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일을 해나가는 제 부인을 위해 건배"

등록 2011.10.10 14:57

수정 2011.10.10 14:57

지난 8일, 헤이리 갤러리 이레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상상정원'이라는 최현주 작가의 초대전이었습니다.

그의 화폭에는 경이로운 현상들이 가득했습니다. 나뭇가지 위에는 계란프라이가 꽃으로 피어있고 그 가지사이에는 벌새들이 신명난 비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브로콜리가 거대한 행성으로 우주에 자리 잡고 그 주위에는 오징어와 멸치와 멀리 다른 행성들이 유영하고 있습니다.

접시 위에 물이 담기고 또 다른 브로콜리 두 개가 마치 B612의 소행성을 망칠 듯한 거대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습니다. 접시의 물 위에는 침몰중인 초계함이 이미 반이 물에 잠겨있고 멀리 잠수함의 꼬리가 물 밖으로 살짝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접시 위의 물은 바다가 되고 그 화폭은 지난해 3월 백령도 해상에서 있었던 한 초계함 침몰사건의 현장이 되어 불행을 증언하는 반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접시 위 물은 연못이 되었습니다. 수양버들 아래에서는 반가사유상이 사유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화폭의 기본 이미지는 모두 부엌과 정원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뛰어난 그래픽 능력과 색조의 구사, 화폭 위 대상의 치환은, 부엌과 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출발한 상상은 빛의 속도로 우주를 유영하게 됩니다. 마침 최현주 작가가 제 옆에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못할 게 없군요. 일용할 요리뿐만 아니라 벌새가 되어 세상을 완상하고, 우주를 유영하고, 다시 현실을 비판하다가 막히면 다시 사유에 빠지면 됩니까?"
"맞아요. 부엌에서 모두 일어난 일들이에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아닙니다. 주부라면 생각하는……."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여자이고 그 중에서 절대다수가 주부이지만 부엌에서 이런 유쾌한 반란을 꿈꾼 것은 선생님이 유일하지 않아요?"
"……."

최현주의 '상상정원'. 그것은 동양화의 유쾌한 반란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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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내려온 저는 오프닝 파티가 막바지에 접어든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정말 오늘 이자리가 기쁩니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40대의 여자가 매일 저녁상을 잘 차려놓고 남편이 들어오기만를 기다리고 있다면 제가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가지고 나가는 제 부인을 위해 건배를 제의합니다. 모두 저의 아내를 위해 술잔을 높이 들어주세요."

기분 좋게 건배를 마친 일행들은 이 부부에게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러브샷!, 러브샷!"

이 부부는 기꺼운 답례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자신의 세계를 갖도록 지지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도록 등을 떠미는 이렇게 멋진 대한민국의 남편이 있다는 것에 저조차 벅찬 가슴이 되었습니다. 최현주의 남편인 이 멋진 남자는 중견한국화가인 박병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