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이스라엘> '발룬티어'가 할 수 있는 일

'키부츠' 한국인들은 평판이 좋다

등록 2000.09.20 13:54수정 2000.09.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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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부터 1999년 3월까지 이스라엘을 여행하고 키부츠에서 생활한 이야기들을 <샬롬! 이스라엘>을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드디어 온갖 잡일을 졸업하고, 키친, 즉 우리말로 하자면 주방에서 쭉 일을 하게 되었다. 주방에는 짱인 요리사와 부짱인 조리사가 키부츠닉(키부츠에서 사는 사람들)이 먹게 될 모든 음식을 관장하게 된다.
요리사는 주 단위로 식단을 짜고 조리사와 함께 점심(키부츠에서는 점심을 거하게 먹고, 저녁에는 점심에 남은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아침은 싱싱한 야채들과 빵, 계란 등으로...)을 준비하는데, 발룬티어와 키부츠닉 7~8명이 그들을 도와 식사를 준비한다.

키친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은 엄격한 기준을 통해 뽑힌다. 왜냐하면, 키부츠의 다른 일과는 달리, 음식은 식사시간 제 때에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지각을 하게 되거나, 게으른 사람들은 바로 잘리게 된다. 그 중에 두 명 정도는 꼭 남자로 뽑는데, 왜냐하면 대단위로 식사를 준비하니까 음식 등을 들어올리고 나르고 하는데 꽤 힘이 든다.

키친 일은 아침 6시 30분에서 시작해서 보통 1시에 일이 끝난다. 내가 4개월 동안이나 키친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6시에서 6시 15분 사이에 다이닝룸에 도착해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을 열심히 한 이유도 있고, 내 특유의 유머로 키친 식구들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이 일재주가 있어서인지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대체적으로 평판이 좋았다.

발룬티어들은 점심에 제공될 샐러드를 준비하는데, 나는 이 일을 20일 정도만 하고, 바로 승진(?)을 해서 샐러드나이프(말이 나이프지, 우리 나라의 옛날 펌프처럼 생겨서 오이나 감자등을 넣고 여러 가지 나이프로 썰어주는 기계이다)와 그린드 머신, 즉 마늘이나 양파 등을 곱게 다지고 갈 수 있는 기계를 다루게 되었다.

하여튼 아침에 하는 일은 오이 두박스(약 120개?), 양배추 12개, 감자 4봉지(화장실 큰 욕조 2개를 가득 채울 정도), 피망 6박스, 토마토 2박스, 컬리플라워, 양파(욕조 2개 채울 만큼) 등을 잘 씻고, 껍질을 벗기고 해서 놔두면, 내가 그 야채들을 정해진 나이프를 이용해 앞서 말한 기계에 넣고 펌프질하듯 위에서 아래로 누르면, 야채들이 정해진 모양대로 썰어져 나온다. 그걸 엄청난 마요네즈와 올리브오일로 드레싱하여 버무려주는 것이다.


그동안 몇몇 키부츠닉과 요리사, 조리사는 대형 찜통 6개에 밥과 스프, 주 요리를 한다. 점점 믿을만한 위치가 되자 나도 샐러드를 만들고 나자 바로, 요리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뭐 별것은 없다. 시키는대로 하면 되니까..

이렇게 음식이 마련이 되면, 키부츠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음식을 싸서 보내고, 대형 트롤리 3개에 나누어 담는다. 키친 한편에서는 다이어트 코너가 있는데, 1명의 발룬티어와 1명의 키부츠닉이 노약자들을 위해 다이어트 음식을 만든다. 보통 우리 나라의 삼계탕과 같은 백숙과 생선, 야채, 현미와 곡식요리이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3시까지이고, 일을 끝내거나, 혹은 일을 하는 중간에 모두 다이닝룸에 모여 점심식사를 한다. 모든 시스템은 셀프이고, 다 먹은 후에는 디시워셔에 먹은 그릇을 스스로 챙겨 넣어야 한다.


다이닝룸에서 서빙을 보는 일과 디시워셔일, 그리고 나도 며칠 했었던 Pots & Pans 같은 일은 마지막 청소와 설거지를 하는 일로서 점심시간이 지난 3시가 넘어야 끝나기 때문에 발룬티어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일들이었다.

키부츠에서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일들이 인기가 많다. 오후에 여유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다. '애플(Apple)'같은 경우는 사과 과수원에 나가서 사과를 재배하는 일이기 때문에 새벽 4시 30분(여름에, 겨울에는 5시부터)부터 일이 시작된다. 애플 관리자도 키친의 요리사만큼 까다로운 사람인데, 한 번 늦으면 가차없이 잘린다.(나도 애플 첨 하는 전날, 엄청 술을 마시고 아침 9시부터 일을 했는데, 그 다음날 바로 잘렸다, 나중에 2번 정도 애플에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애플이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 일이 끝나기 때문에 애플군단이 점심식사를 제일 처음으로 하는 무리였다.

사과수확기인 가을이면, 애플에서 일하는 애들이 못생긴 사과, 즉 팔지 못할 사과를 잔뜩 가지고 나오는데, 돈이 없는 발룬티어들에게 있어 무료로 제공되는 사과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
사과과수원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용변을 볼 때마다 여자애들은 2, 3명이 짝을 지어 적당한 사과나무 밑에서 볼일을 보는데, 그게 굉장히 스릴이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못생긴 사과를 박스에 싣는 과정에서는 사과전쟁을 하기도 한다. 편을 갈라서 사과를 던지는 건데, 진짜 아프다. 내가 경험해 본 결과, 애플에서 일하는 것중 가장 좋았던 것은 오픈에어, 즉 야외에서 하는 아침식사였다.

새소리를 들으면서 사과나무 아래에서 먹는 아침은 정말 꿀맛이었다. 하지만, 태양이 뜨거운 여름에 일을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햇빛 알러지가 있는 나로서는 뭐니뭐니해도 키친이 제일 좋았다. 썬탠을 좋아하는 유럽애들에게 그래서 애플이 인기가 많았나보다.

'가든(Garden)'일은 키부츠에 펼쳐진 잔디를 관리하는 건데, 이 일도 장난아니게 살이 타게 된다. 자전거나 용달차를 타고 다니며 잡초와 쓰레기를 줍는 일인데 생각보다 지저분한 일은 아니고,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다.

남자애들 2~3명은 트럭을 타고 다니며 건물이나 기구, 기계를 고치는 일도 하고, 나무도 자르고 했다. '퓌시 판드(Fish Pond)'는 양식장에 나가서 생선을 잡는 건데, 정말로 어부 옷을 입고, 30분 정도 떨어진 키부츠 소유 양식장에 나가서 그물로 생선을 잡는다. 한국친구 씬디는 이 일을 정말 즐겁게 했다.

이 밖에 앞의 기사에서 쓴 웨이츄리스 일과 프레스(다림질) 일, 세탁소 일과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클럽카를 운전하는 드라이버 일, 목장(소 젖짜는)일, 양계장 일, 아침식사 준비하는 일, 도서관 일, 애들 보는 일 등이 있었다.

보통, 여름휴가를 길게 즐기고, 여행자체가 자유로운 유럽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키부츠를 많이 찾게 되고, 평균 두 달은 머물고 가기 때문에 처음 한 달은 이일, 저일을 하게 되지만, 그 다음 달은 한 곳에서 쭉 일을 하는 편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 한국에서 하게 되는 보통의 아르바이트(서빙, 과외)와는 달리 살아가면서 꼭 해야할 일들을 두루 해볼 수 있어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고, 사과 하나를 먹게 되더라도 이 사과 하나 수확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생선 한 마리를 구워 먹게 되면서 생선 한 마리 양식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풍요에의 고마움, 간접경험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키부츠가 너무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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