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을 구합니다! 보수도 드립니다!

[리뷰] 오타 다다시 <기담 수집가>

등록 2009.08.10 16:16수정 2009.08.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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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담 수집가> 겉표지

<기담 수집가> 겉표지 ⓒ 레드박스

▲ <기담 수집가> 겉표지 ⓒ 레드박스

"기담을 구합니다! 직접 겪은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에게 상당액의 보수를 드립니다. 다만 심사를 통과할 경우에 해당됩니다."

 

신문에서 이런 광고를 본다면 어떨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나한테도 그런 기담이 있을까'하고 한 번쯤은 기억을 더듬어볼 것이다. 꼭 상당액의 보수가 아니더라도.

 

오타 다다시의 2008년 작품 <기담 수집가>에는 이런 식으로 기담을 모으는 사람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에비스 하지메. 명함에는 오직 '기담 수집가 에비스 하지메'라고만 적혀있을 뿐이다.

 

그가 기담을 모으는 이유는 그저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괴기 실화집을 출간하려는 것도 아니고, 기담 마니아로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는 인생의 즐거움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맛있는 술, 맛있는 시가, 그리고 재미있는 기담이다.

 

기담이라고 해서 단순히 기이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피도 얼어붙을 듯한 무서운 이야기. 상식을 확 뒤집어 놓을 만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를 말한다.

 

신문광고로 기담을 모으는 사람

 

이런 기담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주 극소수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에비스 하지메는 신문 광고를 통해서 기담을 모으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이한 일을 겪어본 사람들은 에비스를 찾아온다. 에비스가 지정한 장소인, 기이하기 짝이 없는 술집 '스트로베리 힐'(Strawberry Hill)이라는 곳으로.

 

에비스의 외모도 기이하다. 50세에서 60세 사이로 보이지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뚱뚱한 몸매에 얼굴은 축 처져있고 머리털은 마구 흐트러져 있다. 손에서는 시가가 떨어지지 않고 항상 위스키를 달고 산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한심하게 취급하면서, 끽연은 신사 숙녀의 기호라고 말한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을 무시하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반 정도 버리는 것이라고 혀를 찬다.

 

이와는 대조적인 인물이 에비스의 조수인 히사카다. 그도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카지노 딜러 같은 깔끔한 옷차림에 나이와 성별을 짐작하기 어렵다. 목소리도 외모도 중성적이고 피부는 병적이리만치 하얗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태도와 말투로 에비스의 곁을 지키지만, 어딘가 모르게 에비스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에비스는 이런 히사카를 보면서 '몹쓸 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담을 가지고 에비스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 두 명을 보고 의아해하지만, 곧 자신이 겪은 이상한 일들을 술술 털어놓는다. 돈을 노리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도 있다. 정말 믿지 못할 기담이라면, 일반인에게 털어놓을 경우 정신병자 취급당할 가능성도 많을 테니까.

 

사람들이 겪는 기담이 과연 사실일까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도 가지가지다.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직장인, 어린 시절 동네에서 있었던 이상한 살인사건을 말하는 알코올 중독자, 초능력자를 만났던 유명 여가수, 환생한 사람을 만났다는 교사 등. 나이와 신분과 사연이 모두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겪지 못할 만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에비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만족해서, 광고의 문구처럼 상당액의 보수를 지불하게 될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한테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까'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엑스 파일>을 꺼내지 않더라도 실제로 기담 괴담은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오래된 학교에는 꼭 몇가지의 이상한 전설이 전해지고, 군대에도 부대마다 여러가지 괴담들이 떠돈다.

 

물론 떠도는 이야기와 그것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은 달라도 한참 다른 일이다. 아무도 믿지 못할 만큼 무섭고 황당한 일을 직접 겪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남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에비스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알 수 없는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을 떨치기 위해서 에비스를 찾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단 한 명을 찾아서.

 

이렇게 본다면 기담을 듣는 것과 모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런 일을 실제로 겪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날 어떤 변화를 바라지만, 그것이 '기담'으로 시작되면 곤란할 것도 같다.

덧붙이는 글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 김해용 옮김. 레드박스 펴냄.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레드박스, 2009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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