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에 사는 임영태(78) 씨는 요즘 농사를 열심히 지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한다. 야생 멧돼지들이 반복적으로 제집 드나들 듯 자신이 일군 밭에서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있어서다. 이틀에 한 번꼴로 고구마와 고추·오이·호박·토마토·들깨 등이 심긴 661㎡ 밭이 훼손돼 최근에는 농사 일을 아예 손에서 놔버렸다.
임 씨는 "30년째 방치 중인 수정만 매립지 맞은편에 밭이 있다"면서 "매립지에 사는 멧돼지들이 자꾸 밭을 헤집으니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5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요즘처럼 피해가 많은 건 처음"이라며 "밭에 찍힌 발자국만 보면 왔다 갔다 하는 멧돼지가 족히 7~8마리는 돼 보이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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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오후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만 매립지에 수풀과 잡목이 잔뜩 우거져 있다. /최석환 기자 ⓒ 경남도민일보
이 마을 주민들은 방치된 수정만 매립지에 사는 야생 멧돼지 문제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밤마다 온 동네 밭을 헤집는다는 주민 목격담이 솔솔 나오지만, 땅 주인인 은산해운항공㈜은 민원 제기에도 기민하게 조처하지 않아 농가 불만이 커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멧돼지 서식지로 지목한 땅은 STX 조선기자재 공장 유치가 계획됐다가 무산된 수정만 매립지 21만 44㎡다. 부산에 본사를 둔 중견 물류기업인 은산해운항공이 지난해 3월 공시지가 592억 원보다 232억 원 낮은 360억 원가량에 사들였다. 그러나 땅을 사놓고 지금까지 구체적인 활용 계획을 밝힌 적이 없고, 민원이 있어도 별다른 견해를 내지 않는다.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여도 관리하지 않고 있다.
"당장 개발 어렵다면, 잡초만이라도"
수정마을 농민 김경분(76)씨는 "우리 할아버지가 야생동물 피해를 우려해 저녁마다 한 번씩 논에 나가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며 "오랜 기간 땅이 애물단지가 돼 있으니 보기도 안 좋고 해충도 말 못 할 정도로 많아 주민 피해가 잦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멧돼지가 매립지에서 낮에 기어 나오는 것도 본 적이 있고, 밤에 나오는 것도 본 적 있다"면서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고라니도 보이던데 먹고 자고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니 농사에 땀 흘린 노력이 무너져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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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마을 일부 주민이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만 매립지에 허가 없이 무단으로 밭을 일궈놨다. /최석환 기자 ⓒ 경남도민일보
주민 말처럼 지난 26일 오후 찾은 수정만 매립지는 오랜 기간 방치돼 수풀이 가득했다. 키보다 큰 잡목과 대나무도 무성했다. 매립지 진입을 통제하는 철제 경계 막이와 접근금지 끈이 둘러쳐져 있었지만, 일부 주민은 그 사이로 들어가 집에서 먹을 대파·호박·고추 등을 심어 몰래 농사를 짓는 모습도 보였다.
이수강 수정마을 이장은 "주민들은 매립지 방치 문제가 속히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은산해운항공에 더 이상 매립지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찾아가서 이야기해도 별다른 답을 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개발이 어렵다면 잡초와 잡목이라도 먼저 모조리 없애야 한다"며 "멧돼지·해충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 만큼 방치된 매립지에 우거진 수풀과 잡목을 속히 제거해서 주민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은산해운항공은 우선 매립지 일대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사람을 고용해 수풀 등을 제거할 예정이다"라면서 "곧 이장과 날짜를 조정해 작업이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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