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혁명은 무력과 종교 권위에 대한 도전"

[코리아연구원] 북아프리카 및 리비아 역사로 본 시민혁명 분석

등록 2011.04.12 13:44수정 2011.04.1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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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일을 이제 일구어 내고 있다. 이 흐름은 모든 아랍 및 이슬람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동의 정치 강국 이집트의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발표된 3월 12일 카이로아메리칸대학 정치학과 왈리드 카지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레바논 출신으로 이집트에서 20여년 교수직을 지난 카지하 교수는 "아랍 및 이슬람 역사의 전환점을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지하 교수의 예측은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 시민혁명의 물결은 이집트와 튀니지의 황량한 사막을 넘어 많은 아랍 국가로 밀려가고 있다. 당장 리비아와 예멘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버티기' 전술을 취하고 있지만 무암마르 카다피와 알리 압둘라 살리흐 정권도 풍전등화 상태에 놓여있다. 시민혁명의 높은 파도는 다른 아랍 국가들로 넘쳐 흘러들어가고 있다. 알제리, 바레인, 모로코, 팔레스타인, 요르단, 수단 등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은 아랍인의 심리구조(mentality)를 바꾸어 놓았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아랍 내 민주화의 봇물이 터진 것만은 틀림없다."

 

미 해군대학원 중동학과 로버트 스프링보그 교수는 이번 민주화혁명의 성격과 파장을 이렇게 규정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번 시민혁명이 아랍권 전체의 정치적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앞 다퉈 민주적 조치의 이행 공약을 내거는 등 자구책을 내놓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외면상으로 아랍의 현 시민혁명 현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몰락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지속된 독재 정권의 압정을 시민의 힘으로 떨쳐내고 민주화시대를 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아랍권의 최근 변화는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5000년 이상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은 '아래로부터의 정권변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아랍지역에서는 유목문화에 바탕을 둔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이슬람에 근거한 '종교적 권위주의'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사회를 억누르고 있었다. 아래로부터의 정권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틀이 이제 깨지고 있다.

 

Ⅰ.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종말

 

사상혁명으로서 최근 아랍의 변화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인식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유목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력 혹은 무력을 바탕으로 한 권위주의에 바탕을 둔다. 유목민들은 정착문명과는 달리 생사를 결정하는 우물 혹은 오아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무장을 해야 했다. 남성이 칼을 지니는 것은 당연했고, 유사시에는 우물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가 싸워야 했다. 전투를 위한 명령체계까지 갖춘 강력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필요한 사회였다.

 

가장 강한 가문 혹은 집안의 남자 어른에게 모든 지도력과 권력이 주어졌다. 부족원은 부족장의 명령과 권위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 지도자는 '아버지'와 같은 권위를 갖는다.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것은 터부시 돼왔다. 아랍의 부족을 일컬을 때 '바누(Banu)+부족장 이름'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바누는 아들의 복수(複數)다. 따라서 아버지 역할을 담당하는 부족장의 아들들이 부족의 이름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체제는 이처럼 아랍유목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세계관이다.

 

물리력에 기반을 둔 가부장적 권위주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아랍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죽어야 바뀌는 정권'의 특징을 가진다. 아버지는 죽어야 그 지위를 상실한다. 소위 왕정이라 불리는 걸프국가에서는 가문의 수장이 절대 그리고 세습군주로 군림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가문,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는 '나흐얀,' 두바이는 '마크툼' 가문, 카타르는 '싸니' 가문, 쿠웨이트는 '사바흐' 가문이 왕위는 물론 주요 정부 요직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공화정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군부 쿠데타 세력이 대부분 죽을 때까지 집권한다. 선거는 있지만 이름뿐이다. 정권교체가 없고, 장기독재가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1969년 27세의 나이로 쿠데타에 성공해 42년 동안 통치하고 있는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다. 반정부 시민군에 대해 카다피는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의 권위를 끝까지 지키려고 무차별 진압을 펼치고 있다. 자국인에 대해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까지 투입하고 있다.

 

물리력을 중시한다는 것은 '강력한 물리력'에는 약한 속성과 연결된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7세기 초 등장한 이슬람이 수십 년 만에 스페인 남부까지 점령하는 과정에서 큰 전투는 거의 없었다. 새로 등장한 이슬람국가를 둘러싼 두 제국 혹은 다른 민족과의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투였을 뿐이다. 페르시아 사산제국과 펼친 카디시야(현재의 이라크 중남부) 전투, 동로마 비잔틴제국과 싸운 야르무크(현재 요르단 북부) 전투였다. 그 외 지역에서는 이슬람 대군이 진군해 오면 대부분 부족은 항복 서약을 행했을 뿐이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유목민들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인드를 아랍의 독재정권들은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군대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전 자치정부 수반, 독재자 사담 후세인 등이 군복을 자주 입고 빈 권총집을 차고 다녔던 것도 물리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걸프 왕정에서도 왕세자나 왕세제가 되는 정규코스는 영국의 사관학교를 이수하고 경찰청장과 국방장관을 거치는 것이다.

 

왕이 된 이후에도 정보기관과 군부는 자신의 직속 명령체계 하에 둔다. 더불어 '공화국수비대' 혹은 '왕정수비대' 등 친위부대를 별도로 두고 권좌를 지키는 물리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리비아의 반정부 시민군은 정부군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다. 가부장적 권위에 순종하는 심리구조를 떨쳐버리고 저항할 수 있도록 아랍인들의 마음 속에 '자신감'을 넣어준 것이 이번 시민혁명이다.

 

Ⅱ. 이슬람 종교적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

 

"믿는 자들이여, 알라께 복종하고 사도 무함마드와 그리고 너희 가운데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이슬람의 경전 코란 4장 59절의 내용이다. 아랍권이 그 어느 지역보다 정부 혹은 지배세력의 정통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종교적 배경이다. 이슬람은 아랍어로 '복종'을 뜻한다. 알라에 대해 복종하는 것과 더불어 이슬람 공동체의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였던 무함마드에 대한 복종이다.

 

권위주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1400여 년 전 계시된 이 코란 구절들은 현재까지도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이슬람학자위원회는 3월 6일 "시위가 이슬람 교리에 위배되며 개혁 청원에 동참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위원회는 또 성명에서 "개혁과 조언은 시위나 갈등·분열을 조장하는 방법을 통해서는 안 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나라의 율법학자들이 이를 금지하고 경계했다"고 강조했다.

 

이 성명은 하루 전 발표된 정부의 시위 불허 방침에 대해 지지의사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 내무부는 5일 성명을 통해 "사우디 현 형법상 어떤 형태의 시위도 불법에 해당한다"며 시위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정부 시위를 촉구하는 온라인상의 움직임이 확산하자 이를 막기 위한 정부와 종교지도부의 공조노력이다. 3월 3일에는 사우디 동부지역에서 시아파의 소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수니파 지식인들도 절대왕정을 최소한 입헌군주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슬람이 이처럼 권위주의 체제를 갖게 된 것은 창시자 무함마드의 독특한 지위에 기인한다. 이슬람은 중동의 다른 양대 종교, 즉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와 태동에 있어 상당히 다르다. 모세와 예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종교적 사명을 마치고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의 역할은 알라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종교를 정착시키는데 끝나지 않았다. 그는 메카에 입성해 이슬람공동체를 만들고 이슬람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약 2년간 통치하고 죽었다. 그는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지도자였다.

 

이슬람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무함마드는 국가를 유지하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와 장치를 만든다. 때문에 이슬람은 유교와 상당 부분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유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도 일종의 통치철학적인 특성을 상당 부분 보여주고 있다. 또 국민의 삶을 통제하는데 용이한 생활종교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보도록 규정한 것도 국민의 삶을 이슬람의 통치철학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중국에서 유교가 아직도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슬람이 아직 중동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아랍권 시민혁명은 이슬람 종교의 권위주의에도 적잖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최근 아랍권 민주화사태에서 가장 긍정적인 현상 중 하나는 시위대의 구호에 이슬람적인 내용이 상당히 미약하다는 점이다. 현재 아랍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는 민족적 그리고 세속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 등 서방이 우려하는 이란 모델의 이슬람혁명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민주화혁명이 이슬람혁명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다소 확대과장된 것이다. 이집트의 경우 무슬림형제단은 시위 분위기에 편승했을 뿐이다. 물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면 무슬림형제단의 후보 혹은 이 단체가 지지하는 후보가 적지 않은 표를 얻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아파와 달리 수니파는 1400여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이슬람이 권력을 차지한 적이 없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종교적 그리고 더 나아가 정치적 권위에 도전할 세력을 용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슬람 전체인구의 약 90%를 차지하는 수니파에서는 성직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함마드가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수니파 이슬람에서는 누구나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수 있다. 더불어 기독교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자카트(희사)도 누구에게나 줄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돈이 종교기관에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상식적으로 사람과 돈이 없는 종교기관이 왕권 혹은 권력층에 도전하거나 위에 올라설 수 없다. 무함마드가 추구한 것은 백성의 도전이 존재하지 않는 권위주의 사회였다. 따라서 시아파와 달리 수니파에서는 1400여년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이슬람이 권력을 차지한 적이 없다. 이슬람은 권력과 권위주의를 유지하고 사회와 개인을 통제하는데 정치적으로 가장 동원하기 쉬운 수단이었다.

 

아랍권 최대 정치, 문화 강국 이집트가 무너진 날, 22개 아랍국가 대다수 수도 중심가에 모여든 인파는 자국의 일인양 환호했다. 압제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이번 아랍의 시민혁명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틀의 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인식체계 혹은 심리구조가 바뀌면서 발생한 시민봉기이기에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집트 대통령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또 동시에 예멘은 물론 리비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Ⅲ.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민주화여정 전망

 

실제로 이번 민주화혁명은 중동전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 중동을 구성하고 있는 3대 정치체제, 즉 공화제, 입헌군주제, 절대왕정 세습군주제에서 모두 심각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까지 시위나 반정부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나라는 현재 카타르뿐이다. 아직 모든 아랍국가가 본격적인 민주화 여정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공화정의 부자권력세습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중동 최대의 정치, 문화 강국 이집트가 붕괴한 배경에는 권력세습이 있다. 생활고와 부패도 근본적인 원인이었지만, 이집트의 민심은 물론 기득권층의 반발을 가져온 사안은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세습하려는 무바라크의 움직임이었다.

 

리비아의 카다피도 둘째 사이프 알-이슬람 혹은 넷째 무으타심에게 권력을 이양할 움직임을 보였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이 반군에게 영향을 준 것도 분명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권력세습에 대한 동부지역 부족들의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1969년 카다피의 혁명으로 물러난 이드리스 왕조의 거점이었던 동부 지역은 42년 동안 카다피의 통치 아래 사실상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이 지역의 3대 부족인 알-와르팔라, 알-우바이다, 알-무가르바 부족 출신이 반군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부이자 전사들이다. 여기에 카다피 정권에서 이탈한 무스타파 압둘 잘릴 전 법무장관이 반군의 임시정부에 해당하는 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내무장관을 지낸 압둘 파타 유니스가 반군의 최고사령관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오랜 망명생활을 했던 인사들이 속속 귀국해 반군에 가담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과거 리비아군에서 장성을 지냈던 칼리파 헤프티르다. 20여 년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현재 자칭 반군의 '야전 사령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위원회는 점차 정부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서방 인사들이 포진되고 있다.

 

총리로 임명된 마흐무드 지브릴은 피츠버그대학 박사 출신이고 재정장관직을 담당하게 된 알리 타루니는 워싱턴대학 교수다. 서방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오래 생활한 인사들이 대거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되면서 현재 반군 지도자들은 새로운 헌법과 선거법을 준비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복수정당, 독립적인 사법부 등을 갖춘 민주국가의 탄생을 원하고 있어, 향후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의 관계에도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새로운 국가를 추구하는 반군과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정부군 간의 충돌로 리비아에는 한동안 유혈사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이로 대학 아랍어과 무함마드 유수프 교수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할 것"이라면서 이번 사태를 전망했다. 튀니지의 사례가 압정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역사적으로는 물리력에 약한 모습을 보여 왔지만, '이길 수 있는 싸움'에는 아랍 민중도 집착한다는 것이다.

 

도미노처럼 확산하는 아랍의 민주화 시위는 무력 독재의 두려움이라는 족쇄를 부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리비아에서 새로운 방식인 무장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랍권에서는 한 동안 혁명적 과격성과 반혁명적 과격성이 맞부딪히면서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 한 번의 평화적 정권이양의 경험이 없는 아랍 민중에게 그 혼란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타협점이 현재보다는 훨씬 더 나은 상황에서 마련될 것이라는 점이다. 최소한 물리력에 바탕을 둔 강압적인 절대주의 군부독재나 군주제는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가 집필한 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34-1호입니다.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코리아연구원(연구기획위원장: 이정철)은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로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분야의 국가전략 및 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홈페이지(www.knsi.org) 또는 전화(02-733-3348)로 회원 등록 및 후원하실 수 있으며, 회비 및 기부금은 공익성기부금으로 인정되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네트워크 코리아연구원과 아름다운 동행을 권합니다. 

2011.04.12 13:44ⓒ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가 집필한 코리아연구원 특별기획 34-1호입니다. 홈페이지(www.knsi.org)에서 원문 및 다양한 정책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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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민주화 #다국적군 #코리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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