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동안 활동한 커플탐정, 드디어 은퇴하다

[리뷰] 데이스 루헤인 <문라이트 마일>

등록 2013.03.13 14:19수정 2013.03.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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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라이트 마일> 겉표지

<문라이트 마일> 겉표지 ⓒ 황금가지

동일한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완결되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된다.

시원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리즈가 드디어 완결되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이 시리즈가 언제까지 이어질까'하는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된다.


반면에 섭섭하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조금씩 나이를 먹고 변해가면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활약하던 인물들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독자들의 입장이고, 작가의 입장이라면 약간 다를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이 시리즈를 이제 끝내야 겠다'라고 마음을 정할 때에는 그에 맞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더 이상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고 예전과 똑같은 모습만을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거나 따라가기에는 인물들이 너무 식상해졌을 수도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시리즈를 끝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인공을 사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에게 지친 나머지, 홈즈가 모리어티 교수와의 대결 도중 폭포에서 떨어져 죽게 만들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살려내기는 했지만.

'모스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콜린 덱스터는 "왜 모스를 죽였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모스는 자연사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사망했건 간에 자신이 창조하고 성장시킨 캐릭터를 자신이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무척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시리즈물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주인공이 작품들 속에서 매번 멋진 활약을 펼치면 독자들은 열광하지만, 문제는 이 시리즈를 언제까지 끌고 가고 어떻게 끝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가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임이 분명하다.

10년 만에 돌아온 켄지와 제나로


데니스 루헤인의 2010년 작품 <문라이트 마일>은 사립탐정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첫 작품인 <전쟁 전 한잔>이 발표된 것이 1994년이니 무려 16년 동안이나 시리즈를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발표된 시리즈의 작품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작가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전쟁 전 한잔>을 시작으로해서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신성한 관계>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 등 총 5편의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미스틱 리버>(2001), <살인자들의 섬>(2003), <운명의 날>(2008) 등 다른 굵직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켄지 & 제나로 시리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10년이 지난 후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발표한 것이다.

그 이유를 한 번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보스턴 부근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그 지역에 살고있는 데니스 루헤인은 자신의 작품 속에 인종차별, 노동운동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뒤섞고 있다. 1919년에 일어났던 보스턴 경찰 파업을 다룬 <운명의 날>이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켄지 & 제나로 시리즈'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단 시작한 시리즈이니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 것이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10년의 외도(?) 끝에 이들을 명예롭게 은퇴시키기 위해서 다시 켄지와 제나로에게 돌아왔다. 시리즈의 주인공은 패트릭 켄지와 안젤라 제나로라는 남녀 커플이다. 처음에 이들은 파트너이자 친구사이였지만 <문라이트 마일>에서는 결혼해서 4살된 딸이 있는 부부로 등장한다.

세월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이들은 어느새 40대 초반의 중년이 되었다. 사립탐정 일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는지 켄지는 다른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서 활동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못해서 켄지는 제나로에게 "낮에 노동일이라도 찾아보지 뭐"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 켄지 앞에 과거의 인물이 나타난다.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켄지와 제나로는 행방불명된 4살 여아 아만다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때 자신에게 사건을 의뢰했던 당사자가 다시 나타나서 이번에도 역시 아만다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성장한 아만다는 얼마후면 17세가 된다. 곧 성인이 되는 나이지만 켄지는 뭔가 불길한 감을 느끼고 이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켄지와 제나로의 마지막 모험

16년 동안 한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현장에서 피투성이 시체를 봐야하는 범죄의 세계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일을 오래하다보면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멍한 기분만 들뿐. 켄지의 표현처럼 '20년을 똥통에서 구른 대가'인 셈이다.

그 세월 동안 켄지와 제나로도 조금씩 지쳐갔을 것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어떤 잔인한 일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동안 의미있는 일도 많이 했지만 그안에서 지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문라이트 마일>의 마지막 장면에서 켄지는 탐정업무를 그만하겠다고 말한다. 20년 가까이 범죄자들을 상대로 활약했고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었으니 좀 다른 일을 하면서 쉬는 것도 괜찮다.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이해가 된다. 독자들이 이제 이들을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켄지와 제나로가 그리워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문라이트 마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문라이트 마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13


#데니스 루헤인 #문라이트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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