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기 비위나 맞춰주는 기계냐고!"

아내와 함께 보낸 여름휴가, 첫날

등록 2009.08.18 11:59수정 2009.08.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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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4월 어느 날, 제가 좋아하는 냉잇국을 끓여주겠다고 병원 뒷산에서 캐 온 냉이를 다듬고 있는 아내. 부부는 싸우고, 토라지고, 이해하면서 해로하는 모양입니다.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고소한 맛이 나는 음식과도 같고요.

지난 4월 어느 날, 제가 좋아하는 냉잇국을 끓여주겠다고 병원 뒷산에서 캐 온 냉이를 다듬고 있는 아내. 부부는 싸우고, 토라지고, 이해하면서 해로하는 모양입니다.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고소한 맛이 나는 음식과도 같고요. ⓒ 조종안

지난 4월 어느 날, 제가 좋아하는 냉잇국을 끓여주겠다고 병원 뒷산에서 캐 온 냉이를 다듬고 있는 아내. 부부는 싸우고, 토라지고, 이해하면서 해로하는 모양입니다.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고소한 맛이 나는 음식과도 같고요. ⓒ 조종안

 

아내 휴가가 시작되던 날(10일) 아침이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전날 밤에 끓여놓았던 숭늉을 물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솥을 씻는 등 주방을 닦고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하는 일이고 저희는 고소한 숭늉을 사시사철 음료수로 마시거든요.

 

20일쯤 되었을까요. 아내가 퇴근하더니 8월 10일부터 시작되는 사흘 휴가를 어머니(장모)와 큰 누님 생일에 맞춰 잡았고, 마침 9일에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있으니 퇴근하면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부산으로 출발하면 되겠다며 좋아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성 치매로 부산 병원에 입원해있는 큰 누님을 며칠 동안 집에 모시는 문제에서는 아내와 의견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아 프로야구 관람도 취소되었고 10일 아침에도 언짢은 기분이었는데요.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던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오늘 아침밥 하지 마요! 그래서 오늘 부산에 안 갈 거여?"

 

솥을 닦으니까 밥을 하려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인데요. 우화한 목소리로 분위기 있게 말해도 풀리지 않을 텐데, 혼자서 명령하고 따지듯 묻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11일이 큰 누님 생일이고, 12일이 장모님 생일이라는 것을 입이 아프도록 얘기해왔거든요. 아무튼, 대답을 안 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왜 안 가, 가야지. 근디 밥 헐라고 쌀을 씻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허냐고···."

 

아내 말투가 상냥하지 못하다는 것은 결혼 전부터 알고 있어서 평소에는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해 있을 때는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는 바람에 다툼이 자주 일어나는데요. 그래도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간다고 해놓고 며칠 동안 아무 말이 없으니까 그렇지!"

"말이 없다니, 내가 자기 비위나 맞춰주는 기계냐고, 자기가 가자고 허야 가는 거시지, 뭣이 그렇게 좋다고 내가 먼저 촐랑거리고 앞서 나서냐고 방정맞게···."

 

"지금도 큰 누님 때문에 화났어?"

"그럼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어. 올여름에는 며칠이라도 집으로 모셔서 함께 지낼 것으로 알고 작년부터 기대가 컸는디, 틀어져 버렸으니까 서운헌 것은 당연허지. 둘째 누님이랑 막내 누님 한티도 얘기 혀놨는디···"

"····."

 

사실 화가 치솟았을 때는 "안 갈까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순간의 감정으로 평생 후회할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어서 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지요. 아무튼, 언쟁은 더 나아가지 않고 멈췄고, 아침밥은 형님댁에 복숭아를 전해 드리고, 하굿둑에 있는 우렁이 쌈밥 집에서 먹기로 하고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복숭아는 엊그제 아내가 과수원에서 금방 따온 거라며 사온 것입니다. 배짱도 좋게 두 상자를 사왔더라고요. 과일 중에 복숭아를 가장 좋아하는 걸 알아주어 고마웠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먹는 것도 귀찮더군요. 해서 한 상자는 형님댁에 가져다 드릴 것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불안한 대화를 휴전상태로 끝내면서도 8월 생활비 15만 원은 받았습니다. 원래는 25만 원이거든요. 그런데 셋째 매형 생일 때 가족들과의 식대를 아내 카드로 결제해서 그 금액을 제하고 받은 것입니다. 아내는 다 주려고 했지만, 끝내 사양했지요. 아무리 부부라도 공과 사는 구별돼야 하니까요.

 

8월 생활비도 받았겠다. 아내와 2박3일 여행은 몇 년 만인데다가, 반가운 분들을 만나러 가니까 기대도 크고 입도 벌어져야 하는데 '화장실에서 똥 싸다 말고 나온 기분'이더군요. 그래도 자료를 저장해놓은 USB와 카메라는 물론 창문과 가스도 점검하는 등 챙길 것은 다 챙겼습니다.

 

하굿둑을 지나 채만식 기념관 앞을 지나는데 금강이 서해와 만나며 그어놓은 은빛 수평선과 갯벌, 한눈에 들어오는 시내 전경이 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눈치 빠른 아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를 세워주기에 얼른 강변으로 달려가 몇 컷 잡았는데요. 급하게 찍어서 그런지 한 컷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은 비슷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면 "길에서 차를 어떻게 세워요, 다음에 찍어요!"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아내였는데 고맙더군요. 한편, 엊그제 사온 복숭아에 이어 두 번째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얽히고설킨 남북관계도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먹어본 '두 칸 냉면'

 

형님댁에 도착하니까, 형수는 미장원에 파마하러 가고, 형님 혼자 선풍기 앞에서 더위를 식히며 TV를 시청하고 있더군요. 가져간 복숭아를 깎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형수가 들어왔습니다.   

 

11일은 큰 누님, 12일은 장모님 생일이어서 부산에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형님이 형수에게 "우리도 내일 부산에 다녀오자!"고 제의하니까 좋다고 하더군요. 해서 다음날 부산 큰 누님이 입원해있는 병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오려는데 형님이 냉면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며 붙잡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주저앉았습니다.

 

형수가 미장원에서 머리를 마무리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형님이 추천하는 냉면집으로 향했는데요. 날이 어찌나 덥고 열이 나는지 아스팔트 위에다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처음 먹어본 ‘두 칸 냉면’. 면발이 졸깃졸깃 해서 좋았는데요. 여름에 한두 번쯤 먹어볼만한 음식이더군요.

처음 먹어본 ‘두 칸 냉면’. 면발이 졸깃졸깃 해서 좋았는데요. 여름에 한두 번쯤 먹어볼만한 음식이더군요. ⓒ 조종안

처음 먹어본 ‘두 칸 냉면’. 면발이 졸깃졸깃 해서 좋았는데요. 여름에 한두 번쯤 먹어볼만한 음식이더군요. ⓒ 조종안

 

식당에 들어서니까 실내가 깔끔하고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먹을 복이 없는지 만두가 다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냉면을 시켜먹었는데요. 자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더우니까 시원한 물냉면을 시킬지, 얼큰한 비빔냉면을 시킬지 망설이는데, 메뉴판에 '두 칸 냉면'이 적혀 있더군요.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그릇을 두 칸으로 나눠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나온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면발이 졸깃졸깃하고 양념도 입에 맞았습니다. 작년 여름 부산에 있을 때 개발해서 먹었던 '치자 냉콩국수'가 떠오르더군요.

 

우렁이 10박스 싣고 부산으로

 

냉면을 맛있게 먹고 다음날 부산 병원에서 만나는 걸 확인하고 헤어져 장모님이 좋아하는 우렁이를 사러 하굿둑에 있는 우렁이 쌈밥 집으로 향했습니다. 처제가 우렁이 10봉지만 사다 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1만 1천 원이었던 것이 며칠 만에 1만 2천 원으로 올랐더라고요.

 

쌈밥집 주인아주머니가 잊지 않고 찾아오셨으니 이번까지는 1만 1천 원에 가져가라고 하기에 10봉지를 사서 차에 싣고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아내 휴대폰이 울렸는데요. 통화하는 걸 보니까 장모님이었습니다. 큰딸이 무척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a  익산-장계 고속도로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잡은 마이산. “인간도 마이산 부부처럼 천만년을 해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산-장계 고속도로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잡은 마이산. “인간도 마이산 부부처럼 천만년을 해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익산-장계 고속도로에서 ‘똑딱이’ 카메라로 잡은 마이산. “인간도 마이산 부부처럼 천만년을 해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차를 타고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큰 누님 문제로 화만 낼 일이 아니었더라고요. 아내는 결혼하기 전까지 지역에서 알아주는 종합병원 신경정신과 수간호사였고, 지금도 노인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니까 노인성 질환 환자를 보는 눈은 베테랑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까요. 

 

그러나 전문지식과는 별개로 큰 누님 병세가 더하기 전에 의사선생님과 상의해서 7남매가 한곳에 모여 식사라도 하고 싶어 며칠이라도 모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고,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의 한마디로 계획이 틀어졌으니 서운하고 속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지요. 

 

속상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누님 넷이 있는데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아내 편을 들고, 형님도 동생도 아내 편을 든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까지 아내 편을 드니까 소외감이 들 때도 있거든요. 아내는 이러한 제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차는 달렸고, 오후 5시 40분쯤 되어 장모님이 사는 부산 처제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8.18 11:59ⓒ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모님생일 #큰누님생일 #아내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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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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