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던 사도 베드로 첫마디 "주님 어디 가세요"

[유럽착한여행①] 죽음의 도시 카타꼼베를 가다

등록 2014.01.29 21:45수정 2014.01.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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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넷통>에서 기획한 8박10일 유럽 3개국(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을 둘러보는 착한여행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이 이태리 로마에 도착한 모습.

<여수넷통>에서 기획한 8박10일 유럽 3개국(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을 둘러보는 착한여행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이 이태리 로마에 도착한 모습. ⓒ 심명남


내가 한 직장을 근무한 지도 20년을 넘겼다. 세월이 참 쏜살같다. 20대 새파란 청춘에 입사해 어느덧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유럽여행은 내 형편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여행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힘 있을 때 떠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난 지금껏 교대근무를 천직으로 여긴 탓에 20년을 넘게 밤과 낮이 바뀐 삶을 살고 있다. 그 세월을 무탈히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아내의 내조가 컸다. 그동안 교대근무는 내가 했지만 늘 내조한 아내 역시 교대근무를 함께한 셈이다. 그래서 입사 20년차를 기념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소매치기 '집시'보다 한수 위..."이눔아 한국사람은 안속아"

지난 17일 새벽 3시 20분, 알람이 울어댔다. 여수엑스포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일행 23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향했다. 이번 여행은 <여수넷통>에서 기획한 8박10일 유럽 3개국(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을 둘러보는 착한여행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가톨릭의 본산지 바티칸 박물관을 시작으로 협동조합의 산실인 볼로냐와 스위스 인터라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인터넷 언론사 등을 두루 둘러봤다. 유럽을 알고 떠나자며 여행준비부터 2번에 걸친 유럽 강연까지 단장님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밟았다. 불경기라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보도와 달리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의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팀은 첫째로 탑승 수속을 밟았지만 끝나고 나니 2시간 반을 훌쩍 넘겼다.

탑승수속 과정에서 보안검사가 까다롭다. 얼마 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폭탄테러가 발생해 보안검색을 강화한 까닭이다. 평소와 다르게 소지품 검사가 심했다. 100mg이 넘으면 액체용기는 안약조차 일절 허락이 안 되었다. 심지어 휴대폰 보조 배터리도 수화물로 부쳐야 했다. 폭탄테러가 일어나면 여러모로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 여행객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행 첫날 우리가 찾은 곳은 카타꼼베(Catacomb)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된 기독교인들의 무덤이다. 우리로 말하면 '공동묘지'다.

여행 첫날 우리가 찾은 곳은 카타꼼베(Catacomb)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된 기독교인들의 무덤이다. 우리로 말하면 '공동묘지'다. ⓒ 심명남


유럽을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비행시간만 무려 14시간.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경유했다. 11시간이 소요됐다. 이후 이태리행 비행기로 환승해 3시간을 더 달렸다. 기내식 3번을 먹으니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여수에서 출발한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걸린 셈이다.


로마에 도착했다. 4일간 이태리 횡단이 시작되었다. 여행가이드가 반갑게 일행을 맞았다. 현지에서 쑈냐로 불리는 가이드는 첫 만남에서 가방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수차례 늘어놓았다. 여행객의 짐을 노리는 '집시'는 유럽여행의 복병이다. 여행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룹으로 움직이는 집시는 공항 도착부터 호텔체크인 그리고 아침식사할 때 여행객의 가방을 노린다. 쑈냐도 3번에 걸쳐 털렸단다. 가이드의 말이 설마 했지만 실제 우리 일행도 집시에게 당했다. 교단에서 정년퇴직한 최 선생님은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그가 에펠탑 관광에서 겪은 체험담이다.

"가이드들이 그렇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했지요. 저는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활용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백팩을 준비했죠. 누가 가져가도 아무런 쓸모없는 그런 것만 가지고 올라갔지요. 아내와 망원경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유럽 사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때 한 남자가 끼어들고 여자가 작업한 거예요. 한 남자만 알고 두 일행은 몰랐죠.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깜짝 놀라서 보니 가방에 자크 3개가 다 열려있는 거예요. 근데 거기에는 여권도 없고 현금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함정이었어요. 그놈이 얘기하기로 소매치기도 못해보겠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눔아! 한국 사람들은 너희 소매치기한테 속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는데 이미 가버리고 없는 거예요.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유럽여행에서 집시는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성지 '카타꼼베'를 가다

카타꼼베 내부 카타꼼베는 지하 5층까지 들어가 기독교인들의 무덤과 은신처로 사용됐다.

카타꼼베 내부 카타꼼베는 지하 5층까지 들어가 기독교인들의 무덤과 은신처로 사용됐다. ⓒ 심명남


 카타꼼베 입구에는 당시 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PX, 알파.오메가, 물고기 모양은 당시 그리스도인의 밀어로 사용되었다.

카타꼼베 입구에는 당시 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PX, 알파.오메가, 물고기 모양은 당시 그리스도인의 밀어로 사용되었다. ⓒ 심명남


 기독교인들의 은신처인 카타꼼베는 지하 5층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그 길이만 12km, 14km, 18km의 무덤이 남아있다.

기독교인들의 은신처인 카타꼼베는 지하 5층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그 길이만 12km, 14km, 18km의 무덤이 남아있다. ⓒ 심명남


첫 여행에서 우리가 찾은 곳은 카타꼼베(Catacomb)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된 무덤을 의미한다. 우리로 말하면 '공동묘지'쯤 된다.

이천년 전 폭군 네로 황제는 5명의 못난이 황제에 속한다. 네로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고 시상을 써본 적이 없다"면서 불타는 도시를 상상한다. 결벽증이 있었는지 그리스처럼 바둑모양의 깨끗한 로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그는 서민들이 사는 빈민가에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군사들을 시켜 몰래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르게 한다. 장난으로 시작한 불은 로마 전체 2/3를 태우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이후 원로회(지금의 국회)에선 청문회가 열려 범인 색출이 시작된다. 궁지에 몰린 네로는 이를 기독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붙인다. 당시 로마가 많은 식민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의 풍습과 종교를 인정해줘서였다. 그때 30만개의 신이 있었단다. 그런데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시절 네로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몰고 갔다. 네로가 저지른 죄를 기독교가 덮어쓴 셈이다.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기독교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다. 또 기독교인을 도망가게 해놓고 사자와 맹수를 풀어 팔, 다리를 뜯어 죽게 했다. 교인들이 훼손된 시신을 가져다 카타꼼베에 묻어준다. 탄압이 심해지자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본격적인 은신처로 삼아 지하 5층까지 파들어 간다. 지금도 그 길이만 12km, 14km, 18km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비우스클라우스 집정관 시절 만든 세계최초 군사도로위로 성벽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사도베드로가 그리스로 도망을 가다 예수님과 마주친다.

아비우스클라우스 집정관 시절 만든 세계최초 군사도로위로 성벽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사도베드로가 그리스로 도망을 가다 예수님과 마주친다. ⓒ 심명남


 사도베드로가 그리스로 도망을 가다 예수님과 마주친다. 베드로가 한말, 도미네 쿠오바디스 (주님 어디 가세요?)가 조각되어 새겨져 있다.

사도베드로가 그리스로 도망을 가다 예수님과 마주친다. 베드로가 한말, 도미네 쿠오바디스 (주님 어디 가세요?)가 조각되어 새겨져 있다. ⓒ 심명남


카타꼼베를 가는 길에 1800년 전 만들어진 성벽이 보였다. 이곳은 로마가 더 이상 식민지 개척보다 있는 것이나 잘 지키자며 도시를 수비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아비우스클라우스 집정관 시절 만든 세계 최고 군사도로란다. 이 길을 따라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로 도망을 가다 예수님과 마주친다. 뻘쭘해진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다.

"도미네 쿠오바디스 (주님 어디 가세요?)"
"네가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로마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다."

이후 사도 베드로는 큰 깨달음을 얻어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되돌아 간다. 그 역시 십자가에 못박혀 사형을 당한다.

당시 무덤은 검은자들의 죽음의 도시를 뜻하는 네트로 폴리스로 불렸다. 그래서 교회를 믿지 않는 일반인들은 함부로 갈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무덤에 묻히면 끝이 아닌 천국으로 간다는 소망이 있기에 그곳에서 믿음으로 예수를 섬긴다. 갖은 탄압과 은둔의 삶속에서 종교를 버리지 않고 목숨과도 바꾸지 않은 이들의 구원에 대한 확신에 감탄이 절로난다.

체칠리아 무덤 당시 기독교가 금지된 시절 황제 여동생 체칠리아가 기독교를 믿는 사실이 알려진다. 이를 불쌍히 여긴 황제가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것을 요구했지만 여동생은 이를 거부한다. 결국 그는 목이 잘리고 마는데 지금도 카타꼼베의 성녀로 남아 있다.

체칠리아 무덤 당시 기독교가 금지된 시절 황제 여동생 체칠리아가 기독교를 믿는 사실이 알려진다. 이를 불쌍히 여긴 황제가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것을 요구했지만 여동생은 이를 거부한다. 결국 그는 목이 잘리고 마는데 지금도 카타꼼베의 성녀로 남아 있다. ⓒ 심명남


 당시 재력가인 알렉산드라(Alexsandra) 귀부인이 많은 기부를 하고 아들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 살아 있을 땐 돈이 있어 영향력을 행사해 존경의 표시로 관에 조각을 열심히 해줬으나 그가 죽자 대충 돌로 관을 덮어 버렸단다. 살아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재력가인 알렉산드라(Alexsandra) 귀부인이 많은 기부를 하고 아들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 살아 있을 땐 돈이 있어 영향력을 행사해 존경의 표시로 관에 조각을 열심히 해줬으나 그가 죽자 대충 돌로 관을 덮어 버렸단다. 살아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 심명남


카타꼼베 입구에는 당시 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PX, 알파.오메가가 바로 그것. 당시 익투스, 물고기 모양은 그리스도인의 밀어로 사용되어 서로를 확인했다. 이후 313년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정식 종교로 공인되며 탄압이 사라진다. 지금은 기독교인의 순례지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한국에는 정치에 기승하는 '맛이 간' 대형교회들이 많다. 나 역시 한때 교회를 다니다 잠시 쉬고 있지만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신앙'임을 체험하는 계기가 된 듯 싶다. 생사가 오가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 시절 기독교인들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생각해 본다. 늘 처음처럼 한국 기독교의 정화를 주문하며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카타꼼베 #유럽착한여행 #여수넷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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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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