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대웅전, 마치 범선이 우주를 나는 것 같네

산사에서의 하룻밤, 1박 2일의 미황사 여행

등록 2011.04.13 11:50수정 2011.04.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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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이 있고 산사가 있고 그리고 매화가 있는 곳. 마음속으로만 그려왔던 사찰을 직접 거닐 수 있고 그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대단한 축복이다.

지난 3월 21일과 22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미황사(美黃寺)가 있는 해남으로 갔다. 파주로부터 멀고도 먼 길이다. 버스로 5시간을 달려서 나주를 지나니 봄기운에 점퍼가 버겁다. 차창 밖 논밭의 보리들이 이미 한 뼘의 초록으로 자라 남도의 야트막하고 아름다운 정취를 더 해 준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 이 먼 길을 걸어서 걸어서, 혹은 말 등에 앉아 여행했으리라. 차창 밖으로 보는 것보다 더 짙은 보리밭의 초록과 생명의 기운을 받으면서···.


해남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곱게 단장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과 눈이 마주쳤다. 새 옷을 차려입고 소박하게 화장하신 모습이 봄볕처럼 곱다. 오늘이 해남장날이란다. 해남 장날 풍경을 살피고 싶은 욕심을 다스렸다.

해가 지기 전에 의도했던 미황사를 마음에 담는 일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 중에서 하나를 놓아야 된다는 것은 항상 쉽지 않은 결정이다. 놓는 일에 무심해지려면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할까···.  단호하게 미황사행 버스에 올랐다.

 해남장날에 곱게 단장하고 나오신 아주머니와 할머님
해남장날에 곱게 단장하고 나오신 아주머니와 할머님 강복자

미황사로 들어서자 바로 대웅보전과 그 너머의 병풍을 두른 듯한 달마산의 전경이 대웅전 기와 너머로 보인다. 웅장한 기암절벽을 휘두르고 있는 장엄한 대웅전은 너무나 위엄이 있어 보인다.

 기암절벽으로 병풍을 두른 해남 미황사
기암절벽으로 병풍을 두른 해남 미황사 강복자

가는 봄비에 젖은 담장위의 청매화 한 그루. 봄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랑비 속에서도 매화 향은 짙기만 하다.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청매화 한그루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청매화 한그루 강복자

 봄비에 몸을 적시고도 향기를 멈추지 않았다.
봄비에 몸을 적시고도 향기를 멈추지 않았다. 강복자

한적한 산사에서 몇몇 신도들이 부처님께 인사를 올린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니 몸이 무겁다. "세상의 묵은 짐을 다 지고 올라왔구나!" 스스로 마음을 내려 놓는다. 새 울음소리만 들리는 이곳에 세상의 묵은 짐을 지고 온 내가 미안하다.


 부처님을 만나고 자신을 직시하게 되는 법당
부처님을 만나고 자신을 직시하게 되는 법당 강복자

수행자들이 모두 두 손을 앞으로 다소곳이 모으고 조용한 걸음으로 내면을 응시하며 걸어가고 있다.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참나'를 찾아서 공부하는 도반들, '참사람의 향기'라는 특별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하신 분들이다((미황사에서는 일반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7박 8일간 산사에서 법문, 다도, 묵언하는 참선수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미황사의 대웅보전과 요사채
미황사의 대웅보전과 요사채 강복자

산사에 어둠이 찾아오고, 달마산이 감산 미황사에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다. 달마산은 이렇듯 매일 묵언 수행하니 산이 산이 아닌 것이다. 묵언이 웅변보다 더 강한 기운으로 나를 감싼다. 그리고 나를 깨어나게 한다.


 텅 빈 밤의 산사에 오히려 충만을 느낀다.
텅 빈 밤의 산사에 오히려 충만을 느낀다. 강복자

푸른 어둠속에 대웅보전만 불을 밝힌 모습을 보니 마치 범선이 우주를 나는 모습이다. 그 범선에 올라 해탈의 세계를 유영하고 싶다. 비에 씻긴 맑은 매화향기만 가득한 산사의 밤. 이 산사에 머물다 가신 옛 선사님들의 마음이 내 마음에 투영된다.

"고독이란 타인으로부터 자기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빗장을 치는 것이다."- '산사에서 부친 편지'중에서

문제와 해답은 타인과 밖이 아니라 자신과 그 빗장을 친 자신 안에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와 답은 스스로 빗장을 친 그 안에 있기 마련이다.
문제와 답은 스스로 빗장을 친 그 안에 있기 마련이다. 강복자


달마산을 휘돌아 대나무숲을 흔들고 내게 다가온 소슬한 바람이 말했다.
"'해탈'을 향한 그 열망도 욕심이니 그것조차 내려놓으라."

 해탈의 열망도 욕심이다.
해탈의 열망도 욕심이다.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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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복자

#미황사 #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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