

 └ …

 

 “생활이 安定되”려면, 들쑥날쑥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르게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이 벌 때와 덜 벌 때가 벌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많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걱정이 없어야 합니다. 적게 벌거나 얻어도 먹고사는 데에 어려움이 없으면 “생활 안정”입니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넉넉하거나 느긋한 삶일지 모릅니다. 어떤 이는 처음에는 뒤숭숭하다가 제자리를 찾는 삶입니다. 어떤 이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어려움에 허덕이고 또 허덕이기만 하는 삶이며, 이 가운데에는 한참 뒤에야 비로소 다독이게 되는 삶이 있습니다. 배고파 고달프기도 하고, 굶주려 괴롭기도 하다가, 하루하루 나아지는 삶, 먹고살 만한 삶, 걱정이 줄어든 삶, 오순도순 어울리며 살아갈 만한 삶도 있습니다.

 

 ┌ 차츰 먹고살 만하게 되었다

 ├ 조금씩 지낼 만하게 되었다

 ├ 차츰차츰 살 만하게 되었다

 ├ 시나브로 예전 살림살이를 되찾았다

 └ …

 

 우리는 어느 만큼 먹어야 먹고살 만한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배부르려면 밥그릇을 어느 만큼 채여워 하는가 생각해 봅니다.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살림살이라면, 우리 이웃을 한결 더 사랑하거나 포근하게 껴안을 수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굶주리지 않는데다가 조금 넘치게 누릴 수 있는 살림살이라면, 우리 삶터를 한결 아끼고 가꾸면서 우리 넋과 마음결도 더욱 아름답고 싱그럽게 돌볼 수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먹고사는 데에 바쁘지 않으면 말과 글을 살뜰히 추스를지 있는지, 먹고사는 데 바쁘더라도 말과 글을 알뜰히 가다듬을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ㄷ. 생활의 장소

 

.. 그곳 생활은 아이한테는 가끔씩 가는 방학이 아니라 생활의 장소였기 때문에, 좋은 일뿐만 아니라 애증이 뒤섞여 굉장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  《고쿠분 히로코/손성애 옮김-산촌유학》(이후,2008) 227쪽

 

 ‘가끔씩’은 겹말입니다. ‘-씩’을 덜고 ‘가끔’으로만 적어야 올바릅니다. ‘장소(場所)’는 ‘곳’이나 ‘자리’로 다듬고, ‘애증(愛憎)’은 ‘사랑과 미움’이나 ‘그리움과 싫음’으로 다듬으며, ‘굉장(宏壯)히’는 ‘대단히’나 ‘아주 크게’로 다듬어 줍니다.

 

 ┌ 생활의 장소였기 때문에

 │

 │→ 살아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 늘 사는 곳이었기 때문에

 │→ 삶터였기 때문에

 └ …

 

 토씨 ‘-의’만 덜어내고 “생활하는 장소였기 때문”처럼 쓰는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나날이 이런 분들마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기고, 일본말 배우는 사람이 늘며, 일본 나들이 즐기는 분이 느는 가운데, 일본 말투에 물들고 길들면서 우리 말투가 어지러워지는 탓입니다.

 

 일본말을 가르쳐 주는 분 가운데 우리 말을 제대로 익힌 다음 일본말을 가르쳐 주는 분이 드뭅니다. 일본말을 풀이하는 교재나 사전 또한 우리 말을 제대로 익힌 분들이 엮어내지 못합니다. 우리 말은 엉터리이면서 일본말만 잘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납니다.

 

 ― 생활하는 장소 = 사는 곳 = 삶터

 

 말을 말답게 하지 못할 때에는, 생각을 생각답게 못하게 됩니다. 생각을 생각답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을 일답게 하기 어렵습니다. 일을 일답게 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고작 한두 마디일 뿐인 낱말 하나와 말투 하나라고 여기고 싶다면, 그냥저냥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한두 마디일 뿐인 낱말과 말투가 우리 삶을 크게 흔들거나 뒤바꾸는 줄 느끼신다면, 꼼꼼히 살피고 찬찬히 들여다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생각해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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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9 20:31ⓒ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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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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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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