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도 세입자, 곧 방빼야 한다"

[인터뷰] 고 이상림씨 유가족 전재숙씨 "김석기 생각만 하면 눈 뒤집어진다"

등록 2011.01.20 11:41수정 2011.01.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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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1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극장에서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작은 영화제가 열렸다. 지난 17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되는 용산참사 2주기 추모기간에 일환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장호경 감독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오두희 감독의 <용산, 남일당 이야기>가 상영됐다.

특히 <용산, 남일당 이야기는> 용산참사로 남편과 아들,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 23명이 371일 동안 참사현장을 지키며 보낸 이야기가 기록됐다. 그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도 이날 극장을 찾았다. 남편은 용산참사로 숨지고, 아들은 구속된 안타까운 사연으로 알려진 전재숙씨였다.

오후 7시, 영화가 상영되는 서울 종로 롯데시네마(옛 피카디리)에 전씨와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씨는 용산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이고, 현재 구속돼 있는 이충연 전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의 어머니이다. 전씨는 이충연씨의 형 상연씨, 누나 현선씨와 함께 검은 옷을 맞춰 입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참사를 맞은 지 2년. 길었던 싸움이 일단락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슬픔이 담겨있는 유가족들의 눈동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국무총리가 나라를 대표해 사과했으니 다 잘 끝났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들의 처지는 1년 전보다 더 초라해졌다.

정부, 약속한 생계지원 불이행... 경찰, 유가족에게도 소환장 보내

a  용산참사 2주기 영화제에 참석한 전재숙(가운데)씨 가족들.

용산참사 2주기 영화제에 참석한 전재숙(가운데)씨 가족들. ⓒ 최지용


"정부가 자기들은 보상을 해줬다고 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예요. 생계대책을 내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진행된 게 없어요. 그래놓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징역 4년, 5년씩 때렸습니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소환장을 보내고 있어요. 유가족에게까지 소환장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됩니까?"

기자와 마주 앉은 전씨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몇 차례 그런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끝까지 눈물을 잘 참아냈다. 그와 가족들은 이날 오후 집에서 고 이상림씨의 추모식을 열고 오는 길이었다.


가장 먼저 생계가 궁금했다. 전씨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규명과 고인들의 명예회복이지만, 생계가 보장이 안 되니 먹고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당시 정운찬 총리가 찾아와 유감을 나타내고, 2009년 12월 30일 유가족과 합의를 했지만 정부가 약속한 생계대책은 아직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유가족과 희생자 23가에게 법정 영업보상비를 지급했고, 재개발 사업 조합에서 사망자 5명의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합의가 이행된 것은 당시에 진행됐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생계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한 후속조치가 전혀 진행되지 않는 것. 4구역 공사현장에 함바집 운영권을 주기로 했지만 공사 시작이 묘연해졌다.

지난해 11월 지주 4명이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이 "관리처분계획 승인에 하자가 있다"며 개발 사업 무효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개발을 재촉하는 업자들에 의해 사지로 몰렸던 유가족들은 이제 공사를 지연시키려는 땅주인들에게 묶여 생계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상절차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전씨를 더 화나게 한 것은 경찰의 행태였다. 최근 용산참사 투쟁과정에서 경찰 채증 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에게 소환장이 날아오고 있는데, 유가족인 전씨의 아들 이상연씨에게도 소환장이 왔다고 한다.

전씨는 "총리가 와서 잘못했다고 한 일인데, 왜 아직도 우리를 범죄인 취급하냐"며 "알아보니까 유가족인 줄도 모르고 마구 보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갈 곳이 없어 남일당 앞에 주저앉은 유가족에게까지 소환장을 보낸다는 건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한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 거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아버지 죽인 아들? 대법원 판결에 마음 무너졌다"


"1주기는 장례 치르고 며칠 만에 맞아서 엉겁결에 보냈고, 2주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무 느낌이 없어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데 무슨 2주기가 있겠습니까? 눈을 감으면 바로 어제일 같아요."


참사 2주기를 맡는 소회를 묻는 질문에 전씨는 손사래를 치며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고인들의 명예회복도, 아들을 포함한 구속된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리지 않은 변함없는 상황에 전씨는 몹시 답답해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이 확정된 아들 이충연씨를 향해 진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한 가닥 희망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판결하는 걸 보고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아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어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겠습니까? 적어도 살인 혐의는 빠졌어야 하지 않나요? 이어서 4구역 개발사업이 잘 못됐다는 판결도 나왔습니다. 그 개발이 잘 못됐다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잘못한 게 없는 거죠."

전씨는 "10일 날 면회가서 보고 왔는데, 폐가 안 좋았다가 지금은 등도 아프다고 한다"며 "벌써 감옥생활 2년이나 해서 건강이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들을 생각하며 매주 목요일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열리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지난 16년 동안 800회가 넘는 집회를 매주 열어 왔다.

전씨는 민가협뿐 아니라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회원으로 여러 민주 열사, 노동 열사들의 추모식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해 왔다고 한다. 그는 "집에 앉아 있을 시간 없이 1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석기만 생각하면 눈이 뒤집어집니다"

a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마지막 확인한 뒤 오열하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인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용산참사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시신을 마지막 확인한 뒤 오열하고 있다. ⓒ 유성호


"김석기만 생각하면 눈이 뒤집힙니다. 경찰청장 내정되고 이틀 만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겠다고 그런 살인 진압을 한 거 아닙니까? 죽을 놈이 있다면 김석기죠. 그런 놈을 일본 총영사로 보내다니요. 죄 없는 우리 식구들은 4년, 5년씩 징역을 살고 있는데, 살인을 저지른 경찰들과 용역들은 여전히 배불리고 있다니 눈이 안 뒤집어지겠습니까?"

전씨는 김석기 전 서울청장의 일본 총영사 발탁 소식을 전하는 기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경계심과 분노가 느껴졌다.

김 전 청장은 지난 10일 일본 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됐다. 그는 2009년 1월 서울경찰청장에서 경찰청장으로 내정됐으나, 용산 남일당 건물 강제진압 과정에서 시민 5명, 경찰 1명이 희생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그 후 자유총연맹의 부총재를 지내며 고향 경북 경주로 내려가 있다가 일본 총영사로 발탁돼 이명박 대통령의 '보은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씨는 "이 정권이 끝나면 김석기를 비롯해 위에서 지시를 내렸던 사람들은 분명히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산참사의 진실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뜻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늘이라도 (대통령직에서) 내려온다면 당장이라도 진상규명이 가능합니다. 이 대통령도 거기서 평생 사는 게 아닙니다. 그도 언젠가는 나와야 할 세입자죠. 정말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그렇게 못하는 게 한입니다. 내려온 다음에도 우리가 똘똘 뭉쳐서 싸워야 합니다. 또 이명박 같은 대통령이 나오면 안 돼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우리가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씨는 기자에게 간곡한 부탁 하나를 전했다. 그 말을 하며 내내 참아 왔던 눈물이 맺혔다.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나면 안 되지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지금도 이 엄동설한에 천막생활하며 말로 못하게 어려운 곳이 많아요. 아직도 개발업자들은 그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밀고 있습니다. 차에 언제 치일지 모르는 길 위에서 자는 사람들을 봐주세요. 2주기라고 해서 우리를 취재하지 말고, 그걸 개기로 해서 그런 곳을 다니면서 기사를 써서 널리 알려주세요."
#용산참사 #2주기 #전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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