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기타 사부의 콘서트 "팍팍한 세상 힘내요"

촛불가수 손병휘, 27-28일 서울서 '나란히 가지 않아도' 공연

등록 2009.11.24 12:34수정 2009.11.2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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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노무현 후보측에서 손병휘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기타 하나 사갖고 오라는 전갈이었다. 여의도 모처 음식점에서 손병휘씨가 만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 그 자리에서 기타강습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 해 "저덜의 푸르른"으로 시작하는 '기타 치는 대통령' 동영상이 만들어졌다.

 

'저덜'이란 사투리가 걸렸으나, 왠지 무척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단다. 원래 몇 차례 개인강습이 더 잡혀 있었으나 노무현-정몽준 결별 등 가파른 일들이 생기면서 강습은 한 번으로 끝났다. 손병휘씨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인연은 끈질겼다. 2004년 손병휘씨가 막 2집 음반을 내놓고 음반홍보에 나서야 할 때,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음반홍보는 뒷전, 곧바로 거리로 나섰다. 매일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a  촛불이 켜지는 곳엔 언제나 나타나 '촛불가수'로 불리는 가수 손병휘씨가 27-28일 공연을 펼친다.

촛불이 켜지는 곳엔 언제나 나타나 '촛불가수'로 불리는 가수 손병휘씨가 27-28일 공연을 펼친다. ⓒ 김대홍

촛불이 켜지는 곳엔 언제나 나타나 '촛불가수'로 불리는 가수 손병휘씨가 27-28일 공연을 펼친다. ⓒ 김대홍

2007년 발매한 4집 '삶86'에 실린 '강물은 똑바로 가지는 않지만 언제나 바다로 흐른다'는 노래는 노 전 대통령이 언젠가 한 말을 메모한 뒤 만든 노래다. 손씨는 이 음반을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5월 26일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조문을 하면서 비로소 음반을 드렸다. 짧은 인연은 이렇게 끝났다.

 

그는 올해 참 바빴다. 3월 12일 용산참사현장을 방문해 공연을 펼치고, 6월엔 강원도 원주시 캠프롱미군기지 인간띠잇기대회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다. 7월 9일엔 음악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10월 21일엔 미디어법 헌재 판결을 앞두고 열린 음악회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한 해가 누구보다 고단했을 그는 오는 27-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예술공연장에서 콘서트를 마련한다. 제목은 '나란히 가지 않아도'다. 촛불이 나오는 곳마다 모습을 드러내 '촛불가수'라는 별명이 붙은 그가 올 한해 지친 이들에게 '괜찮아'라고 위로하는 자리다. 꼭 투쟁을 함께 하지 않더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잊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에서 '나란히 가지 않아도'라 이름을 붙였다.

 

봉하마을에서 조문 기다리며 마신 술, 특히 기억나

 

a  손병휘씨가 공연하는 모습.

손병휘씨가 공연하는 모습. ⓒ 김대홍

손병휘씨가 공연하는 모습. ⓒ 김대홍

이번 공연에선 대략 20곡 정도 부를 계획이다. 1-4집에 실린 곡 외에 신곡 두 곡이 더해진다.

 

세션은 손씨가 2000년 첫 앨범을 낸 이후 개인 콘서트로선 가장 많은 10명이다. 드럼에 베이스, 건반, 아코디언, 바이얼린, 첼로, 트럼펫, 코러스가 참여한다. 우리나라 풍금과 비슷한 하모니언도 선을 보인다. 모두 '인간 손병휘'를 위해 기꺼이 나선 이들이다. 노래로 만족을 주고 싶다는 그는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무려 10명이 세션으로 나선다니까요."

 

손병휘의 오지랖은 꽤 유명하다. 3집 '촛불의 바다'가 나왔을 때 세 명이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국민사회자'란 별칭이 붙은 최광기를 비롯 배우 권해효, 개그맨 노정렬이 그들이다. 전주에선 시인 안도현, 광주에선 '바위섬' 가수 김원중이 음반홍보에 발 벗고 나섰었다. 가수 안치환은 '촛불의 바다'에서 합창을 맡았다. 이번엔 누가 나설까.

 

공연 중간엔 지인들 인터뷰가 나온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들은 모두 빠졌다. 손병휘씨가 강력히 원해서다. 그를 아는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이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눈길을 끌 만한 이들은 위스키동호회 회원들. '음주가수'라 부르는 손병휘씨의 이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술과 관련해서 잠깐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한다.

 

- 1년 중 술을 얼마나 마시나.

"음... 술일지를 쓴다. 1주일 4-5일 정도 마신다. 자제하려고 음주일지를 쓴다. 1주일 3번 마시는 게 목표다. 성공한 주는 없는 것 같다."

 

- '음주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데, 술 노래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에 관해 쓴 책 중에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에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위스키 모임 할 때 부른 적은 있다."

 

- 기억에 남는 술자리는?

"지난 봄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러 봉하마을에 갔을 때 몇 시간 동안 (안)치환이형이랑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임)수경이가 와서 물통을 건네더라. 뭔가 싶어 보니 소주더라. 그 때 소주를 마시면서 조문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술이다."

 

- 또 있을 것 같은데.

"며칠 전 일본에서 콘서트(11월 22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 콘서트)를 했는데, 앵콜곡으로 일본노래 '건배'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기 전 소품으로 맥주를 준비해달라 했었다. 무대에서 맥주 반을 들이켜고 부른 게 기억에 남는다."

 

- 기억하기론 국내에선 음주콘서트가 한 번도 없다. 날도 추운데, 무대에서 데운 술 한 잔 들이켜고, 어묵 먹는 자리도 만들면 어떨까.

"괜찮은 것 같다. 한 번 생각해보겠다."

 

비극보다 희극, 따뜻함을 들려주고 싶어하다

 

"저는 비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생사의 비극은 물론이고 문학작품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아무튼 비극은 싫습니다. 심지어는 어렸을 적 만화가게에 가서도 만화책을 들춰보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거나 하면 아예 읽지를 않았지요."

 

웃는 얼굴이 자연스러운 손병휘씨가 쓴 글이다. 그는 세상이 밝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길 바란다. 이번 공연을 마련한 이유다.

 

그에게 바라는 세상을 물었다. 그는 "너무 거창한 질문"이라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경제수준에 연연하지 말고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경제규모가 커진다 하지만 박탈감 느끼는 분들은 더 많아지고, 용산에서 그런 일도 벌어지잖아요. 이제 우리도 여유있는 삶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요."

2009.11.24 12:34ⓒ 2009 OhmyNews
#손병휘 #삶의질 #촛불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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