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다'는 행위에 관하여 생각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등록 2001.05.28 15:24수정 2001.05.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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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평론을 하고 있는 방민호입니다.

오늘부터 제가 연재하려는 <방민호의 문화칼럼>은 처음 구상을 한 날로부터 3년이나 지난 것입니다. 또한 오마이뉴스의 담당자와 연재를 약속한 날짜를 따져보면 근 한 달 이상 늦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 한 달 동안 스스로 괴로웠던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저의 말이 많은 독자를 상대로 길게 연재를 감행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였습니다. 당신은 이미 조선일보에 쓰고 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학레터'라는 형식을 빈 비평적인 말과 지금부터 제가 쓰려고 하는 글은 다소 성격이 다릅니다. 이 글은 더 폭넓은 시론(時論)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여러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문학비평이라기보다는 문화비평 또는 사회비평에 가깝습니다.

이 글은 일종의 모랄론이기도 합니다. 저는 모랄이라는 말을 자기를 둘러싼 각종 도덕률과 가치판단에 대응해 가는, 자기 내부의 독특한 책임의식의 체계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타인이 모두 비판을 가한다고 해서 '나' 자신도 곧 비판을 감행할 수 있음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로 타인들이 '나'를 비판한다고 해서 곧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함도 아닙니다. 물론 그 역도 진실일 것입니다.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신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모랄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또한 타인들이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신 떳떳할 수 있음도 아닙니다. 저는 이같은 자기 책임의식이 지금 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긴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어떤 큰 강을 건너고 있다면 그것은 조선일보에 연재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바로 지금, 이 '지면'에 쓰면서 그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 동안 저는 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오늘 비로소 어떤 고비에 다다랐습니다. 즉, 비록 저의 행위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이 저를 고립으로 이끈다 해도 저는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 결과를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저는 제가 오랫동안 견지해왔던 태도를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비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문제들에 일일이 시선을 던지고 저를 둘러싼 여러 관계된 사람들의 저에 대한 생각에 마음을 쓰느라고, 저는 제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지 않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 저의 외부로 오는 판단을 절대시하면서 저의 내적 필요를 억제함입니다.

쓰기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씀으로써 이룩되는 세계에 책임을 지는 쪽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것을 가지고 저의 말이 과연 그것을 읽어줄 분들의 수고에 값할 만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저는 저의 생각을 매회 원고지 다섯 장 내지 여섯 장 분량으로 100회로 나누어 연재하고자 합니다. 이 100개의 글은 크게 네 개의 덩어리로 나뉠 것 같습니다.

베트남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하면서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쓰면서 살아감을 생각한 것, 스스로의 전통을 상실하고 외래적인 것에 일방 노출될 위기에 처한 우리의 문화적 상황을 진단한 것, 문학에서 정치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근 일들의 의미를 따진 것,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생명을 받아 다른 존재와 더불어 이 지상에 머물다 가는 일의 의미를 헤아린 것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개의 덩어리는 순서 없이, 읽는 분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교직되는 방식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과연 저는 제 글을 읽으실지도 모를 분들의 사고와 시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쓰는 행위 역시 다른 모든 사회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그보다 더 크게, 두려움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는가 봅니다. 그만큼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말 없는 침묵의 가치를 염두에 두는 말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아래는 <방민호의 문화칼럼> 1회 분...(편집자)

베이징의 맥도날드점에 홀로 앉아
-한반도에서 '한국어'를 쓰며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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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방민호 씨 ⓒ홍성식
지금부터 약 오 년 전 가을에 베이징에 갔다온 적이 있다. 여권만 마련해 놓고 비자가 없을 때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더 이상 서울을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어로 된 말들의 범람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모국을 떠나 어디론가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 다음날로 떠날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알아보니 인천에서 중국의 텐진으로 가는 배를 타면 일주일이나 이주일 전에 입국 비자를 준비해놓지 않은 사람도 이른바 선상비자라는 것을 받아서 중국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텐진행 배를 타고 3등칸에서 스물 몇 시간을 버티고 난 다음날 나는 과연 베이징이라는 생전 처음 가보는 외국 땅에 서 있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천안문 광장을 바라보고 서면 왼편에 있게 되는 맥도날드점 안에 있었다.

천안문은 외국 관광객이 넘쳐나는 곳이지만 지하의 맥도날드점에는 온통 중국사람들뿐이었다. 억양이 풍부한 중국어가 비내리는 날의 지하 공간에 가득 넘쳐나 고막을 울렸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나는 그때 비로소 이 지상에 다른 사람은 없고 나라는 단 한 사람만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정적이 그 시끄럽고 숨막히는 공간에서 얻어지다니. 나는 자유를 얻었으므로 그 이후의 몇 날 여행은 필요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모르고 그들이 나를 모르므로 나는 자유로웟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나는 나의 한국어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다른 말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어는 14억의 중국말과 1억2천만의 일본어 사이에 놓인 섬과 같은 언어였다.

그때 나는 하얀 와이셔츠를 걸친 사내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매우 피로한 표정으로 치킨을 맛나게 먹고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행복한 듯 바라보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나라 서울의 신촌에 있는 롯데리아점 풍경과 다른 점이 없었다. 언어가 그렇게 다르면서 또 삶은 그렇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름을 다름답게 만들면서 또 이렇게 바다 건너에서 자기들의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과 공존해가는, 삶의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걸까.

지상에서는 아직도 비가 내리는지 사람들이 자꾸만 밀려들어 왔다. 그 지하의 맥도날드점은 중국말이 그득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 물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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