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아저씨는 소니 디지털 카메라 한 대를 들고 가게로 찾아오셨다. 사진 찍는 취미를 갖고 싶다고 했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카메라를 샀는데 사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사용설명서도 없었고 언뜻 봐도 잘 샀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카메라였지만 사진 찍는 즐거움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사용법을 교육해 드렸다.
첫 촬영지는 각산 봉화대였다.
테스트할 땐 정상이었는데 원거리 핀트 불량이었는지 삼천포 대교와 케이블카 사이로 흐르는 해무의 바다, 그 오묘한 장면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속았다는 생각에 아저씨는 너무 속상해 하셨다. 나는 실망한 아저씨를 달랬다. 그냥 휴대폰으로 찍어보시라고 권해드렸다.
다음 날 아저씨는 그 장소에 다시 가서 휴대폰으로 아침 바다를 찍어왔다. 첫 촬영을 망친 당근 마켓에서 산 중고 카메라를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사진의 기초>를 구해서 읽으시라고 했다.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로 연결해서 함께 보면서 일일이 가르쳐 드렸다. 빛, 구도, 각도, 감정, 주제, 사물의 특징 등등... 한 컷 한 컷 잘된 점, 아쉬운 점을 아는 대로 지적해 드렸더니 촬영 실력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하루하루 좋은 사진이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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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의 슬리퍼 ⓒ 뉴스사천
아저씨는 사천시청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그만두었다고 했다. 정작 남의 구두를 닦아주는 일을 해온 아저씨의 신발은 슬리퍼였다. 올 때마다 그 신발이었다. 수수한 차림새로 마음씨가 온순하고 언제나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었다.
드넓은 녹차밭을 낡은 슬리퍼로 걸어 나오기도 하고, 밀양으로 달려가서 새벽 강 안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보리밭 너머로 나란히 서 있는 평사리 부부송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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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녹차밭. ⓒ 뉴스사천
어떤 곳에서는 못자리 물 댄 논에 어리는 아침 해를 찍으려다가 '낯선 사람이 잠복 중'이라는 신고로 경찰차가 달려오기도 했다. 아저씨는 무언가를 알려드리면 곧장 실천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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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부부송 ⓒ 뉴스사천
아저씨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조마조마한 살림을 살아왔길래 저렇게 조심스러울까 싶었다. 사방천지에 널린 풀꽃이나 길, 강이나 바다를 찍는 일조차 왜 저렇게 숨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 모닝으로 어디든 달려가서 담아오는 사진에서 아저씨의 자유를 함께 느낀다. 가는 곳마다 그날의 에피소드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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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평자 사진작가 ⓒ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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