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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첫 민주주의를 세균이 무너뜨렸다고요?

[서평]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를 읽고

등록 2024.09.10 09:48수정 2024.09.1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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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 브론테 자매, 오노레 드 발자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레데리크 쇼팽, 임마누엘 칸트, 스피노자 등 문학, 음악, 철학을 대표하는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름만 들어도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이들. 그러나 모두 결핵이라는 감염성 질환으로 인해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매력적인 주인공이 손수건에 피를 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또한 결핵균에 의해서 발병한 중증 결핵환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생물에 관한 가장 흔한 선입견은 미생물은 의과대학이나 과학자의 실험실에서나 구경할 수 있고 우리의 실생활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초에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지구는 미생물로 덮여 있었다.

지구의 역사에서 아주 늦게서야 등장한 인류는 미생물을 이용하고 협력하며 때로는 극복하면서 생존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생물은 지구의 역사와 함께한 터줏대감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미생물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고관수 성균관대 의과대학의 최근작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우리가 뜨문뜨문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미생물과 인류 역사와의 관계를 소상하고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미생물의 관점에서 본 역사책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류와 미생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알았다, '미생물'을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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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표지 ⓒ 지상의책


미생물이 인류 역사에 미친, 가장 오래된 사건 중의 하나는 아마도 아테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것이다. 철학, 과학, 예술, 민주주의를 꽃피우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몰락을 길을 걸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아테네를 굳건히 지켜주었던 성벽을 쓰러뜨린 것은 적군뿐만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작은 생명체도 거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생물은 아테네와 고대 민주주의를 몰락시켰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간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켰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와의 전쟁 직후 오늘날에는 장티푸스라고 부르게 될 병균이 아테네 전역에 만연했고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집트에서 환자를 실은 배가 피레우스 항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아테네의 악몽은 마치 지옥이나 다름없어서 아테네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더욱 활개 친 역병 때문에 아테네 국력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소모되었고 결국 고대 그리스 문명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아테네 역병은 그리스 문명의 쇠퇴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시켰다. 의사들은 생전 처음 보는 질병을 치료하다가 환자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허다했고 환자 곁을 지키던 사람들도 병에 걸려 죽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종교적 신념이나 명예보다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해졌고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신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역병에 죽을 운명이 되자 그동안 자신들을 속박했던 관습이나 규율을 무시하고 당장 눈앞의 쾌락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을 괴롭히는 미생물은 일부이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빵과 술도 알고 보면 미생물의 소산이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우리는 미생물을 인류의 삶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다.

가령 면역항암요법이나 세균을 매개로 하는 암 치료법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인간과 미생물과 끈질긴 인연이 결코 위험한 것만은 아니며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결국 미생물이 천사의 모습을 할 것인지 악마의 모습을 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류의 잘잘못을 따져 훈계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과 미생물이 행복하게 공생하는 미래를 꿈꾸는 책이다.

역사라는 학문을 미생물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흥미롭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미생물이라는 낯선 친구를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흥미롭고 독특하며 유익한 책이다.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

고관수 (지은이),
지상의책(갈매나무), 2024


#고관수 #미생물 #역사 #세균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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