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유혜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2년 7개월이 넘었지만, 사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원전 앞바다로 방출하고 있다. 또한 원전사고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피난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할까? 현재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엄청나게 많은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전을 만든 제조회사에는 책임이 없을까?
후쿠시마 원전 제조사는 히타치, 도시바, GE 3개 회사. 이들 회사는 일본 현행법에 의하면 원전사고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일본 원자력손해배상법에는 제조 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사고의 책임을 전력회사뿐만 아니라 원전제조사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주장만 제기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도 시작되었다.
후쿠시마 참사 모른 척 하는 히타치, 도시바, GE지난 2012년 11월 10일 창립된 탈핵아시아행동(No Nucks Asia Action, NNAA)는 원전제조사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NNAA는 이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1만인 원고 모집에 나섰다. 소송 시기는 2014년 1월 말로 잡고 있다.
소송에 참여하는 원고는 일본에서만 모집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 '후쿠시마사고 원전제조사 세계1만인 한국소송단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원고 모집에 나섰다. NNAA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핵발전소가 건설되었거나 건설을 추진하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원고를 모집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20세기 중반 이래 계속되어 온 핵시대의 위험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지구에서의 삶을 위해 우리는 탈핵시대로 가야 하기에 핵사고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원전제조사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세계 1만인 시민소송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 팸플릿에서 일본의 현행법상 원전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데도 소송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사람은 시마 아키히로 변호사. NNAA는 시로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송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3일, 시로 변호사는 '후쿠시마 원전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에 대한 설명회를 열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6살 때부터 로큰롤 가수로 활동을 시작, 26년 동안 6개의 음반을 낸 시로 변호사는 로큰롤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3년 전 변호사로 변신했다.
23일 오후 6시, 경기도 군포의 군포환경자치시민회 사무실에서 시로 아키히로 변호사를 만났다. 통역은 최승구 NNAA-J 사무국장이 했다.
편안한 복장으로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는 해골 문양의 두꺼운 반지를 낀 시로 변호사는 변호사라기보다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예술가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굵으면서 맑아 듣기 좋았다. 최승구 국장은 "가수 출신이니 목소리가 좋은 건 당연하다"고 거들었다.
1년 전인 2012년 10월, NNAA 창립총회를 앞두고 시로 변호사와 최 국장은 처음 만났다. NNAA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책임을 도쿄전력뿐만 아니라 히타치, 도시바, GE에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한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현행법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런데 시로 변호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던 것.
"원자력손해배상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 누구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 법은 피해자 보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원자력 사업의 발전이 목적이었다. 법 자체가 헌법 위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전제조사 소송은 헌법소원이라고 할 수 있다.""원전제조사는 책임 안 진다? 그 자체가 헌법 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