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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중대재해참사 40일, 침해되는 피해자 권리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참사 피해자의 권리

등록 2024.08.05 10:56수정 2024.08.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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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시작한 화성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 화학물질알권리화성시민협의회는 화학물질 알권리 활동을 통해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2022년 노동자 시민이 함께하는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로 확대 전환되었다. 



나름대로 화성 지역에서 끊임없이 노동안전 의제를 제기하고 활동해 왔는데 이번 아리셀 참사를 겪으면서 자괴감과 회의감도 든다. 때로는 거꾸로 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진일보할 수 있다는 철학을 떠올리면서 지난 한 달간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함께 하며 느꼈던 엄청난 고통과 슬픔, 분노를 나누려고 한다.

참사 피해자의 권리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경 ㈜아리셀 리튬전지 화재로 23명이 사망,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소사체로 발견된 17명은 국과수 DNA 검사를 통해 6월 27일에야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자 중 이주민이 18명으로 F-4 재외동포비자 12명, F-5 영주비자 1명, F-6 결혼이민비자 2명, H-2 방문취업비자 3명이었다.


리튬 전지 위험성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안일한 대처, 위험의 외주화가 다다른 위험의 이주화라는 종착역, 형식적인 위험성평가와 위험관리의 총체적 실패 등 드러나는 참사의 원인도 분노스러운데, 참사 이후 피해자, 유가족을 대하는 지자체, 정부, 회사의 모습은 더욱 답답하다. 




피해자 권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등 사회적 참사를 겪으면서 피해자가 요구하고 싸워서 정립시킨 권리이다. 202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인권에 기반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하였다. 




여기에는 정부의 조사 과정에 참여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시 참여할 권리, 연대하고 조력 받을 권리,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가 포함된다. 더욱이, 아리셀 피해가족 중에는 이주민이 많아 이주민 피해자의 특성과 취약성에 맞게 지원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한 달의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a  화성시청에서 매일 저녁 7시 열리는 시민추모제에 참여한 아리셀 유가족 뒤로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화성시청에서 매일 저녁 7시 열리는 시민추모제에 참여한 아리셀 유가족 뒤로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 백승호

 
조사 과정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참여할 권리

재난·참사 피해자는 왜 참혹한 일을 겪었는지 알 권리가 있지만 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 기관은 피해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 참여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국과수, 경찰, 소방 정부 기관은 현장 합동 조사에 피해가족 참여를 보장하지 않고, 피해가족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조사위원회에 참가하게 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의 중간수사 브리핑도 수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에 피해가족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고용노동부는 브리핑 자리에 유가족 외에 대책위 관계자가 있다는 이유로 나타나지 않으며 피해가족이 개별적으로 방문하면 알려주겠다고 공지했다. 


경기도와 화성시 재난지원본부도 7월 3일 피해가족 공동공간에 들어와 일방적으로 브리핑했다. 그 후에도 월, 수, 금 브리핑을 하지만 여전히 사전 조율이나 의사 타진은 없다. 알 수 없는 위임 서류를 내밀거나 정부기관을 통해 산재를 신청하면 피해자 유류품을 옵션으로 주겠다는 행위도 했다는 게 유족 등의 진술이다. 

연대하고 조력 받을 권리

피해가족들은 6월 30일 유가족협의회, 7월 2일 대책위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법률 대리를 포함해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고 공표하였으나 지자체는 유가족을 통해서만 소통하며 대책위를 무시하고 있다. 아리셀 사측은 개별 가족하고만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서로 연대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외부 전문가 및 단체의 조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재난피해자 간의 상호의존을 오히려 도와야 한다. 정부, 지자체, 아리셀은 가족협의회와 대책위를 인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

시민추모제가 시작된 첫날 화성시는 시민추모제가 취소되었다는 허위 정보를 피해가족들에게 유선으로 전달하였다. 이들은 시민과 유가족의 추모 행동을 방해하기도 했다. 또 2회차 추모제를 지나면서 유가족과 시민이 적어놓은 추모의 벽 메시지와 꽃다발을 일언반구 없이 제거한 적도 있다. 이런 부당한 업무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인권 또한 침해받고 있다. 



한겨레21의 보도에 따르면, 이같은 논란에 대해 화성시 측은 "주최 쪽에 민주노총이 끼어 있어서 추모제를 가장한 노동 집회라고 판단했다. 집회 관련 구조물을 설치하려 하길래 불허했던 거고 유가족에게도 그 사실(추모제를 불허했다)을 알린 것뿐이다. 대책위 요구사항을 봐도 노동운동 성격이 강하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참사 11일 만에 위패와 영정이 봉안되었는데, 화성시는 당일 갑자기 분향소를 유가족 공동공간이 있는 건물 지하 2층으로 옮기면 영정을 올려주겠다며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결국 유가족들과 대책위의 힘으로 시청 입구 1층에 봉안할 수 있었다.


지자체와 아리셀은 피해가족과 시민이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 나아가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이 참사로 인한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할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주민 피해자의 특성과 취약성에 맞는 지원 받을 권리

화성시는 재해구호계획 수립 지침에 근거하여 피해가족의 숙식을 제공해 오다, 직계의 경우 7월 31일, 친족의 경우 7월 10일까지로 지원 기간을 변경한다고 7월 3일 공지하였다. 나중에 원인 제공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라지만, 산아제한 정책으로 친척 간 유대가 깊은 중국 국적 동포들의 문화적 특성을 무시한 처사다. 



또 한국에 체류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소통의 어려움이 없도록 충분한 통역 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유가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편적인 지원 외에 피해자들의 취약한 조건을 보완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보완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재난·참사 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늘 있었다. 특히 이주민 피해자에 대한 따가운 여론도 있다. 피해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지원 액수만을 여론화하는 것은 이러한 차별과 혐오를 더 부추긴다. 지자체와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면서 아리셀 사측이 적극 교섭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경희 님은 화성노동안전네트워크 대표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 한노보연 후원 문의 : 02-324-8633
#아리셀 #피해자권리 #중대재해 #유가족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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