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식약청 "잘못 인정, 국민께 사죄"

화장품·의약품까지 '석면 공포' 확산... '안전불감증'이 원인

등록 2009.04.06 21:02수정 2009.04.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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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식약청은 6일 석면이 사용된 화장품 제조업체와 제품 이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브리핑을 하고 있는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과장.

식약청은 6일 석면이 사용된 화장품 제조업체와 제품 이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브리핑을 하고 있는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과장. ⓒ 최경준

식약청은 6일 석면이 사용된 화장품 제조업체와 제품 이름을 공개했다. 사진은 브리핑을 하고 있는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과장. ⓒ 최경준

식약청은 6일 일부 화장품과 의약품에도 석면이 포함된 원료가 사용됐다며 화장품 업체와 제품 이름을 공개했다. (주)로쎄앙에서 만든 5개 제품이 그것이다. 1급 발암물질로 지정돼 공업용으로도 사용을 금지한 석면이 아기가 쓰는 베이비파우더에 이어 여성 화장품, 의약품에도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의약품의 경우 그 수가 너무 많고, 아직 위해성 여부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약청이 명단 공개 자체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 사이에 '석면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지난해 멜라민 파동에 이어 국민의 먹을거리와 의약품 안전을 책임지는 식약청의 '뒷북 행정'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식약청이 이날 석면이 포함된 화장품 등의 명단을 공개하는 브리핑에 앞서 대국민 사과부터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과장은 굳은 표정으로 "(석면 파동과 관련) 국민 여러분께 우려와 걱정을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탈크 위험' 경고 무시했던 식약청, "잘못 인정"

 

베이비파우더로 촉발된 이번 석면 파동의 경우 식약청이 지난 5년 사이에 '석면 공포'를 차단할 수 있는 수차례의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 하고 있다. 식약청이 지난 1일 베이비파우더에서 발암 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고 발표하면서 "(베이비 파우더의 원료로 쓰인) 탈크의 위험성을 지난달 말에야 알았다"고 발표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우선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04년 김창종 중앙대 약대 교수는 식약청에 '기능성화장품의 안전성 평가연구'라는 연구용역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탈크 등을 "외국에서 사용 금지되거나 문제시돼 이른 시일 내에 안전성 재평가가 이뤄져야 할 원료"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이 보고서와 관련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넘어갔다.

 

유무영 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시 보고서의 주요 의제는 석면 함유가 아니라 탈크를 빈번하게 사용하면 난소암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며 "석면의 위험성 자체가 중심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그 이후에도 탈크에 대한 얘기가 있을 때마다 (탈크의) 독성 등 보편적인 얘기만 나왔지, 석면 자체를 딱 꼬집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유 과장은 "그런 점에서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의제로 관리하지 못했던 잘못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김창종 교수의 보고서 외에도 '석면 공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화장품과 의약품 등에 쓰이는 활석의 석면 함유 논란이 제기됐다. 이후 유럽은 2005년, 미국은 2006년, 일본은 2007년에 차례로 '베이비파우더 등 영·유아 제품에 들어가는 탈크에서 석면이 검출되면 안 된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지난 3월 말에야 외국의 규제 현황을 파악했다. 당시 이들 선진국과 보조를 맞춰 활석에서 석면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바람에 국민들은 지난 3~4년 동안 발암물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던 셈이다. 

 

유 과장은 "우리가 규제에 늦은 것은 질타를 받고 있고, 받아야 할 것이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도 어느 날 갑자기 규제를 만든 게 아니라 반영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유 과장은 이어 "매년 대한약전 개정 작업을 하면서 외국의 상황을 개정안에 반영하고 있고, 주로 일본의 상황을 약전에 반영했다"며 "그런데 마침 지난번 개정할 때 일본이 개정 전이었다. 그 점에서 의제 관리가 늦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일본 등을 참고하는 이유는 우리 정부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많은 상품이 있다 보니 외국의 경향이 좋은 참고가 되고, 자체적으로도 용역을 줘서 조사하고 있다"면서도 "어쨌든 탈크를 규제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 2007년 석면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석면관리 종합대책'까지 발표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피부에 석면 성분을 바르거나 먹고 있었던 것이다.

 

멜라민, 생쥐머리 새우깡, 석면 화장품... 다음은?

 

문제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식약청의 '늑장 대응'이다. 식약청은 멜라민, 생쥐머리 새우깡, 기생충알 김치 등 파문이 생길 때마다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석면의 유해성 여부를 떠나 국민들이 공포에 떨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뒷북 행정'의 원인은 결국 관리감독 기관의 '안전불감증'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윤여표 식약청장이 부임한 이후 벌써 두 번째 '대형사고'가 났다는 점에서 강한 인책론이 제기되고 있다.

 

"식약청이 마련한 기준대로 했을 뿐"이라는 사고 업체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석면 파동'이 터지자, 한국제약협회 등 제약업체는 석면 함유 여부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여 위해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는 의약품에 대해 자진 회수, 폐기키로 했다. 그러나 아직 회수·폐기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어서 '생색내기용' 발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시민단체가 직접 행동에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우선 석면이 검출된 8개 베이비파우더 제조사 대표를 경찰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특히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장과 노동부 경인지방노동청장에 대해서도 함께 고발 조치하기로 했다.

2009.04.06 21:02ⓒ 2009 OhmyNews
#석면 공포 #식약청 #석면 베이비파우더 #석면 화장품 #석면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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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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