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씨의 수첩.트럭에서 하루를 보내며 그는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두곤 한다.
우혜림
십 대 때 친구에게 갚지 못한 돈을 못내 잊지 못하는 사람, 남에게 못된 짓을 하기 싫어 차라리 모르고 산 것이 다행이라는 사람, 마음 여린 사람인 그는 동시에 '싸우는 사람'이었다.
"내가 85년도에 종이 만드는 제조회사에서 운송 기사를 했어요. 근데 회사에서 갑자기 개인 자가용을 가지고 영업하겠다는 겁니다. 그때 일하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용역으로 비용을 적게 돌리려고 한 거죠. 그래서 내가 싸웠어요. (용역들) 운행을 못하게 막고 주도적으로 그렇게 했어. 내가 근방 인쇄소들은 쫙 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본부장이 와서는 피해 안 가게 하겠다고 해놓고는 나한테만 배차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뒀죠."
2006년 아현2구역이 재건축단지로 지정되었을 때 종열씨가 '싸움'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협조해달라는 재건축조합의 요청에 그는 "나쁜 짓 하기 싫다"라고 답했다.
"(아현2구역 재건축이) 잘못됐다는 건 국토부도 시도 구청도 다 알아요. 여기가 왜 재건축지역이에요. 재개발 지역이지. 쉽게 말해 천 평 땅이 있다고 쳐요. 거기에 아파트를 새로 짓겠다는 건데, 여기 사람들은 땅이 한 평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분양받을 만큼의) 소유권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럼 조합에서 (재건축을) 할 게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에 맡겨야 할 거 아니에요. 거기서 돈 있는 사람, 가진 땅이 넓은 사람은 분양권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아닌 사람은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해야죠. 그게 내가 하는 말의 전부에요."
종열씨가 살던 아현2구역은 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단독주택 마을이었다. 대다수 가옥주들은 50년 이상 장기 거주한 노인층이었고, 세입자들은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2003년 아현동과 염리동 일대가 뉴타운지구로 지정됐을 때도 2구역은 '존치 구역'이었다. 재정비할 필요성이 낮아 그대로 둔다는 뜻이다. 하지만 3년 뒤 '슬럼화 우려'를 이유로 재건축 대상 지역이 되었다. '뉴타운 광풍'이 일면서 재개발·재건축을 포함한 도시정비사업이 급증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