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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묻으러 왔는데" 지천댐 건설 얘기에 잠 못자는 귀농인들

[현장] 청양 수몰 예정 지역 가보니... 주민들 "300년 살아온 터전, 우리 의견도 들어달라"

등록 2024.08.12 10:20수정 2024.08.1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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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충남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 칡목 마을 주민들이 댐 예정지역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충남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 칡목 마을 주민들이 댐 예정지역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 이재환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후보지 중 하나로 선정된 충남 청양군의 지천댐 건설 문제를 놓고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수몰지역 주민들은 "우리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댐 건설을 발표했다"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건설이 확정된다면 지천댐의 경우 청양군 장평면과 부여군 은산면 일원에 5900만 톤 규모의 대규모 토목사업이 예상 된다. 하지만 댐 건설로 인한 대략적인 수몰 예상 지역만 나왔을 뿐, 여전히 물에 잠기는 가구수 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충남도(지사 김태흠)는 대략 130여 채의 민가가 수몰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심란한 이유도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댐 관련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이주할 대체 농지도 없어, 수몰되면 어디로 가나"
 
a  충남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지천의 모습.

충남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지천의 모습. ⓒ 이재환

 
기자는 지난 8일과 9일 이틀 동안, 수소문 끝에 수몰이 예정되거나 혹은 예측되는 일부 마을의 주민들을 만났다. 지천댐이 건설 될 경우, 최상류 마을은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이다. 또 댐 바로 앞에 있는 강 하류의 마을 중 하나는 바로 장평면 죽림리 칡목 마을이다. 기자가 이 두 마을에 주목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선 8일 오후 청양군 장평면 지천리를 찾아갔다. 지천리는 계곡과 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까치네 유원지' 바로 아래 쪽에 있다. 댐 건설 소식에 지천리로 귀농한 젊은 농민들과 귀향인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천리에서 밤, 콩, 고추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 A씨는 "15년 전에 처가인 이곳으로 내려 왔다.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 마을은 70가구 정도 된다. 이 중 40가구 정도가 수몰이 된다고 하는데 우리 집도 수몰 가능성이 있다. 지천댐 이야기가 나온 뒤로 밤에 잠도 못 자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축사도 없고 깨끗한 마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잠도 안온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지난 15년간 동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삶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임대한 농지가 3만2천 평이다. 만약 우리 집이 수몰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이만한 농지를 얻어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 귀농해서 이 정도로 자리를 잡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하다"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인 B(58세)씨도 "음식 조각 작품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늦깎이로 대학에 다녔다. 시골에 내려와 남편과 함께 살면서 작품 활동도 하고, 교육활동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이다"라고 거들었다.


A씨 부부의 소개로 마을의 주민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지천댐은 지난 1990년, 2001년, 2013년 세 번이나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그때마다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지천리 주민 C(70대, 남성)씨는 "도시에서 살다가 8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40년 만에 고향으로 온 것이다. 고향에 뼈를 묻으려고 온 것이다. 집도 새롭게 짓고 지열 보일러 공사까지 마쳤다. 만약 집이 수몰되면 이 나이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새집을 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잊을만하면 댐건설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다. 이러다가 진짜로 댐이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라고 호소했다.


C씨의 아내인 D씨도 "예전에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지도 지천댐 건설을 반대하셨다. 그런데 또다시 댐 건설이야기가 나와서 심란하다"라며 "우리 마을 70여 가구 중 20가구 정도는 귀농·귀촌인들이다. 마을 주민들끼리 사이도 좋다. 하지만 댐 건설 문제를 놓고 찬반으로 여론이 나뉘면 마을 사람들끼리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지천댐 댐 예정지 바로 앞 마을인 청양군 장평면 죽림리 마을 주민들과는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음 날인 9일 직접 마을회관을 찾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죽림리는 40여 가구 중 15채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죽림리 마을 이장 김 아무개씨는 "언론에 시달려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우리 마을은 댐 바로 앞 첫 번째 수몰 지역이다. 우리 마을 바로 앞이 댐을 막는 곳이다. 조상 대대로 300년 동안 살아온 생활 터전이다. 선산도 여기에 있다"고 소개했다.

"주민 무시 심각, 우리 입장도 관심가져 달라"
 
a  지천댐이 건설되면 칡목 마을도 수몰될 예정이다.

지천댐이 건설되면 칡목 마을도 수몰될 예정이다. ⓒ 이재환

   
a  청양 장평면 죽림리 칡목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천의 모습이다.

청양 장평면 죽림리 칡목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는 지천의 모습이다. ⓒ 이재환

 
죽림리 칡목 마을 회관에서 만난 주민 E(60대 후반, 여성)씨는 국가와 충남도가 주민들을 철저히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소했다.

"아직 결정된 것도 없다면서 왜 이렇게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회관 근처까지 수몰 예정지라는 소문만 있다. 하지만 우리 주민들은 (도나 국가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철저히 무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땅이라도 많다면 보상을 받아서 나간다고 하지만, 보다시피 이 동네는 산골이라서 땅이 넓지 않다. 겨우 집 한 채 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냇물(지천)에서 다슬기나 물고기를 잡아서 팔기도 했다. 지금은 산에 밤을 심고, 밭에 맥문동(산약초)이나 고추를 심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쥐꼬리 만큼의 보상을 받아서 어디가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게다가 물에 잠기지 않는 집은 보상도 못 받고 물안개 때문에 농사도 지을 수 없을 텐데 걱정이다. 안개가 끼면 밤 농사도 잘 안된다. 충남도는 자기들의 입장만 언론에 내보내고 있다. 주민들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F(69세 남성)씨도 "80대 이상 노인들의 경우, 농사 짓고 살기가 점점 어려우니까 이 기회에 보상을 받고 떠나고 싶어하는 분들도 물론 더러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상당수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산골이라) 가난하지만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라고 말했다.

충남도 "환경부에 구체적인 수몰 규모 확인 건의"

충남도 관계자는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위성 사진상으로 대략적인 가구를 예측해 본 결과 130세대가 물에 잠기는 것으로 예측됐다. 물론 추정치일 뿐이다. 8월 말에 환경부에서 주민 설명회가 있을 예정"이라며 "주민들이 그 부분(수몰)을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고, 또 걱정하고 있다. 환경부에 주민 설명회를 할 때 수몰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달라고 건의를 했다"고 밝혔다.
#청양 #지천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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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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