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현 상봉사진 좌측 동학혁명 기념탑 자리를 관군이 주둔한 상봉으로 추정한다. 사진 오른쪽으로 옛 기념관이 보인다.
이영천
그만큼 신중하게 작전을 짜야 했고, 적의 약점을 적확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감영군을 유인하여 최대한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무기의 열세 등을 고려, 선택의 여지 없이 야간에 기습하는 게 최고 전술이라는 점에 모두의 의견도 일치한다.
혁명 대열에 나선 농민들도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동안 첫 전투를 위한 훈련은 물론 정신 무장도 쉼 없이 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서막...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게 달렸다
혁명군의 다음 목표는 전주다. 하지만 5천 군사라고는 하나, 오합지졸 다름없는 군대로 급하게 전주 점령에 나서기엔 버거운 것도 현실이다. 단 한 번의 싸움에 모든 게 달렸다. 그러함에도 사발통문의 약속이다. 명분을 위해서라도 전주성으로 가야 한다. 백산 대회 5일 후 전주 턱밑 원평까지 진군한다.
이 소식에 전라감사 김문현은 제정신이 아니다. 조정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전주 방어의 요충지인 용머리고개에 무남영군을 배치한다. 건달로 구성된 이들은 깡패집단에 가깝다.
초토사로 홍계훈이 임명되어 4월 초 전주로 출병한다는 소식이다. 김문현은 조정 군대가 내려오기 전, 공을 세우고 싶다. 각 고을에 나졸과 포수 징집령을 내린다. 감영이 보유한 7백 무남영군에 1천 보부상을 합해 토벌대를 꾸린다.
장돌림인 보부상은 2~3명이 한 무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세파에 맞닥뜨린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물미장(지게를 버티는 용도로 사용되는 막대기)은 무기다. 갖은 일에 닳고 닳아 싸움에도 제법 능숙하다.
이들은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며 행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상업행위를 위해 정부에 협조하는 관변 집단이다. 또한 규율이 매우 엄격해 집단의식과 단체행동에선 군대를 능가하는 측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