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진실의 시계'는 아직도 항해 중

[서평] 물리학자 이승헌의 진실 찾기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등록 2011.07.26 17:22수정 2011.07.2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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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은 전문가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이 아니고 상식과 양심이 필요한 사건이다"

양심, 진실, 진상규명, 상식, 소통 등.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는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그의 책을 통해 과학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와 한 가족의 가장이 겪어야 할 책임감을 동시에 이야기하며 위와 같은 불편한 용어들을 내내 쏟아냈다.


이 교수가 책 말미에 언급했던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이거나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옛 고어가 이처럼 뼈 속 깊이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천암한 사건이 지금은 잠시 잊혀져가는 하나의 비극적 사건에 불과할지라도 끝내 밝혀져야 될, 아니 거대권력의 음모 속에서 가려진 숨은 진실을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역사적 순리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천안함,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다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표지. 이승헌 교수는 책을 통해 토로했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했던 일이지만 요즘 해내야 하는 일은 고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때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무척 위안이 되었다"고.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표지. 이승헌 교수는 책을 통해 토로했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했던 일이지만 요즘 해내야 하는 일은 고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때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무척 위안이 되었다"고.창비
한 가정의 자상한 아빠에서 거대 권력에 맞서 숨겨진 과학적 진실을 파헤쳐가는 투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히 책을 통해 그려낸 이승헌 교수. 그도 투사가 되기 이전에 평범한 학자이자 소시민이었기에 지난 1년여간의 과정은 그야말로 악전고투, 위험천만의 나날이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가 말했듯,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런 사건에 스스로 뛰어들어서, 가정도, 전공 연구도, 심지어 직업마저도 포기할 각오를 하고 이 사건에 천착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영웅적 심리도 아닌, 그리고 학자로서의 기질도 아닌, 또한 저항정신에 매몰된 투사적 심경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상식과 양심이면 누구도 알 만한 사건이 이렇게 묻어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듯, 책 서두에 "나의 학업을 위해 온갖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부모님께 이 글을 바친다"고 성토한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실하게 학업에만 열중해 명문대에 입학하며 승승장구를 걸어오던 그가 이 책을 집필할 수밖에 없었던 명운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책을 통해 천안함을 추적하는 과학자의 양심으로써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유수한 전문가와 유명 언론인, 그리고 수많은 연구와 검증 실험을 토대로 그의 과학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일부 보수언론과 권력층에 의해 쉽게 무시당하거나 좌파지식인으로 매도당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어디까지나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풀려고 했던 한 물리학자는 이런 오류의 함정에 빠지게 된 한국사회의 집단이성의 한계를 고발하면서 "더 이상 과학이란 이름으로 사건의 진상을 더럽히지 말라"는 성토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며 학자는 이명박 정부의 군부독재 시절과도 비슷한 혹세무민 여론몰이를 질타하며 "과학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우숩게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천안함 검증 능력

이승헌 교수는 천안함 검증에 있어서 무엇보다 서운하고 아쉬웠던 점은 한국 메이저급 보수신문의 철저한 왜곡과 침묵, 그리고 한국 과학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 부족을 꼽았다. 반면 <프레시안> <서프라이즈>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의 심층보도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진실한 언론의 힘은 권력 앞에서 더욱 빛난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어 일본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만났던 <뉴욕타임즈> <네이처> <AP통신> <재팬포커스> <도쿄신문> <로스앤젤레스타임즈> <워싱턴타임즈> <싱가포르비즈니스타임즈> <주간 아사히> 등의 신문기자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국내보다는 국외에서의 뜨거웠던 반응과 보도열기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고 회억하기도 했다.

특히 최초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던 러시아 조사단의 결론(천안함이 먼저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 좌초했고 깊은 물로 가려다가 무언가 사고가 일어나 천안함이 세 동강 났다. 스쿠루 날개의 변형상태가 그랬다) 전문이 끝내 발표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했다.

또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의 실험정신(1번 마크가 토치의 불꽃으로 쏘이면 금방 타버리는 것과 금속판들이 50일간 바닷물 속에 있어도 거의 녹슬지 않는 것을 실험했다)을 칭찬하며, 박사학위가 필요 없는 진짜 박사라고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인간적인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진실은 숨길 수가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

"세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6개월간의 치열했던 검증기간 동안 이승헌 교수에게 남은 건 교수로서의 불명예와 타인에 대한 본의 아닌 피해의식,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뿐이었다. 건강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마저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던 그의 고단한 일상에서 그를 잡아주고 버티게 한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이었다.

"아내가 차를 몰았다. 두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잠이 들었다. 아내는 동물원 구경도 했고 좋은 분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면서 참 괜찮은 주말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이승헌 교수는 책 말미의 에필로그를 통해 "나의 학자적 소명과 책임은 이제 이걸로 끝이 났다"며 가족들과 재회한 순간의 행복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진실! 그 하나의 질긴 인연 때문에 이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가족과의 행복도 과감히 포기해야 했던 이승헌 교수는 지금 또 다른 전공연구에 더 없는 행복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평안한 행복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 선에선 유통기한을 두고 있음에 틀림 없 을 것이다. 그에게 영원한 안식일과 같은 영원한 행복도취는 바로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이 분명하기에.

덧붙이는 글 |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이승헌 씀, 창비 펴냄, 2010년, 13800원)


덧붙이는 글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이승헌 씀, 창비 펴냄, 2010년, 13800원)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 물리학자 이승헌의 사건 리포트

이승헌 지음,
창비, 2010


#이승헌 교수 #천안함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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