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05)

― '초반의 나의 인생', '초반의 두려움' 다듬기

등록 2010.05.27 12:58수정 2010.05.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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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초반의 나의 인생

.. 전남 광주에서 발행되던 호남신문사에서 사진부장을 맡게 되면서 20대 초반의 나의 인생이 보도사진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이다 ..  <이경모 흑백사진집>(동신대학교출판부,1998) 123쪽


'발행(發行)되던'은 '나오던'으로 다듬고, '인생(人生)'은 '삶'으로 다듬습니다. "인연(因緣)을 갖게 된 것이다"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나 "인연을 맺었다"나 "이어질 수 있었다"나 "만날 수 있었다"로 손봅니다.

 ┌ 초반(初盤)
 │  (1) 운동 경기나 바둑, 장기 따위에서 승부의 처음 단계
 │   - 초반 싸움에 승부를 걸다 / 초반에 두 골이나 앞섰으나 후반에 역전당하고
 │  (2) 어떤 일이나 일정한 기간의 처음 단계
 │   - 90년대 초반 / 초반 주식 시장 / 30대 초반의 남자 / 초반 개표 결과
 │
 ├ 20대 초반의 나의 인생
 │→ 20대 첫머리 내 삶
 │→ 스물을 갓 넘긴 내 삶
 │→ 스물을 갓 넘던 내 삶
 │→ 이제 막 스물이 된 내 삶
 └ …

'처음'을 가리키는 한자말 '초반'입니다. 한자말 '초반'을 쓰면서 '처음'을 뜻하거나 가리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한자말 '초반'을 쓰지 않고 토박이말 '처음'을 쓰면, 쓰임새나 뜻 모두 한결 수월하고 단출하리라 봅니다.

 ┌ 초반 싸움 → 처음 싸움
 ├ 후반 싸움 → 나중 싸움
 │
 ├ 초반에 두 골이나 앞섰으나 후반에 역전당하고
 └→ 처음에 두 골이나 앞섰으나 끝에 뒤집어지고

'토박이말을 가리키는 한자말'이 아니라, 한자말 뜻이나 쓰임이 고유할 때라면, 우리들은 이 말이 한자말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박이말을 가리키는 한자말을 쓰는 동안에는, 이 한자말이 '무슨 뜻으로 쓰는 한자말'이며 '어떤 한자로 엮인 말'임을 따로 밝혀야 합니다.


'유리'나 '전화기'를 가리켜 한자말이라고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한자로 적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 안다 하여도 한자로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휴지'나 '수건'을 한자로 밝혀 놓는다고 해 보십시오. 어느 누구도 못 알아들으리라 봅니다. 유리는 '유리'이고 수건은 '수건'일 뿐입니다.

 ┌ 30대 초반의 남자
 │
 │→ 30대 첫머리인 남자
 │→ 서른을 갓 넘긴 남자
 │→ 서른을 조금 넘긴 남자
 └ …


알맞게 쓸 만한 낱말이었다면 처음부터 아무런 말썽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쓰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토씨 '-의'가 함부로 들러붙을 일이 없습니다.

알맞게 쓸 만한 낱말이 아니고, 우리 삶을 찬찬히 담아낸 낱말이 아니며, 우리 넋과 생각을 고이 펼쳐 보일 낱말이 아닐 때에는 자꾸자꾸 말썽을 일으킵니다. 골칫거리가 됩니다.

ㄴ. 초반의 두려움

..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달이 지나니까 초반의 두려움이나 스트레스는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  <정은진-정은진의 희망분투기>(홍시,2010) 278쪽

"그나마 다행(多幸)인 것은"은 "그나마 좋았다면"이나 "그나마 괜찮았던 대목은"이나 "그나마"로 다듬어 줍니다. '스트레스(stress)'는 '짜증'이나 '골 부림'으로 손질하고, "줄었다는 것이다"는 "줄은 일이다"나 "줄었다"나 "줄어들었다"로 손질해 봅니다.

 ┌ 초반의 두려움이나
 │
 │→ 처음에 있었던 두려움이나
 │→ 처음에 느끼던 두려움이나
 │→ 처음에 겪던 두려움이나
 │→ 처음에 맞이하던 두려움이나
 └ …

'처음'으로 고쳐쓰면 되는 한자말 '초반'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초반'을 '처음'으로 고쳐쓴다 하더라도 "처음의 두려움"처럼 토씨 '-의'를 붙이는 분이 어김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처음에 겪던 두려움"이라든지 "처음에 느끼던 두려움"이라고 적어야 올바른 줄을 헤아리지 못하는 분이 퍽 많다고 느낍니다.

옳게 말하고 바르게 글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나 옳은 말과 바른 글을 못 배운 탓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옳게 말하고 바르게 글쓰고자 애쓰지 않은 탓이요, 옳은 삶과 바른 넋을 사랑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옳은 삶에서 옳은 말이 태어나고 바른 넋에서 바른 글이 비롯하는데, 말과 글만 따로 떼어놓고 살피기 때문에 삶과 넋뿐 아니라 말과 글 또한 옳고 바른 길로 접어들지 못합니다.

 ┌ 처음에는 두렵고 짜증스러웠으나
 ├ 처음에는 두렵거나 짜증을 냈으나
 ├ 처음에는 두려움 많고 짜증 잦았으나
 └ …

처음부터 훌륭하거나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어줍잖거나 어리석을 수 있으며, 처음에 모자라거나 어설프다고 하지만 차츰차츰 가다듬으면서 나아지면 됩니다. 누구나 새롭게 배우는 말이고 누구나 꾸준히 익히는 글인 만큼, 어리다고 말을 잘 못한다거나 나이가 많다고 글을 잘 쓰란 법이 없습니다. 힘써 배우는 만큼 말을 잘하기 마련이고, 즐겨 익히는 만큼 글이 빛나기 마련입니다.

슬기롭게 추스르거나 다독일 때에 비로소 새로 태어나는 말입니다. 알차게 다스리거나 북돋울 때에 바야흐로 거듭나는 글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이 키워 주지 않는 말입니다. 무슨무슨 이름값이나 힘으로 끌어올릴 수 없는 글입니다. 오로지 땀방울과 사랑과 웃음눈물 세 가지로 일굴 수 있는 말이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그물코)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의 #토씨 ‘-의’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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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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