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에서 만난 백제 유적지

[충남 논산 여행 ③] 계백 장군 유적지

등록 2024.09.19 08:37수정 2024.09.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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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충장사 삼문

충장사 삼문 ⓒ 문운즈


660년 황산벌에서는 최후의 혈전이 벌어진다. 계백장군은 결사대 5천을 이끌고 김유신, 소정방이 이끄는 나당 연합군과 맞선다. 황산벌로 떠나기 전 처자식을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출전한다. 신라군 5만과의 싸움이다. 일당 백의 열세에도 네 번이나 승리를 거뒀다.

논산은 인구 10만 여의 중소 도시다. 유교문화 진흥원에서는 유교 문화 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유교 문화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통례 · 관례 · 혼례 · 상례 · 제례 등 예학을 체계화 한 곳이기도 하다.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에 백제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웅진성, 사비성으로 부르는 공주와 부여는 나에게 답사 계획 1순위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매년 순위가 밀렸다. 생각지 않게 이곳 유적지를 보게 되었다.

계백 장군 유적지는 충남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다. 남쪽으로 탑정호, 서쪽으로는 수락산이 위치한다. 유적지 내에는 계백장군 묘소와 사당인 충장사, 백제 군사박물관과 야외 체험장도 자리한다.

a 계백장군 유적지 충장사

계백장군 유적지 충장사 ⓒ 문운주


충장사는 계백 장군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3칸 팔작지붕 형태다. 정문인 홍살문을 지나면 삼문삼도다. 삼문삼도는 세 개의 문과 길을 이른다. 오른쪽 문과 길, 계단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나올 때는 왼쪽을 이용한다. 가운데는 계백장군이 다니는 길이다.

a 계백유적지계백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곳.

계백유적지계백장군의 묘로 추정되는 곳. ⓒ 문운주

a 계백장군 묘

계백장군 묘 ⓒ 문운주

a 계백장군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붕괴되고 방치된 것을 1976년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계백장군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붕괴되고 방치된 것을 1976년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 문운주


충장사를 나와 오른쪽 계백장군 묘가 있는 동산으로 올랐다. 소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다. 5천 결사대가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일까. 비석에는 '백제계백장군지묘'라고 적혀 있다. 1966년 묘를 발견할 당시 봉분이 붕괴되고 방치된 것을 1976년 봉토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계백(?~660)은 백제 말기 성충, 흥수와 더불어 백제 3 충신으로 꼽힌다. 황산벌 전투에서 4번이나 승리했지만 중과부족으로 장렬히 전사하고 만다. 묘소 인근 충곡서원에 주향으로 모셔졌고 충남 부여 삼충사에 배향되었다.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계백장군과 5천 결사대는 호국과 충절의 표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논산에서의 마지막 문화유적 답사를 마쳤다. 탑정호 출렁다리에는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계백장군유적지 #계백장군 #논산명소 #황산벌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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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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