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선배에게 '쌍권총'... 술 취해 그랬어요

[회식 잔혹사①] 신입사원 시절, 허리에 술병 차고 술잔을 돌리다

등록 2012.10.11 15:51수정 2012.10.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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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만 하려 했는데 작심하며
그만두려 했는데 한잔 술이

또 한잔 술이 거나하게 취하는구나 (중략)


그런저런 사연을 접고 거시기가 떠나간다네
애간장을 녹이는 술아 어디 한번 취해 볼 거나

이래서 마시고 저래서 끊을 수 없는 술. 가수 김성환은 <술아 술아 술아>를 통해 술의 애환을 이렇게 노래했다.

난 술을 좋아한다. 아니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아직도 술을 끊지 못하고 있다. 진한 술이 맑은 물보다 좋은 이유다. 하지만 어릴 땐 병나발을 불던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 술만 드시면 술로 서러운 인생을 한탄하시며 술주정하던 아버지는 결국 술 때문에 건강을 잃었다.

그래서 나는 크면 술은 절대 안 먹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난 영락없이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일까? 나에겐 아직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헉... 지금까지 마신 술이 6552병?


a  회식자리(자료사진)

회식자리(자료사진) ⓒ 장지혜


지금까지 내가 마신 술은 얼마나 될까? 글을 쓰면서 내가 마신 술의 양을 대충 환산해 보기로 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볼 때 난 1년에 최소 312(주량 2병*주3회* 1년 52주)병 쯤은 마시는 것 같다. 지인들을 만날 때나 회식할 때 가는 2차는 빼고 말이다.

이런 계산법에 의하면 성년이 된 이후 21세부터 지금까지 마신 술은 약 6552병은 족히 넘을 것 같다. 이쯤 되면 난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주류세로 낸 세금으로 치면 모범납세자가 아닌가?


어느덧 직장생활을 한 지도 20여 년이 넘었다. 군을 제대하고 난 일찌감치 대기업에 입사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여수산단에 위치한 석유화학 공장이다. 석유화학 공장은 타 업종에 비해 항상 위험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비교적 높은 임금 속에 근로조건 또한 좋은 편에 속한다.

일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 교대근무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서 산업역꾼들에게 직장생활의 꽃은 '회식자리'가 아닐까 싶다. 입사 초년병 시절 참 추억이 많다. 직장상사 그리고 선후배님과 함께 하는 회식자리는 그야말로 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니던가? 당시 난 술 자리에는 빠지지 않을만큼 술을 좋아했다.

비록 지금은 주량이 반으로 줄었지만, 한때는 좀 날렸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노랫말처럼 술 좀 먹을 줄 아는 놈. 안주 오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뭐 그런 반전 있는 놈이었다. 그래서 술이 떡이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를 외치며 2차, 3차를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뭐 지금으로 말하면 <강남 스타일>로 일탈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직장에 입사해서의 일이다. 신입사원 교육을 이수하고 각 부서로 발령받았다. '오리엔테이션' 시간, 그날은 부서 내 교대근무를 하던 많은 분들이 회식에 참가했다. 50여 명의 부서원 중 약 40여 명이 참석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해도 교대근무 특성상 근무 조가 다르면 함께 만날 수 있는 날이 드물다. 이날은 모처럼 선후배지간 얼굴을 보고 술 한 잔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다.

잊을 수 없는 오리엔테이션... 선배님께 쌍권총을 쏘다

a  술은 처음 사람이 좋아 술을 마시지만 점차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셔버리는 게 술자리의 끝이다. 2차로 가는 주점이 모여 있는 여수 번화가의 모습

술은 처음 사람이 좋아 술을 마시지만 점차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셔버리는 게 술자리의 끝이다. 2차로 가는 주점이 모여 있는 여수 번화가의 모습 ⓒ 심명남


당시 회식을 하면 '공포의 까막주'가 인기였다. 까막주는 소주를 글라스에 75%쯤 채우고 나머지 콜라를 섞는 것. 정말 술이 술술 넘어간다.

하지만 잔을 돌리면 그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 두어 잔만 먹고 나면 아무리 술 좀 먹을 줄 아는 사람도 정신이 몽롱해진다. 혹자는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실로 공포의 술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까막주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분들은 절대 두 잔 이상은 마시지 마시라. 도로에 누워 주무시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날 많은 선배님들은 신입사원이 왔다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나에게 술을 권했다. 어차피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도 없는 노릇. 취기가 돌자 술병을 허리에 찬 난 선배님들께 원턴으로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선배님 잘 부탁 드립니다. 저는 신입사원 000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겐 주량보다는 패기가 우선이었다. 40여 명의 선배님께 술을 돌리고 나자 정신이 몽롱해졌다. 술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에는 사람이 좋아 술을 마시지만 점차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셔버리는 게 술자리의 끝이다.

이후 신입사원의 화끈함이 맘에 든다며 거하게 2차도 갔다는데 난 별로 기억이 없다.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식 때 맛있게 먹은 산해진미를 도로 입으로 다 반납했다고 한다. 게다가 선배님들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이튿날 속도 쓰리고 머리가 욱신욱신 아팠다. 허나 후회막심.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후 난 '쌍권총'으로 통했다. 신입사원이 허리에 총이 아닌 술병을 차고 겁 없이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께 술을 쏘아 대었으니. 세월이 흘러 벌써 20여 년 전 추억이 됐다.

요즘에야 음주문화가 많이 달라졌지만 서로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마음과 마음을 나누던 그때. 그래도 술자리에서만큼은 훈훈한 사람의 정을 느끼던 그 시절이 지금도 그립다.

고산 윤선도는 올바른 주법에 대해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난(亂)하고, 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되어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춘 바른 태도를 지녀야 한다"라고 했다.

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이 세상. 덕과 예는 차지하더라도 정작 술이 없다면 오늘 난 무슨 낙(樂)으로 살꼬?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술 #강남스타일 #쌍권총 #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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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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