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려고 로마제국 영토 누빈 이유

[장르소설의 작가들 ⑫] 디디우스 팔코 시리즈의 린지 데이비스

등록 2016.02.16 15:03수정 2016.02.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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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여성 작가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애거서 크리스티일 것이다. 엄청난 다작형이었던 그녀는 70편에 가까운 장편소설을 남겼다.

그 외에도 많은 여성 작가들이 있다. <나인 테일러스>의 도로시 세이어스, 좀 더 현대로 올라오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잘 알려진 엘리스 피터스,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의 퍼트리샤 콘웰 등이 그런 작가들이다.


'디디우스 팔코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린지 데이비스(1949~ )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작품은 독특하게도 서기 1세기의 로마를 무대로 한다. 디디우스 팔코는 로마제국을 뛰어다니는 사립탐정으로 등장한다.

서기 1세기의 로마제국에도 범죄는 넘쳐났다. 폭력과 사기는 물론이고 잔인한 살인사건도 많았다. 주인공인 디디우스 팔코는 이런 사건들을 의뢰 받아서 수사하고 얼마 되지 않는 수수료로 먹고 사는 젊은이다.

역사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

a <실버 피그> 겉표지

<실버 피그> 겉표지 ⓒ 황금가지

이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인 <실버 피그>는 1989년에 발표된다.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공무원으로 일했던 작가 린지 데이비스는 오래전부터 역사소설 읽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작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자신을 매료시킨 소재 또한 역사였다.

작가는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일종의 현실 도피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런 방법은 판타지나 여행 또는 과거로 떠나는 것이다. 린지 데이비스는 이 세 가지를 모두 뒤섞는 소설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런 역사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무대는 서기 1세기의 제정 로마. 제국이 번영하던 시기였고 화려한 상류층이 등장했다. 동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급상승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였다. 그 안에는 닳고 닳은 악당들도 수없이 많았다.

작가는 이런 시대를 묘사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번영하던 제국의 위험하고 지저분한 뒷골목을 누비는 사립탐정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했다. 당시에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가는 그 시대 안에 현대 장르소설의 전형적인 사립탐정을 넣으려고 의도한 것이다.


디디우스 팔코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난한 탐정이다. 비좁고 복작대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 6층에서 혼자 살며 그곳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당시에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높은 층에 살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팔코가 다루는 사건도 다양하다. 시리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인 <실버 피그>와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에서 팔코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특명을 받고 로마제국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지기 위해서 제국의 변방을 누비며 활약했다. 일종의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황제의 명령을 수행한 것이다.

반면 세 번째 편인 <베누스의 구리반지>에서는 로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수사한다. 그러면서 다시는 정치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 바닥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아파트와 로마의 뒷골목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팔코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팔코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정면으로 쳐들어갔다가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맞고 거리에 버려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폭삭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눈 앞에서 목격한다. 팔코는 서기 1세기 버전의 하드보일드 탐정인 셈이다.

흥미로운 서기 1세기 로마의 풍경

a <베누스의 구리반지> 겉표지

<베누스의 구리반지> 겉표지 ⓒ 황금가지

작가는 '역사소설을 쓰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라고 말한다.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면 여러 독자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이 그런 공격의 대상이 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 잡고 싶었던 것이다.

이 시리즈를 쓰기 위해서 작가는 당시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독일과 리비아, 스페인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답사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과거가 정확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것도 어렵다. 그러면 역사와 미스터리를 뒤섞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린지 데이비스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독자들과의 소통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편지 등을 통해서 날아오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그래서인지 작가는 말한다. 시리즈를 독자들이 원하는 만큼 빨리 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많은 독자들도 멈추지 않는 탐정 디디우스 팔코를 계속 보고 싶어할 것이다.

실버 피그 - 로마의 명탐정 팔코 1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회성 옮김,
황금가지, 2005


#린지 데이비스 #디디우스 팔코 #역사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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