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일제 찬양 글 무더기 발견, 그래도 전집 낸다는 대전문화재단

대전 문인 춘파 전형, 창씨 개명하고 친일 잡지에 글 게재... "세금으로 친일 문인 선양"

등록 2024.08.16 11:58수정 2024.08.16 11:58
11
원고료로 응원
 
a

ⓒ 대전문화재단

 
대전시 출자출연기관인 대전문화재단과 대전문학관(아래 대전문화재단)이 춘파 전형(全馨)에 대한 문학사적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일제강점기 노골적인 친일 지향적인 글이 대거 발견됐다. 대전문화재단은 이 같은 문제점이 있는데도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전형의 작품을 한 데 묶은 전집 발간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춘파 전형(全馨, 1907-1980). 충북 옥천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문학인과 언론인의 삶을 걸어왔다. 1934년 일본대학 문과를 중퇴한 그는 1935년 매일신문사 사회부 기자, 1936년 조선중앙일보(1937년 폐간) 기자로 일했고, 해방 후에는 1945년 대전동방신문사 주필, 1952년 대전일보 주필, 1953. 대전일보사 편집국장 겸 대전문화원장, 1960년 호서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 시조, 산문, 평론, 소설 등 다양한 장르 활동

그는 1928년 창작시인 '한숨'을 <조선시단>에 발표(12월, 필명 전우한)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시를 썼다. 1934년 <조선시단>에 시 '환멸의 노래', '단가(短歌)', 1935년 <신조선>, 1935년 <조선중앙일보>, 1937년 <자오선> 등에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다. 시조에도 관심을 두고 1932년 '춘일점경' 등 여러 편의 시조를 내놨다.

산문(散文)으로는 1927년 '월광 밑에서', 1927년 '영순의 사(死)', 1931년 '행복의 길'을 <매일신보>에, 수필로는 1931년 '인생·고뇌·사', '5월의 상화 신록과 신비'를 <동아일보>에 발표했다. 평론으로는 <호서문학>에 1952년 '문학과 율의(律義)', 1956년 '현대문학의 계보' 등을 썼다. 해방 후에는 <대전일보>에 중편소설 '죄와 벌', '청등야화', 장편소설 '비파애가'를 연재했다. 또 동시, 동시조, 동화 등도 창작했다.

그는 1980년 사망했다. 그러다 2000년 이후 몇몇 지역 문인 등을 중심으로 '대전 문학사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며 재평가 작업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대전의 최초 시인', '대전 문학사를 새로 쓰게 한 분',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아동문학 발전에 헌신' 등으로 재조명됐다.

다른 평가도 있다. 박수연 문학평론가(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이 읽고 감동해 오래 기억하게 되는 작품이 없다"며 "다른 문인의 글을 흉내 낸 듯한 작품과 영탄과 감상으로 점철된 언어이다보니 한국문학사에 별다른 반향을 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런 가운데 대전문학관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대전문화재단이 전형의 작품을 묶은 전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대전문화재단과 대전문학관이 개인의 전집을 발행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몇몇 문인들은 "전형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엮으면 대전의 문학사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 새로운 발굴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전집발간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친일 잡지에 일본 통치, 전쟁 찬양 글 게재... "친일 담론 모두 들어가"
 
a  전형 작가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3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만주 문학의 소망'(滿洲文學のこそなど)이라는 제목의 글(오른 쪽)과 같은 해 <국민문학> 1942.5~6월 합병호에 발표한 '역사소설에 대하여'(歷史小說について) 글

전형 작가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3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만주 문학의 소망'(滿洲文學のこそなど)이라는 제목의 글(오른 쪽)과 같은 해 <국민문학> 1942.5~6월 합병호에 발표한 '역사소설에 대하여'(歷史小說について) 글 ⓒ 박수연

 
그런데 최근 전형의 뚜렷한 친일 행적이 무더기로 드러났다. 창씨개명을 해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2년부터 여러 편의 친일 평론을 썼는데 확인된 것만 5편에 이른다.


1942년 <국민문학>(國民文學)에 발표된 '전쟁의 모랄 戰爭のモラル'이라는 제목의 글은 중일전쟁을 정당화하던 소설 <보리와 병정>을 상찬하면서 문학이 전쟁에 기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같은 해 <국민문학>에 발표된 '역사소설에 대하여 歷史小說について'에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던 당시 교토학파의 이념에 근거해 역사와 현실을 문화와 정치라는 논점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실었다.

<조광>(朝光)에는 '아시아 문화 통일과 그 성격 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이란 제목으로 동아신질서론에 근거해 일본국의 새로운 탄생과 문화적 통일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글을 썼다. 이듬해인 1943년에는 <국민문학>에 '만주문학의 소망 등'과 '문학의 시련'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전쟁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조의 글을 잇달아 게재했다.

전형이 주로 글을 쓴 <국민문학>은 1941년 최재서가 조선 문단을 강압적으로 통합하고 어용화하여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하려는 총독부의 정책에 호응해 창간한 문학잡지다.
 
a  왼쪽부터 전형 작가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2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전쟁의 모랄'(戰爭のモラル), 1943년 8월 <국민문학에> 쓴 '문학의 시련(文學の試煉), 1942년 8월 <조광>에 쓴 '아시아의 문화통일과 그 성격'(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

왼쪽부터 전형 작가가 도쿠다 카오루( 德田 馨)라는 이름으로 1942년 4월에 <국민문학>에 쓴 '전쟁의 모랄'(戰爭のモラル), 1943년 8월 <국민문학에> 쓴 '문학의 시련(文學の試煉), 1942년 8월 <조광>에 쓴 '아시아의 문화통일과 그 성격'(アジア文化の統一とその性格). ⓒ 박수연

 
최재서는 <국민문학> 창간호에서 "일본 정신에 의해 통일된 동아문화(東亞文化)의 종합을 지반으로 하고, 새롭게 비약하려는 일본 국민의 이상을 시험한 대표적 문학으로서, 금후의 동양을 인도할 수 있는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문학사에서도 <국민문학>을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 그리고 우리말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책동에 영합하였던 반민족적 문학 행위를 대변한 잡지로 우리 문학사에 있어 치욕의 장(章)으로 남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광>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창간한 월간 잡지이다. 초기에는 순수 문예 창작물 중심이었지만 194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의 침략전을 지지, 찬양하는 작품·논문 등을 실어 친일 잡지로 변모했다. 특히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주요 내용으로 징병제 실시에 대한 감사, 근로 동원 고취, 일본어 상용 주장, 태평양 전쟁 찬양 등을 실었다.

전형의 친일 글을 찾아낸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평론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쓴 글이 아니라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당시의 일본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이해한 후 매우 논리적이고 신념에 찬 논지로 일본통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그의 글이 주된 주제는 조선총독부의 입맛에 맞는 '만주국을 형상화하는 국가주의적 문학', '전쟁과 같은 고난은 문학이 삼아야 할 자기 근거' ', '서구제국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의 신질서론', '전쟁 찬양' 등 당시 친일 담론이 모두 들어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형은 해방 직후에도 오점을 남겼다. 대전의 일간지 <동방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했는데, 1949년 신문사 사장과 함께 구속기소 됐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그 이유를 '수재의연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으로 전하고 있다.

그는 1937년 순 문예지인 <풍림> 복간호에 소설 '개와 고양이'를 발표하려 했다가 당시 일본 경찰에 의해 책이 압수되면서 복간계획이 무산됐다. 당시 <출판경찰월보>(경찰에 압수된 기록)에는 압수 이유로 '한 남성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여성이 한 방에서 서로 육체관계를 맺으려는 다툼 과정을 선정적으로 묘사, 조선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풍속 교란'으로 밝히고 있다.

그래도 계속되는 대전문화재단의 전집 발간 작업
 
a  1949년 언론보도. 당시 '동방신문 전형 편집국장이 경찰수사과에 피검되고 장부를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사에는 '언론인으로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해 일반에 피해를 많이 줘 세간의 여론을 비등시켰다(움직이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1949년 언론보도. 당시 '동방신문 전형 편집국장이 경찰수사과에 피검되고 장부를 압수수색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기사에는 '언론인으로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행동을 해 일반에 피해를 많이 줘 세간의 여론을 비등시켰다(움직이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 박수연

 
그동안 대전문화재단 등은 전형에 대한 선양사업을 지원해왔다.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가 계간 '대전문학' 2023년 여름호(통권 100호)에 '춘파 전형의 문학적 업적 조명의 당위성에 대한 소고(小考)'를 게재했다. 대전문화재단은 이를 계기로 지난해 가을 '전형을 기리는 시낭송회' 사업을 후원했다.

그런데 대전문화재단은 전형의 노골적인 친일 행적을 인지한 이후에도 그의 전집 발행 계획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대전문화재단은 오는 12월까지 전형의 시, 소설 등 작품을 한 데 묶은 전집을 발행할 예정이다. 대전문화재단이 그의 전집 발행을 본격 추진한 것은 지난 5월 대전시가 5000만 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부터다.

이 같은 계획이 알려지자, 전형에 대해 연구해 온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지난 7월 관련 회의에 참석, 전형의 친일 작품과 행적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관련 회의에 참석해 '세금을 들여 친일 문인의 자료집을 출간해 선양해서는 안 된다'며 전집 발행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전문화재단은 전집 발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전문화재단 관계자는 지난 13일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임에도 문학 작품과 성과가 정리된 게 없어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친일작가 논란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가 있지만 아직 친일 작품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게 없다"며 "하지만 논란이 있는 만큼 전형의 작품 중 일제강점기 때 것은 빼고 해방 이후 <대전일보>에 실린 작품만을 엮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박수연 문학평론가가 '지난 7월 관련 회의에 참석해 전형의 친일 작품과 행적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전집 발행 계획 중단을 요구했다'는 증언과 배치된다.

박수연 평론가 "공공기관에서 왜 세금 들여 친일 문인 선양하려 하나"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친일 문인 개인의 전집을 출판, 선양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자료집 발간이 필요하다면 민간 출판사에서 하면 될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정부의 문학예술 지원 예산 대폭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에 공공기관에서 친일 문인의 자료집을 출간하겠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형에 대한 선양사업은 친일 문인이 없던 대전충남의 문학사에 친일 문인이 중심으로 들어오는 일이 된다"며 "대전문학관과 대전문학관을 관리·감독하는 대전시와 후원기관인 대전문화재단은 역사관에 따른 심각한 고민으로 지금이라도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전문학관은 신채호 선생을 앞에 내세우고 있다"며 "친일 인사의 인후 보증으로 석방되는 것을 거부하다 병이 악화해 옥사한 신채호 선생을 생각한다면 친일 문인 선양은 고려할 필요도 없는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춘파 #전형 #대전문화재단 #친일작가 #전집발행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