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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룡 경정은 왜 인천공항세관을 주목했나

[추적 -영등포경찰서 '역대급 마약 수사' 막전막후 ①] 베일에 가린 한국 조직

등록 2024.08.14 21:11수정 2024.08.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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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룡 경정의 국회 증언을 계기로 터져나온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흔히 '경찰판 채 해병 사건'이라고 부른다. '채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을 '채 해병 사망 사건'을 빼고 설명하기 힘들듯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역시 '세관 마약 수사'를 빼고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백 경정은 "사건 자체가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면서 "사건을 먼저 알아야 그 외압이 무슨 의미인지, 수사팀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경찰 사상 역대급 마약 수사로 평가받는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의 수사 막전막후를 추적했다. 이 기사는 그 첫 번째다.

이 기사는 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된 자료와 자체 취재에 기반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다만 여기에 기술된 문장은 모두 근거가 있음을 밝힌다.


a  영등포경찰서

영등포경찰서 ⓒ 연합뉴스


시작은 중국 국적 20대 여성의 자수였다. 지난해(2023년) 7월 말, 이 여성은 마약을 끊을 수 있게 도와달라며 영등포경찰서에 필로폰 매매 일당을 제보했다. 탐문 및 잠복을 통해 제보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약 2주만인 8월 11일 약을 판매한 중국인 조직원 2명을 검거하고 필로폰 21g을 압수하는 성과를 올린다.

고무된 김찬수 영등포경찰서장(총경. 현 대통령비서실 자치행정비서관실 행정관)은 8월 14일 백해룡 형사2과장(경정, 현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팀을 꾸려 집중적으로 수사할 것을 지시한다. 김 서장은 약 한 달 뒤인 9월 20일 "용산에서 사건 내용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언론 브리핑 연기를 지시하지만, 최초 수사 당시에는 이렇게 적극적이었다. 마약 압수 현장에서 경찰서장이 직접 진두지휘 하기도 했다.

중국 총책 검거와 쓰러지는 형사

수사는 순풍을 탔다. 중국 조직을 추적한 수사팀은 8월 18일 마약 유통책을 검거하며 필로폰 541g을 압수했다. 닷새 뒤인 23일 이틀 잠복 끝에 중국 총책 검거에 성공했고, 필로폰 압수량은 단위가 바뀌었다(5.4kg 압수).

중국 총책의 검거는 첫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 검거로 중국 조직-말레이시아 조직-한국 조직이 연계된 전체 그림을 파악하게 된다. 말레이시아 조직이 국내로 필로폰을 들여오고 한국 조직과 말레이시아 조직이 유통하는 구조였다.

도망치는 중국 총책을 끝까지 쫓아가 검거에 성공한 형사가 당일 집으로 돌아가다 호흡곤란 증세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는 수사팀으로 하여금 전의를 불태우게 하는 계기가 된다. 김찬수 서장은 "내가 어디로 가든 (쓰러진) OOO 형사는 끝까지 챙기겠다"라고 말했다.


9월 5일 수사팀은 말레이시아 조직원 A와 B를 검거한다. 이때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나흘 뒤인 9일 A와 B의 주소지로 말레이시아에서 국제화물로 보낸 나무도마 156개가 도착하는데, 이 안에 필로폰 20kg이 숨겨져 있었다. A와 B가 검거됐다는 걸 모른 채, 이 필로폰을 받으러 오겠다고 한국 조직과 중국 조직이 연락해 온다. 또 말레이시아 조직 총책은 무려 필로폰 100kg을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도마로 위장해 선적 대기중이라고 연락한다. 일망타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수사팀은 유치장에 있던 A·B와 함께 잠복에 들어간다.

수사팀에 직접 전화한 말레이시아 총책의 비아냥


a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 연합뉴스


하지만 위장 수사는 실패했다. 검거 사실이 새나갔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조직원은 나타나지 않았고, 말레이시아 조직 총책은 선적이 임박한 필로폰 100kg을 급히 거둬들였다. 이후 이 총책은 검거된 자신의 조직원 휴대폰으로 전화해 백해룡 경정에게 이렇게 비아냥댔다.

"(한국 경찰이) 압수한 필로폰을 돌려주면 내가 직접 한국으로 들어가 자수하겠다."

비록 위장 수사는 잘 안됐지만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의 성과는 눈부셨다. 이후로도 계속 수사를 진행한 수사팀은 총 24명을 검거했고(14명 구속), 밀반입 확인된 필로폰 양이 97kg, 그중 압수한 양이 27.8kg에 달했다. 이는 경찰 역사상 두 번째 규모였다. 또한 필로폰 100kg 국내 밀반입을 막은 것도 중요한 성과였다. 수사팀이 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처럼 마약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9월 13일 김찬수 서장으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은 윤희근 경찰청장은 "중요한 시점에 아주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어 훌륭하다"면서 "소기의 성과가 대내외에 제대로 알려지고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직접 챙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최고 수장의 이런 치하와 달리, 이즈음부터 수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문제는 한국 조직... 검거된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의 진술

a  2023년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10일 오전 대회의실에서 말레이시아 마약 밀매 조직이 제조해서 국내 밀반입한 필로폰 74kg을 유통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2023년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백해룡 형사2과장이 10일 오전 대회의실에서 말레이시아 마약 밀매 조직이 제조해서 국내 밀반입한 필로폰 74kg을 유통한 한국, 중국, 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조직 쪽은 총책을 검거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 말레이시아 조직 쪽은 총책은 못 잡았지만 조직원을 검거하고 대량 반입을 막아내는 등 역시 성과가 있었다. 국외에 있는 총책은 국제공조수사가 필요한 문제였다. 9월 11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후세인 경찰청장과 치안 총수회담을 연다.

문제는 한국 조직이었다. 쉽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말레이시아 조직원 A와 B의 검거는 두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검거 당시 경찰이 파악한 마약 반입 경로는 나무도마로 위장한 국제화물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화물편뿐 아니라 인편으로도 마약을 들여왔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해 1월 27일 두 사람을 포함해 6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4kg을 반입할 때는 한국 세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진술까지 했다. 두 사람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큰 틀에서 서로 일치했다.

A가 봤다는 한국 조직 총책은 '검정색 벤틀리 승용차를 탄 잘생긴 30대 남성'이었다. 대략적이나마 세관 직원-한국 총책-말레이시아 총책 사이 커넥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인천공항 세관 직원들을 수사하면 한국 총책을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의 진술을 믿을 수 있을까? 한국 조직을 잡기 위해 한국 세관을 파고들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맞을까?

(* 두 번째 기사는 8월 16일 공개됩니다. )

#백해룡 #필로폰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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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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