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해결을 위해 87분서 경찰들이 움직인다

[리뷰] 에드 맥베인 <아이스>

등록 2013.03.20 11:59수정 2013.03.2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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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스> 겉표지

<아이스> 겉표지 ⓒ 검은숲

고전추리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 탐정인 경우가 많다. 그것도 뛰어난 분석력과 추리력으로 사건의 진상을 한번에 꿰뚫어보는 그런 탐정들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침실이나 거실에 앉은 채로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주는 이야기만 듣고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도 있다. 직접 사건현장에 가보지 않고도, 직접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지 않고서도 범인을 밝혀내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다가가지 못할 천재형의 탐정들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식으로 사건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의 경우 한명의 뛰어난 탐정보다는 여러 명의 평범한 수사관이 움직이면서 범인을 추적한다. 여러명이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역할분담도 철저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관도 있을테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목격자를 탐문하는 경찰도 있을 것이다. 또 함정수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범행현장에서 미끼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 미끼를 도와주는 형사도 있을 것이다.

한 도시에서 발생한 연속살인

에드 맥베인의 1983년 작품 <아이스>는 작가의 '87분서 시리즈'의 한편이다. 이 시리즈에는 시리즈명에서 알 수 있듯이 87분서에 근무하는 경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경찰들의 나이와 계급, 성별도 모두 제각각이고 개성도 다양하다. 결혼해서 처자식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형사가 있는가 하면, 부인과 이혼하고나서 자살을 꿈꾸는 경찰도 있다. 모델을 연상하게 만드는 빼어난 외모의 여성도 있다.

이들은 모두 87분서 안에서 발생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스>에서는 추운 겨울날 한 젊은 여성이 총을 맞고 얼어붙은 거리 위에 쓰러진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이 여성을 공격한 총알이 예전에 87분서 관할구역에서 일어났던 마약상 살인사건에 쓰인 총알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렇게해서 사건은 87분서로 넘어온다. 스티브 카렐라라는 이름의 형사가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고 그는 피해여성의 남자친구를 포함한 주변인물들을 만나면서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죽은 여성과 그 이전에 살해당한 마약상과의 공통점이 없다. 같은 총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는 것만 제외하면.

죽은 여성은 극장에서 무용수로 일을 해왔고 평소에 마약에 손을 대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동일범에 의한 범행이라면 그리고 소위 말하는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면 피해자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87분서 형사들이 여기에 촛점을 맞춰서 수사를 계속하는 도중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작가가 보여주는 경찰들의 모습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꽤 역사가 오래된 시리즈다. 첫 작품인 <경찰혐오자>가 발표된 것이 1956년이니 작가는 그 이후에 수십 년 동안 수십 편의 87분서 시리즈를 써온 것이다. 많은 경찰들이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시리즈다

그런만큼 작가는 작품 내에서 경찰서의 평소 풍경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유치장에 갇힌 주정뱅이들은 계속 소란을 피우면서 구토를 한다. 무슨 이유인지 경찰서에 끌려온 임신한 매춘부는 온갖 욕설을 늘어놓으면서 자기를 내보내달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만 본다면 경찰서는 평소에도 무척 정신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만 없다면 경찰들은 사무실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고 피자를 먹으면서 온갖 주제로 수다를 떤다.

현실에서 경찰들의 수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시리즈에서 묘사하는 방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는 천재적인 탐정도 없고 불세출의 범죄자도 보기 힘들다. 한명의 범인을 잡기 위해서 많은 경찰들이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증거를 추적하고 함정을 만들면서 조금씩 수사망을 좁혀가는 것이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 발표된 1956년은 흔히 말하는 고전추리소설의 황금기가 지난 이후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논리와 추리로 무장한 탐정들의 전성기도 지난 시기였다. 탐정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여러명의 경찰들, 이제 경찰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아이스> 에드 멕베인 지음 / 이동윤 옮김. 검은숲 펴냄.

아이스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
검은숲, 2013


#아이스 #에드 맥베인 #87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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