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과 스님, 신부님, 교무님의 공동기도

올해 금정굴 위령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세 가지

등록 2009.09.26 13:20수정 2009.09.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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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양시 4개종단 대표자들의 공동기도 왼쪽부터 기독교 목사님, 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천주교 신부님이 금정굴 영령들을 위로하는 공동기도를 올리고 있다.

고양시 4개종단 대표자들의 공동기도 왼쪽부터 기독교 목사님, 불교 스님, 원불교 교무님, 천주교 신부님이 금정굴 영령들을 위로하는 공동기도를 올리고 있다. ⓒ 전승일


'이제 생전의 그 모습 다시 뵐 수 없고 생전의 그 음성 다시 들을 수 없지만,
영령들의 무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정의가 다시 서는 그 날까지,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천주님의 이름으로,
법신불 사은님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후손들과 여기 참여한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4개 종단의 이름으로 영령들의 그 원통함과 억울함을 위로하오니

영령들이시여! 영생을 얻고, 극락왕생 하옵소서!
평온한 마음으로, 맑은 영혼으로, 편히 쉬소서! 편히 쉬옵소서!
천국에서 극락에서 편히 쉬소서! 영령들이시여! 이제는 편안히 쉬옵소서!

지옥을 만드는 것도 천국과 극락을 건설하는 것도 다 우리의 마음에 달린 것이니
원망도 없고 억울함도 없는 그 곳,

하늘나라가, 불국정토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두의 마음을 모아 기도하나이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로
그리스도와 주님의 사랑으로
법신불 사은님의 은혜로

오직 해원과 상생. 용서와 사랑이 충만한 평화의 세상이 이룩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나이다.'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모인 까닭

대중의 영성을 구한다는 종교의 목적에는 큰 차이가 없건만, 종교 간의 장벽은 꽤 크다. 하물며 개신교의 목사와 불교의 스님, 천주교의 신부님, 원불교의 교무님이 공동기도를 올리는 광경을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종교 간의 장벽을 과감히 깨고 목사와 신부, 스님과 교무가 함께 공동기도를 올리는 곳이 있다. 바로 고양금정굴학살 희생자 위령제전이다.


2008년 위령제에서 4개 종단 대표자들이 합의하여 4개종단 공동기도를 올리기로 한 후, 올해에는 그 뜻깊은 공동기도를 매년 훌륭한 관행으로 정착시켜 가기로 합의했다. 위 기도문은 2009년 제59주기 합동위령제전에 올리는 4개종단의 공동기도문 일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소극적인 태도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백한 직무유기로 조상들의 유해마저도 안치하지 못하고 있는 금정굴 유족들의 원통함이 부처님과 그리스도와 주님과 법신불 사은님의 은총으로 조금은 덜해질까? 이것이 제59주기 고양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전를 특별하게 만드는 첫번째 요소다.

올해에는 거기에 또 한 가지 복이 더해졌다. 해마다 금정굴 위령제에서 해원굿을 맡아 해오던 무당시인 오우열 선생의 주선으로, 올해에는 한국무교 전문교양대학 김흥수 이사장의 연출로 큰 굿판이 펼쳐지게 되었다. 9월 26일 낮 1시 무렵부터 두 시간 가량 펼쳐지는 이 '금정굴 넋들을 위한 舞天祭 (무천제)'에서는 대무당 장성만이 부정거리를, 만신 남수진과 강고은이 제석거리와 넋대신거리를, 큰만신 한상분이 장군, 신장, 영실거리를, 무당 전상열이 시왕창부거리를 맡아 진행한다. 이어서 무당시인 오우열이 굿풀이로 두 시간 큰굿을 마감한다.

a 제58주기 위령제 상여행렬 제58주기 위령제에서 유족들이 위패를 앞세우고 상여행렬을 벌이고 있다.

제58주기 위령제 상여행렬 제58주기 위령제에서 유족들이 위패를 앞세우고 상여행렬을 벌이고 있다. ⓒ 전국유족회


몸을 뉠 곳도 찾지 못하는 금정굴 영령들과 유족들의 한과 아픔을 4대종단은 물론 무당들까지 한 마음으로 나서서 위로해주니, 그래도 오늘 하루만은 시름을 덜 듯하다. 무당시인 오우열은 이번 위령제에서 금정굴 영령들에게 이런 시를 바쳐 올렸다.

'죽어서도 억울하게 죽어 원통한 넋이여
죽어서도 황천강 넘지 못하는 통한의 아픈 세월이 몇 십 년이련가?
살아 머무른 자의 피눈물은 하늘가에 맺혔고
죽어 떠나지 못한자의 한 맺힘은 금정굴에 가득하구나

자손들의 울부짖음 있어 하늘 문이 열리고
뜻 있는 선한 사람들의 뼈깎는 노력 있어 금정의 굴이 열리고
진실한 역사의 밝힘이 있어 학살의 진상이 밝혀졌어도
하늘 가는 길이 왜 이리 아득한 것이련가?

용서를 하라 해서 용서를 했다
비록 내 부모 내 형제를 죽인 학살의 원흉일지라도
화해를 하라 해서 화해를 했다
비록 가슴 속 찔러대는 송곳의 아픔이 있을지라도
더불어 함께 살라 해서 더불어 함께 살기로 했다
비록 죽어 갈 때까지 가슴앓이 사연을 머금을지라도

이제는 떠나련다
이승에 머무른 원, 한 맺힌 사연 접어두고
함께 죽어간 넋들을 위해 작은 묏등 하나 만들어다오
제삿밥 같이 먹을 넋들을 위하여
머무른 자손들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머무른 후손들 들쑥향 피어 올리며
다시는 통한의 아픈 세월 없이
남누리 북누리 하나되고
다시는 통한의 아픈 역사 되풀이 되지말라고
작은 묏등 하나 만들어 다오.
그리고 이런 비문 한귀절 적어다오
학살의 아픔을 기억하여 학살의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들도 이제 편히 쉴 수 있게...

제59주기 위령제를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금정굴사건은 사실 유족들이 나서기 전에 1993년 고양시민회를 비롯한 고양지역 시민단체들에서 먼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한 사건이었고, 이후 16차례의 위령제는 물론 모든 행사와 학살실태조사, 입법투쟁을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위에서 금정굴사건을 '경찰 책임하의 불법집단살해'라고 규정하며 국가와 지방자치체에 유해 안치 등의 후속조치를 시급히 취할 것을 권고했으나 국가와 지방자치체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며 후속조치를 계속 미루고 있다. 이에 이번 59주기 위령제전을 함께 봉행하는 37개 시민사회정당종교단체 대표자들이 뜻을 모아 유해안치 등을 촉구하는 선언을 채택하고 이후 대대적인 서명운동 등을 펼쳐 시민들의 의사를 결집시켜가기로 결의했다. 선언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ㅡ. 고양시는 금정굴 유해안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침이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족들이 원하는 곳에 묘지만 지정하면, 고양시 차원에서도 유해는 얼마든지 안치할 수 있다.

ㅡ. 일산경찰서와 고양경찰서는 학살의 직접 책임기관이자 후속조치의 주무부서로서,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온 유족들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뜻을 받아 각종 후속조치를 입안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ㅡ. 경기도는 금정굴 일대의 평화공원 조성 사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평화공원은 도 단위로 세워지는 것이 적격이며, 도에서 앞장설 때 추진력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ㅡ. 경찰청은 학살의 총책임기관이자 후속조치 시행 책임기관으로서, 정부 각 부처와 긴밀하게 협의하며 유해안치, 평화공원 조성, 위령사업, 피해 및 명예회복, 재발방지책 등의 각종 후속조치를 즉각 입안하여 실행에 옮겨야 한다.

ㅡ. 행정안전부는 과거사위 권고사항 처리기획을 책임진 주무부처로서, 유해안치, 평화공원 조성 등의 권고사항은 물론, 피해를 완전하게 회복시키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 필요한 각종 후속조치를 즉각 입안하여, 나라가 과거의 잘못을 씻고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는 나라로 다시 태어나며 국민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기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ㅡ. 국회는 피해의 배상, 보상 및 위령사업과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을 즉각 제정하여 진실규명 후속조치의 포괄적인 실행을 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학살현장이 그대로 남아 있어 현장에서 약식 제례를 모시고 본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관례 등, 금정굴 위령제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들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생략한다. 그리고 위령제전 전체를 두고 볼 때에는 지난 9월 16일부터 9월 30일까지 고양어울림누리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2009 높빛평화예술제를 물론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59년 전의 전쟁과 학살의 아픈 역사를 오늘날에 어떻게 되새김질하여 이 땅을 평화와 상생을 땅으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의 결과로서, 해마다 조금씩 진화 발전하고 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들도 이제 좀 편히 쉬고, 후손들도 이제 좀 발 뻗고 자며, 만인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제17회 금정굴사건 위령제와 제2회 고양부역혐의사건 위령제를 겸하여 열리는 제59주기 고양지역 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전은 낮 1시 금정굴 현장제례를 시작으로, 1시 반 '금정굴 넋들을 위한 무천제(장항근린공원)', 3시 본행사 순으로 거행된다.

a  제59주기 금정굴 위령제 포스터

제59주기 금정굴 위령제 포스터 ⓒ 전승일

덧붙이는 글 | 이춘열 위령제전 집행위원장 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춘열 위령제전 집행위원장 입니다.
#금정굴 #제59주기 #위령제 #무천제 #공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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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문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보고 싶습니다. 글쓰기 분야: 사회평론 일반, 민간인학살, 시민사회운동 주요 이력 (필명 이무열) - 고양시민회 대표,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 사무처장, - 저서 <러시아사 100장면> <그래도 사람은 하늘이다> <세계사 작은사전> <현대역사 100> - 역서 30여 권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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